정토행자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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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바꾸는 것이
온 세상이 바뀌는 일

갈정시 님은 깨달음의 장에서 받은 정성스러운 음식에 보은하기 위해 바라지 봉사를 하기로 결심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참가할 수 있는 첫 번째 바라지장을 신청했다고 합니다. 그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자 건강할 때 한 번이라도 더 바라지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두 번째 바라지장을 신청했습니다. 이번 바라지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업식을 마주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어떤 에피소드가 나올까요? 결과는 예상하다시피 해피엔딩이랍니다.

갈정시 님
▲ 갈정시 님

인생이 바뀐 지점

우연히 유튜브에서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보고 ‘깨달음의 장’(이하 깨장)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딸에게 깨장 신청을 부탁했더니, 컴퓨터를 켜자마자 신청이 마감되기를 반복했습니다. 딸은 사이비 단체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했지만, 제 의지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여러 번 시도 끝에 가까스로 대기자 명단에 올랐고, 운 좋게 누군가 포기한 기회를 잡아서 깨장에 입성했습니다.

깨장 마지막 날 밤, 그동안 음식을 만들어준 바라지분들을 만나는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모두가 자원봉사자라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보은하고 싶은 마음에 ‘나도 꼭 한번 바라지로 봉사하러 와야지’ 다짐한 날입니다.

보은하러 간 첫 번째 바라지장

보은하고 싶은 마음을 잊을세라 바로 첫 번째 ‘바라지장’에 참가 신청을 했습니다. 그토록 정갈하게 담긴 맛깔난 음식이라니, ‘어떤 마음을 가지면 저런 음식이 나올까?’ 궁금한 마음을 안고 문경으로 향했습니다.

요리에 소질이 없어서 보리차 끓이고, 심부름하고, 재료 손질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밥 짓는 소임을 맡은 청년 도반이 일념으로 밥이 되기를 기다리면서, 작은 소리로 외던 반야심경 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이라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던 바라지들의 모습에 감동해서 다음에 또 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공양간에서(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갈정시 님)
▲ 공양간에서(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갈정시 님)

시련은 또 다른 시작의 계기가 되어

첫 번째 바라지장의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직장에서 동료와 불편한 일이 생겼습니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머리도 아프고 눈도 영 침침해져서 병원을 찾았습니다. 의사가 대뜸 “술 많이 먹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평소 술을 한 잔도 안 먹는데 알코올 중독에서 많이 일어나는 뇌위축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치매가 올 가능성이 높으니 꾸준히 약으로 진행 속도를 늦추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평소 깜박깜박 잊어버리는 일이 잦았는데 ‘이것 때문이었구나’ 혼자 며칠을 끙끙거리다가 곧 일상을 되찾았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건강할 때 한 번이라도 더 바라지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두 번째 바라지장을 신청했습니다.

두 번째 바라지장에서 내 업식과 마주하다

바라지하러 가는 날짜를 혹시 깜박 잊을까 싶어,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놓고 문경 가는 날을 기다렸습니다. 이번에 맡은 소임은 국 담당이었습니다. 세심하고 꼼꼼해야 하는 메뉴인데 일상이 바쁘고 거친 삶을 살아온 터라, 저의 바라지 경력에 닥친 첫 시련 같았습니다. 바라지하는 내내 대충 설렁설렁하는 습관이 몸에 밴 내 모습이 보였습니다. 국을 끓이는 매 순간 깨어서 재료 하나하나를 제시간에 맞춰서 넣어야 하는데, 성격이 급하다 보니 대충 아무거나 집어서 한꺼번에 밀어 넣어버렸습니다. 어느 날 팀장님이 “빨간 고추가 어디 있어요?”라고 묻는데, 전날 제가 국에 다 집어넣어 버린 터였습니다. 오랜 사회생활로 융통성은 있어서, 넉살 좋게 대중 공양간에 가서 빌려와 해결했습니다. 억센 아줌마 등쌀에 젊은 팀장님은 힘드셨겠지만, 저는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문경수련원에서(왼쪽에서 세 번째가 갈정시 님)
▲ 문경수련원에서(왼쪽에서 세 번째가 갈정시 님)

발우공양과 소심경

제가 바라지하던 기간에 법륜 스님이 문경에 오셨습니다. 저녁 예불부터 다음 날 아침 공양까지 함께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아침 공양 때 법륜 스님이 여유 시간이 있으니 소심경 법문을 해주시겠다고 했습니다. 평소 궁금하던 부분이라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는데 어쩐지 저에게 해주시는 법문 같았습니다.

저는 발우공양이 일하는 것보다 힘들어서, 공양 때면 어디 가서 숨고만 싶었습니다. 그날 아침 공양 때도 남들보다 늦을까 봐 허겁지겁 밥을 먹고, 열심히 발우를 닦고 있는데 옆 사람이 눈치를 줬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나 혼자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법륜 스님과 눈이 마주쳤다고 느꼈습니다.

마치 저에게 해주시는 것 같은 법문을 듣고 감동했는데, 아무리 떠올려봐도 단 한 말씀도 기억나지 않아 답답합니다. 그래도 존경하는 스님을 뵌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입니다.

문경은 마음의 고향입니다

바라지 마지막 날, 입장이 바뀐 제가 깨장 수련생들 앞에 섰습니다. 수련생들의 환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아! 내가 이 얼굴을 보려고 바라지하러 왔구나’ 싶었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 다시 일어설 힘을 주는 곳, 그래서 다시 찾게 되는 문경은 마음의 고향입니다. 꼭 불행하게 살아야만 되는 사람처럼 행복해지는 방법을 모르고 살다가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이곳, 문경에서 했습니다. 행복과 불행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바뀌면 온 세상이 바뀌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괴로움이 없는 행복한 사람으로 잘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바라지들과 기념 사진(뒷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갈정시 님)
▲ 바라지들과 기념 사진(뒷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갈정시 님)


이 글은 <월간정토> 2024년 8월호에 수록된 바라지장 소감문입니다.

글_갈정시(강원경기동부지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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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3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10

0/200

신정덕

소감문을 나누고 싶어서 신청합니다. 나의 경험을 통해 수행담을 듣고 또 좋은 점은 나누고 십습니다.

2025-02-03 22:08:11

최상훈

고맙습니다 ^^

2025-01-31 07:23:55

묘향

내 마음을 받고 행복하시니 축하합니다

2025-01-21 10: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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