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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조리사 일을 했지만, 집에서 음식 할 때는 힘들고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돈을 받고 하면 ‘노동’이고 돈을 주고 하면 ‘놀이’가 된다는 법륜 스님 말씀과는 다르게 직장에서는 돈이라도 받는데, 집에서는 대가도 없는 희생이라는 생각에 재미있는 놀이가 될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내 시간을 투자하는 노고를 알아주지 않는 것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나 봅니다. 이 밖에도 제 마음속엔 갈등이 많았습니다. 돈을 더 벌고 싶어서 자꾸 껄떡대는 마음, 전법회원을 내려놓고 일반회원이 된 후 느슨해진 수행, 아이들 문제 등 머릿속엔 항상 생각들로 복잡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면서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전 수련에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깨달음의 장’에 참여했을 때 4박 5일 동안 내 앞에 이르렀던 음식을 먹고 잘 버텼기에, 이 음식이 어떤 분들의 손길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하고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에 ‘바라지장’에 참여하였습니다. 바라지는 아무 대가 없이 부처님께 올리는 마음으로 공양 준비를 할 텐데, 집으로 돌아오면 어떤 마음으로 음식을 하게 될지 변모한 내 마음도 보고 싶었습니다.
목포에서 문경까지 가는 데 5시간 30분이나 걸렸지만, 가벼워질 것을 먼저 알았기에 가는 길이 멀거나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고, 언제나 그랬듯이 처음 만나는 도반들도 편안했습니다. 공양 준비에서는 제일 간단해 보이는 김치를 담당했는데 전혀 쉽지 않았습니다. 김치를 썰고 접시에 담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딴생각하면 삐뚤어지고 어긋나게 되어 온전히 김치 하나에만 집중해야 했습니다. 평소 생각이 많은 나에게 아주 잘 맞는 일이었고, 간단하지 않은 김치 담당 일이 복잡한 나를 단순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감자껍질 벗기기, 무 썰기, 채소 다듬기 등 집에서 늘 하는 일이었지만, 바라는 마음 없이 하다 보니 잡념이 사라지고 머릿속이 맑아졌습니다. 소소한 재료 하나에도 감사한 마음이 생겼고, 만드는 분들의 수고로움이 담겨있기에 음식 자체가 보약임을 알았습니다.
도반들은 부탁하지 않아도 뒷마무리를 알아서 척척 해주었고, 서로에게 우렁각시 같은 존재가 되어 주었습니다. 내가 분명 일을 했음에도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음을 알게 되는, 드디어 노동이 아닌 놀이가 무엇인지 체험한 시간이었습니다. 특별히 잘했다는 생각이나 바라는 것 없이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잘한다는 팀장님의 칭찬을 듣고는 가족의 칭찬이 없으면 기분이 좋지 않던 내 행동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똑같은 음식이지만 내가 어떤 마음으로 보느냐에 따라 내 마음도 바뀐다는 것을 알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평소에 깊은 잠을 못 자서 일찍 일어나기 힘들었는데, 새벽 4시면 들리는 기상 목탁 소리에 눈이 번쩍 떠지는 게 신기했습니다. 대웅전에서의 예불, 발우공양과 소심경, 백일출가자들의 1만 배 관음정근 등은 바라지장에 오지 않았다면 경험할 수 없는 신선한 체험이었습니다.
법사님과의 일문일답을 통해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어 껄떡대고 수행은 게을리하는 나를 알아차렸고, 무엇에 중심을 두고 살아야 하는지 점검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도반들의 나누기를 들으며 ‘걱정을 붙들고 사는 나도 별문제 없구나. 나보다 더 힘들게 살아온 분들이 많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가볍게 받아들이는 마음 자세를 배웠습니다. 쉬는 시간마다 도반들을 붙잡고 고민을 털어놓아도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며 싫은 내색 한번 없이 매번 조언해 준 도반들이 참 고맙습니다. 내 고민을 나눔으로써 도움을 받았다는 분들이 있었고, 덕분에 가벼워진 마음으로 도반이 스승이라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4박 5일 동안 마음을 나누며 정든 도반들과 헤어지려고 하니 아쉬움이 컸습니다. 언제든 다시 가고 싶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지금 ‘이 음식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입니다’ 명심문 세 번 하고 바라는 마음 없이 그냥 합니다. 큰 기대 없이 참여했던 바라지장에서 체득한 부처님의 현장에 나와 실습하는 기분입니다. 앞으로도 바라지장에 자주 참여하면서 제 마음의 찌꺼기를 하나씩 털어내려고 합니다. 바라지 팀장님, 수련팀의 법우님, 공동체에 상주하시는 분들과 저희 봉사자들의 공양을 책임져주시는 공양간의 도반님들 덕분에 바라지장 봉사를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공덕 잊지 않고 잘 쓰이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_양은재(서광주지회)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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