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하루가 지나기 전에 알아차리고
참회하는 정진을 꾸준히

<월간정토>에는 부모법회를 다룬 기획기사가 총 3편이 실렸습니다. 오늘 소개드릴 글은 마지막 편이자, 엄마가 아닌 아빠의 입장에서 쓴 글입니다. 한 사람의 청년이 누군가의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되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를 잘 보여주는 글이라 생각됩니다.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정진을 게을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홍석운 님은 부모법회에서 스님의 법문을 듣고 나서는 애쓰지 않아도 정진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 비결이 뭘까요? 함께 배워보겠습니다.

즉문즉설, 불교대학, 청년정토회 활동으로 이어진 인연

군 입대와 대학 졸업이 또래에 비해 늦었던 나는 서른 살이 되어 회사에 취직하였다. 전공을 살리지는 못했지만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게 된 덕분에 첫 1년은 그럭저럭 잘 다녔다. 그러다 2년 차 무렵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해소되지 않는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 아버지와 형 이렇게 셋이 함께 살았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아버지와 형 사이가 좋지 않아 중간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 무렵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우연히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접하게 됐다.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은 재미도 있었지만 듣다 보면 위안이 되었다. 퇴근길에 청계천을 걸으며 즉문즉설을 듣기도 하고, 밤에 산책하면서 듣기도 했다. 그러다 정토불교대학을 알게 되었고, 다음 해인 2013년에 서초법당에서 열린 청년 불교대학에 입학한 것이 정토회와 첫 인연이다.

이후 경전대학까지 졸업하고, 청년정토회에서 활동하면서 정토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집에서 아버지와 형과 마주칠 시간이 줄었고, 자연스레 스트레스를 받는 빈도도 줄었다. 정토회에서 법문 듣고 수행하면서 가족에 대한 미움이 이해하는 마음으로 바뀌면서 정신적으로도 조금씩 나아졌다. 당시 회사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는 문제도 겪고 있었는데, 스님 말씀대로 3년을 채우고 조금 편안해진 상태에서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홍석운 님
▲ 홍석운 님

결혼 생활 어려움 속에서 부모법회 만나

퇴사 이후 청년정토회에서 활동하면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불법을 배운 두 사람이 만나 결혼했으니, 남들보다는 잘 살겠지 생각했지만 나만의 착각이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아내에게 잘 맞출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자만심이었고 결혼 생활은 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아내와의 갈등은 사소한 말다툼으로 시작해서 때로는 큰소리를 내며 싸우기도 했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내가 잘 삐지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런 행동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먹고 싶은 반찬 얘기했다가 손질하기에 번거롭다고 거절당하면, 그 말이 곧 나에 대한 상대의 마음이라 단정하며 기분 상했고, 가계부를 보며 지출이 많다는 아내의 혼잣말에 걸려 그 말이 나를 향한다고 생각하여 대화를 멈추기도 했다. 상대가 그냥 한 얘기일 뿐이었다고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냥 자동으로 반응했다.

밖에서는 친절한 사람처럼 상대에게 맞추면서 집에서는 아내에게 맞출 줄 몰랐다. 아내와의 말다툼은 대부분 아이가 잠든 후에 일어났지만 때로는 아이들 앞에서도 멈출 수 없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면 이미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악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에 때늦은 후회가 밀려오곤 했다.

2013년 청년정토회 청춘콘서트(첫 번째 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홍석운 님)
▲ 2013년 청년정토회 청춘콘서트(첫 번째 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홍석운 님)

아이를 키우는 일은 부부 생활과는 또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아이가 어릴 때는 뭐든지 받아줄 수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에 대한 잔소리는 늘어갔다. 아이가 커갈수록 기대가 높아지고,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니 잔소리가 늘어가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그것을 차분히 돌아보고 줄이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아이를 대하는 태도도 나와 아내는 달랐는데, 나는 아이의 안전에 예민했고 아내는 좀 더 대담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니 아이에 대한 자세도 다를 텐데, 그 부분을 인정하지 못하고 내가 더 옳다고 고집했다. 아이들이 혼란스러울까 봐 맞춰보려고 노력도 해봤지만, 지속되지 못했다. 여전히 우리는 서로 다른 기준으로 아이들을 대했고 나는 그것을 맞추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큰아이가 어렸을 때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서초법당 아기엄마법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주로 평일에 법회가 있었기 때문에 아빠들의 참여는 많지 않았고, 나도 그랬다. 이후 코로나 시기에는 법회를 열지 못하다가 지금은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부모법회라는 이름으로 열리고 있다.

부모법회는 일요일 오전에 열리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아내와 함께 두 아이를 데리고 참석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도반이 꽤 많아서 법회에 가도 어색하지 않다.

법회를 마치고는 엄마들이 모여 먼저 나누기를 하고 이후에 아빠들이 모여서 나누기를 한다. 법사님이 함께해 주시기 때문에 법회 때 들은 법문에 대한 나누기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고민도 내어놓을 수 있다. 법사님이 관점도 잡아주시기 때문에 나누기 시간은 제2의 법문 시간이 된다.

처음에 비하면 아빠들의 나누기 시간도 꽤 길어졌고, 각자 솔직한 마음을 나누고 있다. 결혼 전 청년일 때 나누기는 내용이 다양했지만 부모법회에서 아빠들과 나누기를 하면 대부분 아내와의 관계, 아이 키우면서 힘든 점 등 공감 가는 내용이 많다 .

2017년 첫째 아이 돌 즈음 가족사진
▲ 2017년 첫째 아이 돌 즈음 가족사진

모래에 긋는 금과 바위에 긋는 금의 차이는 정진에 달렸다

부모법회를 통해 그동안 게을렀던 나의 생활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수행은 뒷전이었다. 수행을 아침에 일어나서 1시간 기도하는 형식적인 것으로 생각하니 여전히 다른 것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입재식 때 아침에 눈 뜨면 살았다는 기념으로 기도하라는 스님의 법문을 듣고 입재식 이후 며칠은 바짝 하다가 이내 게을러지기 일쑤였다.

다짐하고 포기하기를 반복하면서 내가 엎드리기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침에 엎드려 정진하는 것이 정말 도움이 된다는 자각이 없으니 지속하기 어려웠다. 평소 남의 평가와 주변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니 그런 부류의 일들에 관심 쏟고 시간 투자하기 바빴지, 수행정진은 여전히 뒷전이었다.

1월 어느 날 부모법회의 법문에서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우리는 매일 경계에 끄달리게 되는데, 경계에 끄달려도 알아차리고 하루가 지나기 전에 참회한다면 그것은 모래에 긋는 금과 같다. 그래서 경계에 끄달린 뒤 바로 알아차리는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하루가 지나기 전에 알아차리고 참회해야 하므로, 우리는 매일 아침 정진을 해야 한다는 법문이었다. 경계에 끄달리고 난 후에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바위에 그어진 금과 같다고 하셨다.

법문을 듣고 나를 돌아보니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경계에 끄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정진을 게을리하니 바위에 수도 없이 금을 긋고 있었다. 이 금은 시간이 흘러 잠시 가려질 수 있지만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아차, 내가 지금 그렇게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았다. 이미 지나간 시절에 그어진 수없는 바위의 금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앞으로는 바위에 금을 긋는 어리석은 행동은 멈춰야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정진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조금 늦게 일어나더라도 정진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아침에 못 했을 때는 저녁에 퇴근하여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정진을 이어가고 있다.

정진하면서 하루 전날을 돌아보면 참회할 일이 많이 떠오른다. 주로 아내와 아이들에게 했던 말과 행동이 떠오른다. 이런 내 모습을 하루가 지나기 전에 알아차리고 참회하는 시간을 가진다.

이제 매일 정진을 하면서 전날 끄달렸던 순간이 떠올라도 안심할 수 있다. 하루가 가기 전에 참회하고, 앞으로 경계에 끄달리지 않겠다고 발원하며 하루를 시작하면 마음이 가볍고 든든하다. 이제는 정진이 나의 삶에 아주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드니 크게 애쓰지 않아도 정진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

2023년 부모법회(앞줄 맨 오른쪽이 홍석운 님)
▲ 2023년 부모법회(앞줄 맨 오른쪽이 홍석운 님)

자녀 잘 키우는 방법은 부모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있다

결혼한 지 8년 정도 흘렀다. 남으로 만났을 때는 상대의 맘을 얻고자 뭐든지 맞출 수 있다고 믿었는데 막상 결혼해 살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나는 참으로 자만에 가득 차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간극이 넓어져 마음이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상대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내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조금 알게 되었다. 상대는 예나 지금이나 자기가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인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이 문제였다.

그렇다고 상대는 그대로인데 내가 변했다고 자책하지도 않는다. 나도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다만, 상대가 내 뜻대로 해야 한다는 어리석은 관점을 계속 움켜쥐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도 수없이 넘어지겠지만 다시 일어서는 방법을 알고 있기에, 끈을 놓지 않고 정진해나갈 용기가 생겼다. 아직 늦지 않았기에 바로 이 순간부터 자유롭고 행복한 길로 나아가기를 발원한다.

가족여행
▲ 가족여행


이 글은 <월간정토> 2024년 3월호에 수록된 부모법회 기획기사입니다.

글_홍석운(부모법회)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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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2

0/200

무구의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10-15 21:09:39

선주행

잘 들었습니다

모래에 그을지 바위에 그을지...
정신 번쩍 차려서
모래에 긋자고 하신 그 결정심에서 뭉클합니다.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4-10-14 21:58:16

견오행

홍석운님 좋은글 감사합니다. 저의 수행을 돌아보는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늘함께합니다.감사합니다.()()()

2024-10-14 14: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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