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수성지회
지금 이대로 참~ 좋습니다

이혜임 님의 필리핀 의료봉사 중이란 문자를 받고, 돌아오는 날짜에 전화했습니다. 이혜임 님께 "여독도 풀 겸 기사 발행일을 조정했으니, 인터뷰 일정을 늦춰도 된다"라고 했습니다. 이혜임 님은 밝은 목소리로 "괜찮으니, 예정대로 진행하자"라고 했습니다. 그 답변에서 활기찬 모습이 연상되었습니다. 정토회에서 열심히 일하며 행복해진 주인공 이혜임 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2024년 8월 필리핀 민다나오 의료봉사 중
▲ 2024년 8월 필리핀 민다나오 의료봉사 중

여기저기 헤매다 찾은 불교대학

종교를 갖고 싶었습니다. 성경책, 찬송가집을 들고 교회와 성당, 새벽 기도와 부흥회 등 아무리 다녀도 믿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친정엄마와 시어머니를 따라 절에 가도 "부처님이 어디 있냐?"라며 절 밥 먹고 오는 게 다였습니다. 2018년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통해 알게 된 불교대학 홍보 전단을 보고 입학했습니다. 불교대학도 부처님은 모르겠고, 법륜스님을 보러 왔습니다. 불교대학이 끝날 무렵에도 스님을 믿었고, 부처님은 믿지 않았습니다.

아상이 강했습니다. 불교대학 도반들이 <깨달음의 장>1에 다녀와도 ‘나는 갈 일 없다. 남편으로 인한 괴로움 다 벗어났고 스스로 통달했다.’라며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불교대학 도반이 모두 다 가는데, 같이 가자 해서 갔습니다.

2019년 11월 통일의병 수료식(오른쪽 이혜임 님)
▲ 2019년 11월 통일의병 수료식(오른쪽 이혜임 님)

교만과 오만으로 가득 차 있던 저는 어느 한순간 안쓰러운 나를 보며 눈물이 터졌습니다. 봇물 터지듯 한번 터진 눈물이 화장실 갈 때도 쉴 때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울고 나자 어두운 동굴 같은 제 마음에 바늘 같은 한 줄기 빛이 보였습니다.

<깨달음의 장>은 제가 진정으로 정토회에 발을 담그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경전대학에서 금강경을 설명하는 배경 이야기를 들으며 그토록 갖고 싶었던 믿음이 생겼고, 부처님께 귀의했습니다. 스님의 법문 중 '단박에 믿어진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경전대학을 졸업하고 전법활동가가 되었습니다. 정토회원이 된 이유 중 하나는 동북아 역사 기행을 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통일의병2을 해야 한다고 해서 기를 쓰고 했습니다. 덕분에 맘껏 놀았습니다. 인도성지순례도 멋지게 다녀왔습니다. 살판났습니다. 코로나로 동북아 역사 기행은 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숙제로 남은 서류상 결혼생활

정토행자의 하루 제안에 한마디로 거절했습니다. "27년째 서류상 부부로 살고 있고, 남편에 대한 마음이 자유롭지 못해 자격이 안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회 홍보 꼭지가 하는 일 중 정토행자의 하루 대상자 추천도 있습니다. 막막했습니다. 저도 거절했는데, '어느 도반이 승낙할까?'라는 생각에 ‘그래, 그냥 있는 그대로 한번 해보자’라고 승낙했습니다.

2020년 1월 인도성지순례 사르나트에서
▲ 2020년 1월 인도성지순례 사르나트에서

남편과의 결혼은 지금도 생생한 엄마의 한마디로 시작했습니다. “네가 올해 안으로 결혼 안 하면 아버지가 죽는단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지만, 그때는 무서웠습니다. 한편으론 ‘엄마는 어떻게 딸에게 이런 희생양이 되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교육비를 면제받으려 했을 때, '내 자식 교육비는 당연히 내가 내야 한다'는 가치관을 지닌 자랑스러운 아버지였습니다. 엄마에겐 다정한 남편이었습니다. 부모님을 일찍 여윈 엄마에게 아버지는 하늘 같은 분이었습니다. 집안에는 조약들이 끊이지 않았고, 쑥물을 달이기 위해 엄마 심부름으로 쑥을 뜯기도 했습니다. 수시로 굿하고 좋지 않은 소리가 나올까 무서워했습니다. 엄마의 두려움은 고스란히 어린 나에게 전달되었고, 학교 갔다 오면 '혹시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불안함이 늘 있었습니다.

23살, 선을 본 후 22일 만에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저와 극과 극이었습니다. 아버지 간병에 생계까지 책임지며, '어려웠던 세월도 힘들지 않았다'는 긍정적인 엄마를 닮은 저와 달리 남편은 생각과 말투가 부정적이었습니다.

성향이 달라 힘들기도 했지만, 남편은 자주 늦었습니다. 그래도 늦는 남편을 기다렸고, 외박하면 '그런가 보다'라고 했고,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었습니다. "남편 잘 지켜보라"는 친구들의 말이 무슨 말인지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외도가 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남편의 자동차에서 낯선 여자와 커플티를 입고 찍은 사진과 열렬한 연애편지들을 발견한 후, 나의 30대는 마의 시간이었습니다.

2024년 8월 필리핀 민다나오 의료봉사(첫 줄 오른쪽 첫 번째 이혜임 님)
▲ 2024년 8월 필리핀 민다나오 의료봉사(첫 줄 오른쪽 첫 번째 이혜임 님)

꼬박 십 년 세월을 집착으로 보낸 어느 날 남편이 다른 여자와 살겠다고 했습니다. “알겠다. 하지만 내 사전에 이혼은 없다.” 하고 결혼생활을 끝냈습니다. 남편이 떠난 후, 거울을 보니 사람이 아닌 마귀가 있었습니다. ‘좋다! 이 모습을 웃는 얼굴로 바꾸자.’라고 결심했습니다. 그 무렵 지인이 재미있는 동영상을 보여줬습니다. 바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었습니다.

십 년 동안 즉문즉설에 의지하며 마음을 정화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서 지난 십 년 동안 힘들었던 내 모습을 마주하고, 한없이 울며 위로하니 맺혔던 응어리가 풀렸습니다.

지금 이대로 참 좋다!

남편과 관계를 정리했지만, 명절 때 아이들과 시댁에 갑니다. 자기 앞가림하면서 잘 자라준 아들과 딸에게 고맙습니다. 엄마의 정토회 활동에 딸은 가끔 관심을 보이고 조언도 합니다. 아이들은 관심만 보이지만, 형제들은 같은 도반입니다. 2남 3녀 중 막냇동생 만 빼고 모두 정토회 회원입니다. 가족이 도반이니 만나면 함께 나눌 이야기가 풍성해서 좋습니다.

2018년 8월 문경수련원 불교대학 수련
▲ 2018년 8월 문경수련원 불교대학 수련

보험회사 설계사, 요양보호사로 바쁘지만, 전법활동가로 홍보꼭지, 모둠장, 오타특공대를 하며 정토회에서 재미나게 놀고 있습니다. 올해는 7박 8일 필리핀 의료봉사도 다녀왔습니다. 새벽 공동정진에 꾸준히 참여하고 나눔의 장3과 명상수련도 했습니다.

이번 여름 명상수련에서, '지난 세월 어떤 일이 있었든 간에 지금 여기에 있는 나는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이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말이 아니라 진심에서 ‘지금 이대로 괜찮다.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무엇이든 예하고 합니다' 명심문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진행자가 되니 선배 도반들의 ‘소임이 복이다.’라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교실이 열리면 학생 한 명 한 명이 그렇게 감사할 수 없습니다. 봉사하는 데 감사한 마음이 생기다니! 이렇게 좋으니 후배 도반들에게 적극적으로 봉사를 권합니다. 이 모든 것은 법륜스님의 "가볍게 임하라"라는 말씀 덕분입니다.

새로운 일 앞에서 떨리고 긴장될 때면 되뇝니다. '가볍게 하자, 실수할 수도 있지 뭐, 잘못해도 괜찮아' 모둠장을 하는 지금 이 또한 할 수 있는 만큼 합니다. 미약하지만 사회에 환원하는 마음으로 사니 자부심이 생겨 좋습니다. 이렇게 어떠한 소임에도 쓰일 수 있을 만큼 쓰이고 싶습니다. 나이 들어 정토회 일을 못 해도 공동 정진은 지금처럼 함께하고 싶습니다. 새벽 공동 정진에서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선배 도반들을 보면서 저도 그렇게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후배 도반들에게 힘이 되고 싶습니다.

2024년 8월 일요모둠 나누기(오른쪽 첫 번째 이혜임 님)
▲ 2024년 8월 일요모둠 나누기(오른쪽 첫 번째 이혜임 님)


깨달음의 장에서 내 삶의 한 줄기 빛을 보았고,
경전대학에서 부처님께 귀의했고,
명상수련에서 지금 이대로 괜찮은 나를 보았다.

앞으로도 정토회에서 누릴 수 있는 만큼 누리며 사는 수행자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전법활동가를 꼭 해라. 얻는 게 너무 많다"라며 여러 번 권하는 모습에서 '진심으로 즐겁고 행복하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장 전법활동가를 신청할 뻔했습니다. 하하하. 아직 희망리포터도 버겁지만, 언젠가 전법활동가로 만날 미래를 상상합니다. 봉사는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임을 다시금 새깁니다. 감사합니다.

글_손해경 희망리포터(경남지부 창원지회)
편집_이주현(부산울산지부 동래지회)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2.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은 화해·상생의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비영리민간단체.
    통일의병학교 과정을 수료하고 강령과 정관에 동의하면 가입 가능하며, 정기회비를 내고 각종 통일의병 활동에 참여할 수 있음.
    홈페이지: http://www.tongilkorea.kr 

  3. 나눔의 장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인간관계가 평화로워지는 4박 5일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참여자만 신청하여 참여할 수 있음. 


2025 3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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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희

이혜임님은 자랑스러운 도반입니다. 훌륭하십니다.

2024-10-22 22:05:57

무구의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2024-10-20 20:52:53

이가현

지금 이대로 함께 하는 도반이라 감사합니다~~^~^

2024-10-17 09:4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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