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배움을 찾아 길 위에 선 청년 정토행자

이번에는 <월간정토>에서 '청년수행톡톡' 꼭지의 수행담을 소개해보겠습니다. 곽수경 님은 스무 살에 동북아 역사 기행에 참여하고, 그때 받은 깊은 감동을 이어가기 위해 정토회에서 하는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붓다캠퍼스, 49일 법당살이, 필리핀 선재수련 그리고 3년 여의 상근활동과 공동체 생활까지 하였습니다. 저로서는 하고 싶어도 참여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 많이 소개되어, 아주 재밌게 몰입하며 글을 읽게 되네요. 그렇게 열정적으로 이십 대를 보낸 청년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스무 살, 동북아 역사 기행

처음 맞이하는 대학의 여름방학을 좀 더 알차게 보내고 싶어 하는 저에게 엄마는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동북아 역사 기행’을 소개해주었습니다. 정토회 활동에 너무 열성적인 엄마 모습에 약간 거부감이 있어 망설였지만, 역사 공부를 좋아하고 교과서에서 많이 다루지 않던 고구려, 발해 역사를 배울 기회가 된다 하니 솔깃하였습니다. 정토회나 스님의 안내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한때 거대한 우리 영토의 일부였던 중국 현지를 가본다는 생각으로 참여를 결정하였습니다.

부처님오신날(곽수경 님)
▲ 부처님오신날(곽수경 님)

민족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동북아 역사 기행’이 시작된 며칠은 일정이 꽉 짜여 있어 정신이 없었지만, 현장에서 새로운 관점과 해석을 들으며 그 신선함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분단으로 인한 체제 경쟁에서 비롯된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고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아 중국, 일본, 미국에 대한 열등의식이나 사대의식에서 벗어나자는 취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날 저녁 강의에서 현 시대적 과제인 통일이 대한민국의 비전이 될 수 있음을, 거기에 청년 세대가 어떤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스님 말씀이 가슴을 뛰게 하였습니다.

또한 처음으로 타인에게 자신이 놓치고 넘겼던 마음을 내어놓고, 상대의 마음 또한 어떠한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듣는 마음 나누기는 감동이었습니다. 짧은 7박 8일 동안 보고 배운 감동을 이어가기 위해, 그 후 정토회에서 하는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2013년 동북아역사대장정(맨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곽수경 님)
▲ 2013년 동북아역사대장정(맨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곽수경 님)

그해 겨울, 크리스마스 선물

제가 사춘기를 힘들게 보내자, 엄마는 즉문즉설에서 스님께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딸이 엇나가는 걸 보니 엄마라는 사람이 얼마나 쥐락펴락했을까? 남편에게는 또 얼마나 성질대로 했겠나?” 하시며 이혼한 남편에게 참회기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어이없어하던 엄마는 한 달을 고민하더니 딸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다는 생각에 정토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닮은 게 보기 싫다며, 사사건건 간섭하던 엄마가 제 행동을 고스란히 다 받아주고 아침마다 기도하는 모습이 처음에는 낯설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고3 때는 엄마가 시험이나 성적에 전혀 관여하지도 않고 법당에 가서 늦게 돌아오는 것이 불만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제가 친구들과의 크리스마스 약속을 거절하고 ‘깨달음의 장’에 다녀오며 정토회와 인연을 맺은 2013년은 저의 세상이 새롭게 뒤바뀐 해입니다.

재미를 찾고 자유롭던 대학 생활을 청산하고 정토회 포스터를 붙이는 등 학과 사무실을 전법의 장으로 만들기도 하고 대학생 정토회 프로그램인 붓다캠퍼스를 진행하면서 동기들을 설득해 법륜스님 책으로 북세미나까지 열었습니다.

상근활동에서 49일 법당살이까지

당시 다른 사람에게 어떤 말을 듣고 자존심이 상해 화가 나 있었는데, 어느 법우님이 “왜 화가 나는지 들여다보면서 정진해보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과 대학생 정토회 상근활동의 기회가 맞물리면서 학교를 휴학하고 본격적인 상근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서초법당의 49일 법당살이 ‘청년붓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처음으로 절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하는 도반들은 발우공양 마치면 직장으로 출근하기에 바빴고, 혼자 남은 저는 설거지, 걸레 빨기, 옷 세탁 등 기본 살림을 도맡아 했습니다. 발우공양 시 닦아 먹기 편하게 김치 써는 방법, 걸레 빨면서 물 아끼는 방법을 배우고 법륜스님이 부목생활 하실 때 먼지가 많이 날리지 않는 비질까지 연구하며 청소했다는 일화를 들으며 탐구하고 연구하는 생활이 곧 수행임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서초법당 옥상에서 음식물 퇴비화 할 때
▲ 서초법당 옥상에서 음식물 퇴비화 할 때

나를 찾아가는 선재수련

가장 애정이 가고 큰 울림을 주었던 프로그램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이란 주제로 진행한 대학생 선재수련(길 위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을 스승으로 삼아 배움의 길을 나섰던 선재동자처럼 2주 동안 해외에서 생활, 봉사, 수행, 수련하는 프로그램)입니다.

2015년 필리핀 선재수련에서 몇 년 동안 진행되지 않던 프로그램을 부활시키는 과정에서 제 모습을 정면으로 볼 수 있었고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잘하고 싶은 욕심은 있는데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몰라 답답할 때 도반들과 극한 갈등을 빚으며 상황을 회피하는 저를 보았습니다. 대차게 혼나고, 마음 나누기를 빙자해 험담하고 정진으로 마무리한 어설픈 첫 번째 경험이었습니다.

2016년 필리핀 선재수련에서는 공양주 소임을 맡았습니다. 장작으로 밥을 짓고, 40분을 걸어가 물을 길어 오고, 빗물 받아 설거지해야 하는 등의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많이 예민해져 사소한 것에도 화내는 나를 발견하고 어떤 부분에 끄달리고 있는지 세밀하게 관찰해보았습니다. ‘화낼 일이 아니네. 별일 아니네!’로 생각이 전환되면서 화내는 순간들이 차츰 줄었습니다.

선재수련에서 다리를 건설하거나 학교 보수공사, 수로 공사 등 중노동에 가까운 울력을 함께 했던 현지 청소년, 청년들이 늘 웃는 얼굴이라서 놀랐고, 저보다 10살이나 어린 친구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면서도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감동적이었습니다.

머리로만 이해했던 법문을 직접 경험하면서 행복은 돈, 사회적 위치, 권력 등의 조건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탁 뒤집혔습니다.

2015년 필리핀 대학생 선재수련 때 알라원 아이들과 함께
▲ 2015년 필리핀 대학생 선재수련 때 알라원 아이들과 함께

불안함의 연속

2016년 청년붓다를 함께 했던 도반들과 집을 얻어서 ‘붓다하우스’라는 이름으로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오전 5시에 함께 정진하고 생활 당번을 나눠서 정해진 시간에 각자 맡은 일을 하는 생활공간이자 수행하는 절에서 정말 즐겁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20대 중후반이 되면서 문득 상근활동에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친구들은 결혼하거나 직장생활이 안정되었고, 함께 활동하던 도반들도 회향해서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저는 스무 살 그 자리에 그냥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불안감이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3년의 상근활동을 마무리하고 붓다하우스를 나와 고향에서 직장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정토회에서 이 정도 배웠으면 어디 가서도 잘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조금이라도 발을 걸쳐놓으면 또다시 활동에 매일 것 같아 정진도 하지 않고, 수행법회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직장생활은 정시 퇴근과 단순한 전산 업무, 충분한 휴일로 편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스멀스멀 불안감이 올라왔고 운동, 소개팅, 맛집 투어 등의 일정을 만들어 분주하게 생활하며 잠재우려 했으나 소용없었습니다. 워라밸이 보장되어 좋았던 직장은 단조롭고 미래가 없는 곳으로 생각되면서 시비하는 마음이 사방으로 튀었습니다. 마음 살핌도 잊은 채 하루하루 흘려보내던 2019년에 정토회에서 인도 선재수련을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2016년 필리핀 대학생 선재수련에서 JTS 현지활동가 미오 아저씨와 도반들과 함께(두 번째 줄 가운데가 곽수경 님)
▲ 2016년 필리핀 대학생 선재수련에서 JTS 현지활동가 미오 아저씨와 도반들과 함께(두 번째 줄 가운데가 곽수경 님)

선재동자처럼 다시 정토행자로

낭떠러지에서 동아줄을 붙잡는 심정으로 세 번째 선재수련을 인도로 떠났습니다. 기차로 수자타 아카데미까지 가는 26시간 동안 30분 눈 붙이고 일행들을 점검했으니, 시작부터 지쳐 있었습니다. 무사히 도착해서 안심하다가 시설도 제대로 없는 곳에서 첫 끼 공양으로 겨우 누룽지를 내어놓고는 민망함에 속상했습니다. 사람들과 말도 하기 싫었고 차라리 혼자 하는 게 편할 것 같아 모두 나가라고 하고 보니 일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제 눈치를 보며 배려하는 마음으로 자리를 피해주었는데, 정작 저는 원망과 짜증으로 속을 끓이다가 저녁에 500배 정진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내가 나를 괴롭히며 좀먹고 있었구나.'
눈 녹듯 사라졌던 불안감이 일상에서는 불쑥불쑥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예전처럼 크게 괴롭지는 않습니다. 불안감은 어쩌면 없애야 하는 게 아니라 저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을지 모릅니다.

지금은 집에서 생활하며, 직장과 정토회 청년특별지부 홍보 담당으로 활동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삶에서 정진과 정토회를 놓을 수 없고 수행자가 내 아이덴티티구나’ 싶습니다.

가끔은 정진을 빼먹을 때도 있고, 활동하다가 힘들어서 잠시 쉬기도 하지만 여전히 앞으로도 주~~~욱 수행하는 정토행자로 살고자 합니다.


이 글은 <월간정토> 2024년 1월호에 수록된 곽수경 님의 청년수행톡톡 이야기입니다.

글_곽수경 (청년특별지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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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28

0/200

햇님

저를 다시 돌아보게해주신 솔직한 경험담 감사합니다.^^

2024-08-20 13:39:26

광효

젊은 날의 수많은 시행착오가 성장해가는 자양분이고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곽수경님의 20대는 찬란하고 대단합니다.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08-16 14:48:57

문미경

감사합니다.
곽수경님이 이렇게 당차고 멋진분이었군요..알게되어 기쁩니다. 쭉...정토행자로 함께 해요...
멋지고 당찬 곽수경님 ..사랑합니다..홧팅입니다

2024-08-14 13: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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