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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18년 11월에 향정법사님의 안내로 깨달음의 장을 수료하였습니다. 그때 받은 은혜를 ‘바라지’로 갚겠다는 생각이 세속생활에 묻혀 뒤편으로 밀려나 있었는데, 아내가 2023년 1월에 깨달음의 장에 다녀오면서 그때의 다짐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아내는 흔쾌히 제가 바라지장에 가는 것을 응원해 주었습니다.
정토회에서 공부하며 여러 감화를 받았고 서서히 정토회에 스며들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감화가 구하는 마음이 되어갔고, 관념으로 되는 부작용을 겪고 있었기에 바라지장에 최대한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하려 했습니다. 제 마음이 가벼우니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가는 세 시간이 짧게 느껴졌습니다.
평소 저는 욕심은 많으면서, 게을러서 노력은 하지 않는 모순 때문에 괴로움과 번뇌가 많았습니다. 특히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남보다 돋보이고 싶은 마음이 강해 새로운 상황을 접할 때 많이 긴장하고, 조급해지는 성격입니다. 하지만 바라지장을 함께한 도반들이 편안하고 느긋하였기에 저의 마음도 같이 편안했고 조급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공양간에서 도반들은 서로 배려하며 조용히 자기 일에 집중했고, 일손이 필요한 곳을 찾아 다니며 도왔습니다. 마치 좁은 어항에서 물고기들이 부딪치지 않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것과 같았는데 그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바라지장에 처음 가 본 것이라 주변 사람들이 귀찮게 느낄 정도로 질문이 많았는데, 바라지 경험이 많은 권순녀 보살님은 무엇을 물어보아도 여여히 가르쳐 주며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바라지장 담당인 송지연 법우님이 가벼이 할 수 있는 수련원 농사 체험, 꽃차를 만들기 위한 매화꽃 따기 체험, 쑥 캐기 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공양간에만 갇히지 않고 문경의 맑은 공기와 자연의 변화를 함께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음식을 조리하고 수련생들에게 보낼 편지를 읽어 볼 때는 제가 깨달음의 장에 갔을 때의 감동이 올라와 울컥했습니다. 깨달음의 장 둘째 날에 저는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 하며 집에 가고 싶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그날 오후 공양 때 "이 음식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마음으로 만들었다."라는 바라지들의 편지에 감동하여 다시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이후 수련하는 동안 평소 안 굴리던 머리를 너무 과하게 굴려 청심환을 먹기도 했고, 잠을 못 자고 힘들어하자 담당 법사님이 하루 더 자고 집에 가라고 권하신 기억도 떠올라 웃음이 났습니다.
공양 바라지 이외의 프로그램들도 참 좋았습니다. 도반들과 이미 개선되었거나, 앞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트라우마와 감정의 응어리를 깊이 있게 나누며 나눔의 장의 감동을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도반들의 어려움에 비해 제 문제는 상대적으로 별것 아님을 느꼈고, 트라우마를 극복한 도반의 나누기를 통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면 형성된 것은 옅어지고 흩어진다는 무상함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향정법사님과의 일문일답 시간에서 도반들의 질문을 통해 저의 오류도 점검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에게 숙이지 못한다는 도반과 남편의 변화를 바라는 도반의 질문을 통해 아내에게 빠른 변화를 바라며 몰아붙이고, 이해와 배려심 많은 아내에 대한 감사함도 없었던 저를 돌아보며 수행 과제를 설정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수련생으로 참여했던 추억에 젖어 보기도 하고, 발우 공양으로 천지의 은혜를 느끼면서 수련원의 맑은 공기 속에서 강제적(?) 비건 생활을 하며 저를 정화할 수 있었던 것도 큰 덤이었습니다.
이번 바라지를 통해 편안한 마음속에 숨어 있던 작은 번뇌의 출렁거림과 실수하면 발뺌하고 남 탓으로 돌리려는 마음, 성과를 내서 칭찬받고자 하는 마음 등의 업식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바라지를 하는 동안 마음의 변화를 관찰하니 마음은 마치 바람, 강물, 구름, 날씨처럼 무상하게 변해갔습니다. 인연 따라 모여서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기에 실체가 없고, 그래서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알고 나니 일어나는 마음에 시비할 것이 없음을 느꼈습니다.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문경에 왔고, 공양간에서 단순한 일만 할 줄 알았는데, 4박 5일을 지내며 깨달음의 장과 나눔의 장에 버금가는 배움을 얻었습니다. 함께한 도반들과 바라지장에 가라고 제 등을 떠밀어준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바라지장을 마치고 돌아가는데 제가 사는 김해에 가까워지자 고속도로 주변에 여러 봄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제게는 "아내에게 팍 숙이겠습니다."라는 기도문으로 백일 동안 300배 하려는 마음이 활짝 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글_박효승(김해지회)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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