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암울했던 나의 어린 시절, 부모님의 학대와 차별을 받으면서 겨우 숨만 쉬고 살았다. 이후 당연히 부모님과의 관계가 멀어졌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내가 아닌 다른 인격체로 포장하며 목표 의식도 없이 그냥 살았다. 성인이 되고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부모님에게 벗어나기 위해 결혼 상대를 찾았고,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부모님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의 의지는 오직 집을 벗어나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 결혼이 불러올 참극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면서….
두 아이를 출산하고 남편과의 갈등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하더니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남편은 힘들었던 어린 시절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였고, 전교 1등도 했던 수재였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으로 다니던 회사의 자금을 횡령하고, 이것도 모자라 여러 은행에서 빌린 돈과 친척들 돈까지 주식과 도박으로 전부 탕진했다.
너무나도 가정적인 남편이라 허튼짓할 거라곤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했기에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남편은 추락이 절정에 이르자 술에 빠지고 폭력적으로 변해갔다. 아이들과는 어떻게든 살아야 했으므로 친정아버지의 도움으로 남편과 관계를 정리하고, 두 아이와 함께 친정으로 들어갔다. 친정을 벗어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결혼했는데, 다시 돌아오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삶은 다시 결혼 전 상황으로 돌아갔다. 엄마와의 갈등으로 관계는 철천지원수같이 변해갔으며 괴로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이 괴로움을 해결하고 싶었다. 절에 다녔던 엄마와 시어머니의 영향으로 절에도 가보고 무속인과 점집도 많이 찾아다녔다. 나의 목적은 단 하나, 친정에서 다시 벗어나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엄마와의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 찾아간 무속인이 나에게 큰 법당 관음전을 찾아서 무조건 기도 입재를 하라고 했다.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에 무작정 실천에 옮겼다. 범어사 관음전 기도를 다니던 어느 날, 문득 예불문의 뜻이 궁금해졌다. 다른 신도분들에게 물었는데 내용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후 궁금함을 계속 가지고 있었는데 가게를 운영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신문을 보는데 한 지면에 ‘법륜스님의 반야심경, 금강경 해설서’와 관련된 기사가 크게 실려 있었다. 그날 밤 서점에서 책을 사서 모두 읽고 또 한 번 읽었다. 눈물이 났고 벅찬 마음으로 <월간정토>를 구독하기 시작했다. 정토회 법당을 찾아가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다녔고, 깨달음의 장과 나눔의 장 등을 거치며 마음공부를 이어 나갔다. 특히 깨달음의 장을 하고 나서부터 엄마와의 갈등이 기적같이 풀어졌다. 엄마를 부둥켜안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묵은 응어리가 뜨겁게 녹아 흘러내렸다. 알고 보니 엄마의 삶은, 사고로 장애인이 된 아버지와 연년생 삼 남매를 뒷바라지해야 하는 고달픔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엄마의 인생이 가슴 절절히 다가와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수행은 더 나아지지 않았고 늘 한계에 부딪혔다. 알아차림이 있어도 그때뿐이었고 부정적인 감정이 늘 함께 따라다녔다. 갑갑하고 답답했다. ‘왜 그럴까? 왜 생각으로는 되는데 실제로 잘되지 않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중 마지막 단계인 백일출가를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이 답답한 문제를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자 백일출가를 신청할 용기가 났고 도전했다. 입방과 만 배를 하며 고비도 있었으나 무사히 잘 마쳤다. ‘만 배만 끝나면 더는 힘들지 않을 거야. 나머지 시간은 껌이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이 생각을 접어야 했다.
백일출가 일정은 꽤 힘들었고, 극기 훈련을 하는 느낌이었다. ‘군인도 이 정도는 하지 않을 텐데….’ 이렇게 힘들고 바쁜 행자 생활 속에서도 온갖 경계에 끄달리고 있는 내 마음과 감정 상태가 보였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정해진 시간을 엄수해야 했기 때문에 긴장된 상태로 공양간 소임을 서둘러 끝내고, 다음 일정을 위해 마무리하려는 찰나 한 도반이 태클을 걸어왔다. 주방 마무리가 덜 되었는데 시간을 재고 있는 나를 향해 거친 말을 쏟아냈다. 감정은 요동쳤고 흥분되었다. 마무리 기준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데, 그 도반은 본인 기준만을 들이대며 막무가내였다. 습관이 저렇구나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불편했다. 출렁이는 감정을 알아차리며 그냥 일정대로 해버렸다.
'법사님과의 시간'에 이런 나의 상태를 점검해주신 법사님께서 "무엇을 붙잡고 있는지 계속 내 안을 살피는 연습을 해보라." 라고 하셨다. 이 마음으로 정진을 이어갔다. 며칠 후 대웅전에서 정진하고 있는데 순간 마음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몸뚱이도 깃털처럼 가벼워짐을 느끼며 가슴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물이 흘렀다. 돌이키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났다. 나의 업식이 보였다. 나는 원칙과 질서, 정의로움을 중요시하는 고정된 틀을 만들어 놓고,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을 재단하고 시비하며 분별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잣대를 놓지 못하고 틀에 맞추어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생각으로 부여잡고 살아왔으니, 수행은 늘 제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었다. 이 깨달음을 얻은 순간 붙잡고 있던 업식이 눈 녹듯 사라졌다. 어두웠던 마음은 스위치를 눌러 불이 켜지듯 환해졌고 환희심과 희열이 일었다. 대웅전을 나와 주변을 바라보니 수련원이 환하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불편했던 도반의 얼굴도 너무나 반가웠다. 불교 서적에서 이해가 잘 가지 않았던 내용, 자기가 체득해서 깨우쳐야 알 수 있다고 했던 말이 온전히 이해되었다. 신비롭고 오묘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하루는 오전 일 수행으로 떨어진 밤을 주워 마당 장독대 옆에 깔아 놓은 방수천 위에 말리는 작업을 했다. 저녁 공양 후 소임 시간에 내게 미션이 주어졌다. 저녁 예불 올라가기 전 밤을 다 주워 포대에 담고 방수천을 접어서 창고에 넣어 놓으라는 임무였다.
끊임없이 ‘아, 힘들다, 힘들어 죽겠다.’라는 생각을 늘 갖고 생활했던 나로서는 ‘방수천을 다 챙기고 예불까지 참석하라니! 가능할까?’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기존 소임을 하고 나니 시간이 15분 남았다. 서둘러 포대에 밤을 담고 방수천을 접어서 창고에 넣고 나갔다. 그리고 예불 시간에 맞춰 잽싸게 착석했다.
예불이 끝나고 청정당에 앉았는데, ‘와…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너무 힘들었지만 15분 남짓한 시간에 그걸 다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할 수 있었는데 내가 스스로 한계를 지었던 것이었다. 매사 힘들다 힘들다 말했는데 모순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백일출가로 수행자의 삶을 체득하고 업식 하나를 완전히 내려놓으니 회향 후 지금의 삶은 몹시 편안해졌다. 백일출가를 하기 전, 경계를 알아차려도 불편했던 마음은 이제 일어나지 않는다. 깨달음의 장 이후 또 한 번의 기적을 만난 셈이다. 백일출가는 수행 점검을 집중적으로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수련인 것 같다. 법사님께 감사에 감사를 더해 인사드리고 싶다.
수행은 생각으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부터의 출발임을 깊이 새긴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결코 맛볼 수 없다. 백일출가 때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마음의 먼지와 때를 챙기며 관리했듯이, 앞으로도 매일 빠짐없이 정진을 이어가려 한다. 또 이 기회를 빌려 백일출가 동안 원칙을 따지면서 분별하는 나를 받아주며 함께 살아준 도반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끊임없이 수행 점검해 주신 반장님, 보고 싶은 법사님께 머리 숙여 감사 인사 올립니다. 살뜰히 챙겨주신 스태프 법우님들 정말 고마웠습니다."
세상에 잘 쓰이는 사람, 도움이 되는 사람, 굳이 말로 전법하지 않아도 나의 행동과 모습으로 전법이 될 수 있는, 백일출가자와 같은 삶을 쭉 이어가려고 한다. 백일출가는 내게 기적 같은 선물이다.
글_강정혜(백일출가 44기)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전체댓글 29
전체 댓글 보기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의 다른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