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해운대지회
물질적 가난보다 더 고통스러운 마음의 굶주림

오늘은 깨달은 것을 혼자만의 경험으로 묻어두지 않고 도반과 이웃들에게 나누는 최명광 님을 만나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나누게 되어 기쁘다는 최명광 님의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착하다는 틀 속에 감춰둔 마음의 굶주림

어린 시절 몸이 좋지 않아 10개월 정도 병원에 입원했다가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그로 인해 학업이나 교우 관계를 쌓을 중요한 시기를 놓쳤습니다. 긴 공백을 채우기가 쉽지 않았고 특수반으로 편입되면서 친구들로부터 따돌림도 받았습니다. 가난했던 가정 형편으로 학비도 자주 밀렸습니다. 부모님은 늘 바빠, 혼자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가야 했습니다. 저의 도시락은 늘 김치 위주의 반찬이라 냄새가 많이 났기에 친구들과 어울려 밥 먹을 때 미안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학교나 집에서 혼자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가족과 함께
▲ 가족과 함께

학교를 못 간 1년간의 공백을 남들보다 더 잘하는 모습으로 채우려 했습니다. 튀지 않고 모범적인 생활을 했고, 좋지 않은 머리로 수업 진도를 따라가려고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부모님과 주변의 시선에 저를 맞추는 게 익숙했습니다.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어서 늘 모범생으로 살았습니다. 착한 아들이라는 틀 속에 스스로를 몰아세우다 보니, 거절할 줄도 모르고 남의 평가에 연연하며 피곤한 삶을 살았습니다. 물질적 가난보다는 마음의 굶주림이 더욱 고통스러웠습니다. 자연스럽게 마음에 대해 궁금해졌고 이 책, 저 책을 읽다 법륜스님의 책을 접했습니다.

그때 연애하던 아내와 결혼했습니다. 결혼한 지 6년이 지나도록 간절히 원하던 아이 소식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많이 힘들어해서 정토회 불교대학을 권했습니다. 아내는 어느새 편안해졌는데 저는 직장과 가정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거절할 줄도 모르고, 착한 모습만 보여주려고 애쓰다 보니 직장 일로 자주 밤을 새웠습니다. 가볍게 넘어갈 줄 몰라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스트레스를 쌓아만 갔습니다. 그때, 편안해진 아내의 모습에 희망을 품고 2020년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세 송이 연꽃

결혼한 지 12년 만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내와 저는 어렵게 낳은 아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봤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돌 무렵 또래보다 발달이 느린 것 같아 병원에 갔더니 자폐라고 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 모든 것이 허망하고 제 탓 같았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행사 준비 중(오른쪽 최명광 님)
▲ 부처님 오신 날 행사 준비 중(오른쪽 최명광 님)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한참 봉사하던 시기에 아이 치료도 시작했습니다. 정토회 활동과 아이 치료 두 가지를 병행하려니 버거웠습니다. 아이에게 더 정성을 쏟아야 한다는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막상 봉사를 내려놓으려 마음먹으니 이상한 오기가 생겼습니다.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는 아버지 모습을 보여줘선 안 되겠다.’, ‘우리에게 베풀어준 선배 도반의 은혜를 갚아야겠다.’ 라는 생각에 물러나지 않고 계속 봉사를 이어갔습니다.

실천 장소에 아들을 데리고 다니며 봉사활동을 합니다. 불교대학 학생들에게 전화하기도 어려워하던 소극적인 저는 어디 가고 활기가 생기고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몸은 바빴지만, 마음은 정돈되었습니다. 올해 4살인 아들은 저와 함께 공양게송도 외웁니다. 아들이 아파서 부처님을 원망할 뻔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니 우리 가족은 피로 맺어진 도반입니다. 혼자 생각에 갇혀 살 때, 수없이 많은 부처님이 왔다 갔는데도 어리석어서 보지 못했습니다. 아들을 키우며 비로소 눈을 떴습니다. 가족이 매일 서로를 공부시키는 도반으로 만났으니 이 인연이 정말 소중합니다.

나를 돌아보게 된 수행담 발표

경전대학을 졸업하며 수행담 발표를 권유받았습니다. 그 당시 잘하고 있었지만, 막상 수행담을 발표하려니 길을 잃은 듯 혼란스러웠습니다. 수행담을 준비하면서 작은 고비가 찾아올 때마다 ‘내가 이거 왜 한다고 했지?’ 하며 후회하고 자책하는 버릇도 여실 없이 보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남들에게 싫은 소리 안 들으려는 업식이 저를 많이 억압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실천지에서
▲ 실천지에서

저는 출근도 항상 1시간 일찍 준비해야 마음이 편합니다. 한번 뒤처지면 따라가기 힘들다는 것을 어릴 때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먼저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또, 아무리 아파도 결석하면 안 되고, 볼펜 한 자루 잃어버리는 것도 용납 못 할 정도로 집착이 심했습니다.

학생을 가르치는데, 학생들이 한 평가에서 100점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항상 바른 모습을 보이려고 하는 집착은 알았지만, 이것이 저를 압박하고 힘들게 했다는 것은 정토회를 다니면서야 알았습니다. 너무나 오래된 습관이라 알았다고 해서 단번에 고칠 수는 없었습니다.

아직도 불쑥불쑥 저를 다그치지만, 이제는 조금 여유롭게 자신을 받아들입니다. 대중 앞에서 제 이야기를 꺼내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숨김없이 내어놓으니 마음이 참 가볍습니다. 남들이 저를 어떻게 보느냐는 그 사람들의 몫입니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며 보내기엔 시간이 너무나 아깝습니다. 대신 그 시간을 수행 정진하는 데 쓰려고 합니다.


일생을 살아오며 형성된 습관으로 걸려 넘어질 때, 정토회를 만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최명광 님. 일어나지 않길 바라던 일이 일어났지만, 그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좋고 나쁜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음을 몸소 실천하는 도반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글_정도현 희망리포터(대구경북지부 포항지회)
편집_도경화(대구경북지부 동대구지회)

전체댓글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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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행

어려움 속에서도 봉사하며 깨닫는 배움을 놓치 않는 모습에 힘을 얻습니다. 고맙습니다.

2024-09-18 11:37:54

감사합니다

아이가 참 귀엽습니다 가족 행복하시길 바라며 솔직하게 내어준 수행담 감사합니다

2024-01-22 17:46:03

오늘도행복

감사합니다.

2024-01-03 17: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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