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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일곱 딸의 장녀로서 60대가 된 지금까지 온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무조건적인 가족의 지지는 큰 힘이 되었지만, 한편으론 큰딸이라는 책임감이 나를 고집하는 부작용도 생겼습니다. 어머니는 어려운 살림을 꾸려가느라 밤낮없이 일했고, 베짱이처럼 살았던 아버지는 폭력남편으로 외도를 일삼았습니다. 그런 부모님을 바라보는 제 마음은 늘 불안하고 위축되었습니다.
저는 무시당하고 지는 것을 싫어해, 어릴 적에는 저보다 힘센 남자애들과 물불 안 가리고 싸울 정도로 거칠었습니다.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과도하게 일했고, 여러 전문 자격을 취득하며 기를 쓰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아니다 싶으면 폭발하는 성격 때문에 저에 대한 평가는 늘 극과 극이었습니다. 열심히 일할수록 오히려 불행감은 커졌고, 어느덧 고집 센 독신 여성이 되었습니다.
7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후로 병원 치료나 장례식 등의 모든 절차를 제가 독단적으로 결정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형제들과 갈등이 깊어졌습니다. 퇴직 후, 잠시 한가롭게 여행도 다녔지만, 마음 한편은 늘 허전했고 노년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자영업을 하는 동생의 부탁으로 3년 전부터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동생과 일하면서, 폐업 일보 직전처럼 운영하는 동생의 모습에서 저의 무기력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불같이 화를 내기 일쑤였습니다. 그런 동생이 정토불교대학에 다니면서 바뀌어 가는 모습을 보고 저도 입학하였습니다.
정토회에서 배운 불교의 가르침은 제가 생각하던 불교가 아니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조건에 구애 받지 않고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다”라는 가르침에 앞이 환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경전대학에 다니면서 제 삶의 오류를 돌아보며 수행 관점을 바로 세우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 삶은 일이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을 통해서만 성취감을 느끼고 존재를 인정받으려 했기 때문에,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외면해서 원망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분노가 올라왔는데 불교 공부를 하면서 알았습니다. 그 분노는 저 자신이 남들에게 약하고 못나게 보일까 봐 두려워서 했던 행동이었습니다. 문제는 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제 마음에 있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 천일결사 기도 중에 화내고 살아온 저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 부모 형제들에 대한 미안함과 연민으로 눈물이 났습니다. 가족 뿐만 아니라 제가 힘들게 했던 사람들에 대한 참회로 몸과 마음이 저절로 숙여졌습니다.
요즘 함께 일하는 동생이 “웬일이야, 언니가 화를 안 내다니~”하면서 엄청나게 신기해 합니다. 구순 노모도 제가 화를 안 내니 한결 편안해 하십니다.
물론 화가 싹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화가 불쑥 올라오기도 하고, 남들과 비교하며 괴롭기도 하지만, 저 자신에게 괜찮다고 말해봅니다.
이제는 ‘제법이 무아’임을 알았고, 정토회를 통해 감정의 노예로 살던 제가 인생의 주인 되는 희망도 보았기 때문입니다. 남은 제 과제가 있다면 소원해진 형제들과의 관계입니다. 제가 불법을 만나 삶이 긍정적으로 바뀌엇듯, 이 좋은 법이 형제들에게도, 이웃에게도, 전해질 수 있도록 인연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글_길현숙 (서울제주지부 송파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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