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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회와의 첫 인연은 96년 경 정토회가 북한 동포 돕기를 할 때였습니다. 대학 후배가 JTS 북한 돕기 팸플릿을 놓고 갔습니다. 한 아이 한 달 먹이는데 5천 원이라는 걸 보고, 열 명은 살려야지 해서 5만 원씩 기부하기로 한 것이 정토회와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다니며 일에 빠져 열심히 살았습니다. 일은 재미있었지만, 대학 때부터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마음 한구석에는 허전함이 있었습니다. 40대가 가까워져 오면서 존경하는 우리 아내가 이상하게 마음에 안 들고, 나름대로 뜻을 같이했던 사람들도 사라져 가며 사는 재미가 좀 없었습니다.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 책도 보고, PC 통신 동호회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가끔 정토회 교대 법당에 가서 법문도 들었습니다. 1999년 서초법당 개원 때 법륜 스님의 백일법문이 정토회에서 활동하는 확실한 계기였습니다. 법회 참석은 못 하고, 법문 녹음 테이프를 일주일 분량씩 사서 출퇴근하며 한 개씩 들었습니다. 법문을 들으며 나도 행복하고 세상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길은 여기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정토회에 쭉 그냥 붙어 있습니다.
대기업에서 21년간 업무용 정보 시스템을 개발하고 관리, 운영 및 서비스하는 업무를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정토회 전산실인 정보통신국에 찾아가 자원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실무자들이 JTS, 에코붓다, 월간정토 구독회원 등 제각각 흩어져 있었던 회원 정보를 통합하는 DB(데이터 베이스)를 만들자 해서 필요한 양식과 방법을 안내해주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99년 정토회가 서초법당으로 오면서 월간정토, 테이프구독자, 정토법당, 에코붓다, JTS, 좋은벗들 등의 회원정보를 통합관리 하기 위해, 2004년부터 인명정보시스템을 만들어 사용해 왔습니다. 2013년에는 회원관리업무를 보다 효율화하기 위해 일 잘하기로 소문난 영남사무국 활동가들이 매주 서울로 올라와 기존에 쓰고 있던 인명정보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할지 논의했습니다.
6개월 지난 어느 날 한 활동가가 책상을 치면서 벌떡 일어나 울분을 토했습니다. 비슷한 반복작업 때문에 현장 활동가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지난달에 했던 걸 이달에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느라 진이 빠진다며 이런 반복작업으로 고생하는 것은 하루빨리 중단해야 한다며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다들 숙연해졌습니다. 2005년 이후 사용했던 인명 정보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완전히 새로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일이 커졌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지금 정토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와우1' 시스템 입니다.
예를 들어, 개관식에 초대할 명단을 만들기 위해 모연 참석자 명단을 만들고자 하면 와우 시스템에서 뽑으면 그대로 나옵니다. 와우 시스템이 없다면, 지회마다 양식을 보내 모연했던 사람들의 명단을 적습니다. 이름과 전화번호를 나름대로 확인합니다. '이게 진짜 맞냐?' 이러면 또 누군가가 시간 들여 검증합니다. 지회 활동가들끼리 '이거 맞냐?' 그러면, 다시 기억을 더듬고 '아니야 이런 사람도 있어, 저런 사람도 있어' 그러면서 다시 추가합니다. 그것을 취합하고, 취합하고, 취합하고, 취합해서 명단이 만들어집니다. 와우 이전에는 그런 방식으로 취합하고 확인하는 작업을 활동가들이 해왔습니다.
와우를 개발하며 외주 개발을 하려니 너무 비쌌습니다. 당시 전산팀에서 몇 년간 팀워크를 맞춰 활동 중인 홍지원, 김태윤 님을 중심으로 봉사자를 모집했습니다. 그렇게 시스템을 개발할 봉사자들 모이라고 해서 약 60여 명이 모였습니다. 프로그램을 배우려고 지원 한 사람부터, 한 20년 프로그램 짠 전문가도 있었습니다. 매주 목요일 저녁 시간에 모여 개발 계획을 짜면서, 한 달에 한 번씩 1박 2일 워크숍도 하고, 유수스님 모시고 간담회도 하고, 주말에 모여서 정진한 후 스터디도 했습니다. 잘 아는 사람이 강의하고, 배우면서 팀워크를 다져가며 시작했습니다.
다른 한쪽으로 기존 멤버들과 시스템을 설계하고, 데이터베이스도 설계하였습니다. 막상 개발을 시작하니 전담으로 관리하는 고급 기술자가 꼭 필요했습니다. 이즈음, 호주 브리즈번의 박영규 님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유튜브로 스님의 즉문즉설 듣고 자신이 어려움에서 벗어났기에 빚을 갚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나타난 박영규 님이 개발 서버를 설치하고, 개발 관리 툴 같은 것들도 거의 만들었습니다. 박영규 님은 현재도 개발 봉사를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정말 많은 봉사자가 있었습니다. 몇 달 동안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많은 일을 해준 봉사자들도 있었습니다.
정토회가 서초 법당으로 이사 온 때부터 당시 정보통신국에서 주 1회 봉사했습니다. 그러면서 유수스님과 면담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3~40분 동안 아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였는데, 스님이, “거사님, 여기 찻잔에 찻물이 절반 정도 있습니다. 이걸 보고 누구는 절반밖에 없네, 누구는 절반이나 남았네, 합니다. 세상에서는 이왕이면 절반이나 남았네 라고 긍정적으로 보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사실은 내 눈이 이 물 높이보다 위에서 보면 절반밖에 없다 하고, 아래에서 보면 절반이나 남았네 하는 것 아닐까요?”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도저히 웃음이 참아 지지가 않아서 스님에게 사과하고 나왔습니다. 서초 법당에서 남부터미널까지 가면서 계속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내에 대한 제 욕심이었고, 제 기준이었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어떻게 맞춰 주느냐'가 당시 제 고민이었는데, 실제 상대의 고민은 한 번도 들어준 적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나 힘들어.” 이렇게 얘기하는데, ‘저 사람 힘든 일이 없는 사람인데. 아주 훌륭한 사람이라 그런 허접한 것으로 고민할 리 없는데'라며 제가 그려 놓은 모습을 아내에게 씌워 놓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훌륭하고 당당하고 멋있는 사람이라는 내 기준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약한 얘기를 하며 힘들어하거나, 불만을 얘기하면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전혀 못하고, '그런 것이 뭐 불만이냐?’라고 응대하며 갈등이 쌓였던 것입니다. 회사 일로 매일 야근하면서도 아내를 많이 배려했는데, 왜 불만이 있는지 이해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가 착한 노릇 하느라고 많이 참고, 눈치 보고 맞추는 게 많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상대의 진짜 고민은 듣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어리석은 욕심이 스스로 괴롭혔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사람들은 참회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웃음이 터졌습니다.
글_최미영(서울제주지부 서초지회)
인터뷰, 편집_서지영(강원경기동부지부 수원지회)
정토회의 회원정보 통합관리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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