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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정토회 왔을 때 남편 문제, 아이 문제, 시댁 문제를 내놓는 도반들의 나누기를 들을 때면 재미가 없었습니다. 저는 환경오염, 통일, 젠더갈등과 같은 사회문제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나누기를 듣고 싶어서 저녁반 법회로 옮겨야하나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법사님께 “문제가 없어서 문제입니다. 다른 도반들의 나누기에 공감하기가 어렵습니다.”라고 물으니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고 모두 다 괜찮다”는 말씀을 듣고부터 저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도반들의 나누기에 모두 공감해야 하고 주제가 비슷한 나누기를 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2011년 처음으로 정토회에서 선거제도를 실시했습니다. 추천제나 등록제가 아닌 자격을 갖춘 행자는 자동으로 후보로 등록되는 제도였습니다. 이 선거로 저는 서울정토회 총무 소임을 받았습니다. 집안 살림도 제대로 못 하는 제가 서울정토회라는 큰 살림을 어찌 꾸려가야 할지 매우 부담스러웠습니다. 제 앞으로 결재 서류들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법당 2층 창문 샷시가 떨어져서 수리하겠다, 법당 화장실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는다 등등. 저는 스스로 자격에 대한 의구심을 품고 있는데 눈앞에는 서류들이 쌓여만 가니 갑갑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안살림을 챙기는 일에 적응해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희망세상 만들기 활동 소임을 맡으면서 1년 반 만에 총무 소임을 내려놓았습니다. 4,5차에는 중앙사무처 환경사업부장소임을 맡아 했습니다. 6차에서 전법활동이 강화되면서 규모가 큰 수도권의 반쪽 전법담당 소임이 저에게 주어졌습니다. 이때 전법을 위해 지역마다 법당 만드는 일이 시작된 시기입니다. 지역 도반들을 만나고 법당 자리 보러 다니면서 재미있게 일했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 하면서 상대의 인생을 받아들이는 경험은 저를 풍부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2009년도에 정토회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강연회를 기획했습니다. 2006년도에 양천구청과 빈그릇운동 동참 서약을 맺은 적이 있습니다. 각 동 주민센터에서 주민을 모집해주면 정토회가 나가서 환경 강의를 하고 빈그릇 실습을 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양천구청이 강연회 준비에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양천구 문화회관을 강연장으로 빌려주었고, 각 동 게시판에 강연 홍보물을 부착해주었습니다. 강연장에는 1,286명의 관중이 참석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강연 참석자들에게 떡과 차를 간식으로 나누어주었습니다. 비닐을 쓰지 않기 위해 감잎을 주워 모아 깨끗이 씻어서 떡을 올려주거나 얇은 전병과자에 떡을 올려서 나눠줬습니다. 일회용 컵 대신 스테인리스 컵을 강연장 로비에서 삶고 씻어서 다시 썼습니다. 천여 명이 참석한 강연회장에 쓰레기가 하나도 나오지 않아서 구청 관계자들이 놀랐다는 후문이었습니다. 각자 맡은 자리에서 역할을 해 준 도반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고마운 마음입니다.
서초법당과 홍제동법당 밖에 없던 시절, 불사를 위한 보시금을 모으기 위해 많은 지역을 다니며 도반들을 만나고 설득했습니다. 3년 동안 서울 25개 구와 제주, 서귀포 포함 총 26개 법당을 낼 수 있었습니다. 양천법당을 열기 위해 법당 자리를 알아보던 중,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가 있었고 당장 계약금을 내지 않으면 이 자리를 놓칠 것 같았습니다. 사무국에 결재도 올리지 않고 함께 불사를 추진하던 도반과 같이 제 사비로 계약금과 보증금을 내버렸습니다. 물론 그 이후 사무국에서 호되게 혼나고, 시말서와 경위서를 작성해서 제출했습니다. 정토회는 법당을 내기 전에 현장답사도 하고 비용은 적당한지, 위치는 적절한지 수많은 검토 과정을 거칩니다. 꼼꼼하고 더딘 검토과정에서 날린 자리가 많습니다. 저는 또 좋은 자리를 놓칠까 애가 타서 빨리 결정해 달라며 닦달하기도 했지만, 지나고 보니 쉬이 결재를 내주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반복되면서 나중에는 오히려 제가 느긋해졌습니다. 이번 자리가 안 되면 다음에 또 좋은 자리가 나올 거라는 생각으로 편안하게 불사를 진행했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대면 활동이 축소되면서 정토회에서는 모든 법당을 철수하고 온라인화를 추진했습니다. 서울의 모든 법당 불사에 참여했던지라 제가 법당에 애착이 심했습니다. ‘어떻게 낸 법당인데.’ 하며 법당 철수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법당을 없애기 너무 아쉬우면 올해 8월까지 월세 더 내면서 더 가지고 있다가 없애세요. 돈 좀 더 버리면 되죠, 뭐. 혹시 죽은 사람이 살아날지도 모르니까 죽은 후에 바로 장례를 치르지 않고 방에 더 두었다가 시체가 많이 썩어서 냄새가 날 때 장례를 치러야 미련이 없어지는 것이 맞아요.” 2021년 온라인 정초법회에서 스님이 하신 말씀으로 모든 집착을 탁 내려놓았습니다.
참조 바로가기 클릭 : 스님의하루 “온라인 시대에 가장 큰 힘은 자발성입니다”
온라인화로 비용도 절감하고 법회 참석도 물리적 제한이 없어져 편한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법당으로 법회와 봉사를 나가면서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환경운동을 실천하는, 말과 행동이 일치된 선배 도반들의 모습을 보고 많이 배웠습니다. 온라인 세대 도반들은 선배 도반들의 맑고 청정한 실천 모습을 어깨너머로 배우고 직접 실천해 볼 수 없는 상황이 참 안타깝습니다. 전국 각지에 있는 실천지에 봉사를 많이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가 유행에 민감해지면서 비싼 브랜드 가방이나 신발을 사고 싶어 했습니다. 한심스럽고 못마땅했습니다. 반면에 아들은 엄마가 활동하느라 제대로 보살펴주지 않은 것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집에 들어오면 자기 방문을 꽝 닫고 들어가 나오지 않았고 엄마에게 표현하지 못한 불만을 여동생에게 전가하기도 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모든 것은 아이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6개월 정도 기도를 하고 나서야 모든 것이 저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저 아이가 저렇게 되도록 키웠구나.’ 이후 자신의 문제를 자각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토회 초기에 받은 기도문은 ‘자존심과 분별심을 내려놓고 상대방을 통해서 공부하겠습니다. 진실한 불자가 되겠습니다.’ 였습니다. 이 기도문으로 마음을 많이 내려놓았고 이런 부분들이 많이 고쳐졌다고 생각했는데,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속에는 엄청난 분별들이 많았습니다. 일 년 간의 법사 교육을 받으면서 이제야 제가 진짜 불자가 되는 과정을 배운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전까지 저는 무늬만 불자였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수계를 받들 때 ‘드디어 내게도 조금은 불자의 면모가 있구나.’ 하고 인정받는 느낌이었습니다. 화엄반을 다니는 일 년 동안은 매일 300배를 해야 합니다. 300배가 너무도 버겁게 느껴지던 날은 앉아서 주력을 하는 도반이 부러웠습니다. 순간 깨달았습니다. 제 몸이 성해서 절을 할 수 있는 건데 감사할 줄 모르고 있는 제가 보였습니다. 이 경험 뒤로 매일 300배를 가볍게 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법사로 활동을 시작해서 대중들과 면담을 할 때 엄청 떨렸습니다. ‘아직 나 자신도 뚜렷하게 서 있지 못한다.’는 생각에 부끄러웠습니다. 특히 남성 도반들이 ‘교리’에 대해 묻는 모습을 자주 봐왔던 터라, 저에게 교리에 대해서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몇 번의 면담을 하고나니 이제는 교리를 물어보는 도반에게 솔직하게 ‘모르겠다, 인터넷을 찾아보라’고 대답해주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여성단체에서 활동할 당시 제가 존경하는 회원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모습이 인상에 남았습니다. 그 때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제가 법사로서 잘 들어주는 사람으로 잘 쓰이면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잘 들어준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자꾸 제 생각을 중심으로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있는 그대로 ‘잘’ 듣는다는 것이 어려운 일입니다.
활동가들이 방향을 잘 잡고 가고 있는지 점검하고 상담을 하면서 처음에는 ‘답’을 주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질문자 스스로 말하면서 정리하고 답을 찾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상담할 때 직감적으로 보입니다. ‘아, 답을 찾았구나.’ 정토회 활동가들은 무얼 어떻게 하라고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답을 찾는 힘을 가지고 있었고, 저는 다만 바라보는 시각을 살짝 돌릴 수 있도록 건드려주면 되었습니다. 수행을 열심히 하니까 자기를 돌아보는 힘이 있고 살짝만 건드려줘도 알아차리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정토사회문화회관 원장 소임과 서울제주지부 9개 지회 중 양천지회 부담당법사도 겸하고 있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 원장으로 보리수 정진 담당도 하고 있는데, 1기 정진 참여자 17명으로 시작했습니다. 체계도 잡혀있지 않고 여러모로 부족했던 정진 프로그램이었는데 1기 참여자가 꾸준히 2기, 3기까지 남아있는 것이 참 귀한 일입니다. 1기를 보면서 2기, 3기 참여자분들이 어떻게 하면 되는지 배워가고 있는 게 보입니다. 1기 참여자들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하고 마음내서 봉사해주는 것에 참으로 고맙습니다. 이분들이야 말로 백조의 발과 같은 분들입니다. 지상층의 우아함을 위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지하층에서 전기, 기계 설비 등을 봐주고 있습니다.
정토회는 전문가 4명이서 하면 할 수 있는 일들을 100명이 역할을 쪼개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움직이는 정말 대단한 모자이크 붓다입니다. 정토회가 세계 어디에도 없는 협업과 봉사의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걸 혼자 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예전과 달리 모두가 함께 한다는 생각이 저를 가볍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부족한 부분은 또 다른 도반이 할 수 있는 만큼 채워준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고맙고 든든합니다. 앞으로 정토사회문화회관이 2차 만일의 세계전법과 사회실천활동의 전당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회관을 잘 관리하고 운영하는 소임에 충실하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지렁이를 정말 싫어했는데, 퇴비화 사업으로 공부삼아 자꾸 들여다보니 지렁이가 귀여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오히려 지렁이와 같은 보살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드러나지 않고 조용히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삶 말입니다.
인터뷰&편집_서지영(강원경기동부지부 수원지회)
녹취&글_김난희(강원경기동부지부 원주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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