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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15년에 불교 대학을 졸업하고, 2019년 〈깨달음의 장1〉에 다녀오기까지 정토회에 발을 푹 담그지도, 훌쩍 떠나지도 못했습니다. 겉으로는 반듯하고 단단해 보여 아무 걱정이 없을 것 같지만 남의 눈을 지나치게 신경 씁니다. 그래서 사람 만나는 것이 피곤하고 열등감도 깊었습니다.
결혼 후, 두 아들을 키우면서 제 방식대로 따라주지 않는 아이들을 잡으려고 화를 많이 냈습니다. 그런 날에는 잠든 아이들을 보며 죄책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생협하는 지인을 통해 가정법회를 접하고, 스님을 알아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불교대학에서 배운 대로 남편에게 숙이는 연습을 했지만 사실 그것은 남편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에게 숙인다는 것은 제가 세운 기준에 대한 집착의 또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아이들을 떼어 놓고 깨달음의 장에 가는 것이 어려웠던 것도 아이들에 대한 심한 집착이었습니다.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고 법당 봉사를 하면서 천천히, 하지만 촉촉이 내린 따뜻한 법 비는 저에게 그야말로 행운의 단비였습니다. 제게는 너무나 어려운 과제인 ‘주변 눈치를 안 보고 주인으로 서도록’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말다툼을 하면 며칠이고 냉랭했던 것이 지금은 다음날 기도시간을 넘기지 않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니 참으로 가볍습니다. ‘그동안 내가 지은 업식이 얼마인데 이렇게 쉽게 가려고 하나’ 이런 마음으로 저는 오늘도 꾸준히 수행합니다. 현재 법회 담당, 정기법회, 7대 행사를 맡고 있습니다. 깨지기 어려워 보이는 단단한 껍질을 깨고 이제 막 나왔고, 아직도 깨는 중입니다.
절에 다니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불교를 알았습니다. 대학 때는 불교 학생회를 다녔습니다. 결혼 후에도 절에 가서 자식 잘되기를 기도할 만큼 저는 불교와 한 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제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부처님 앞에서 울기까지 했으니, 불교에 대해 전혀 모르는 무지한 세월이었습니다. 하루도 안 빠지고 했던 100일의 절절한 기도는 자식을 위한다고 하면서 제 욕구를 채우고자 했음을 정토회에 와서 깨달았습니다. 8년 전 불교대학에 입학한 첫날, 신자(信者)와 수행자(修行者)의 차이를 듣고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깨치는 순간이 있어도 오랜 기간 몸에 밴 습관은 한 번에 버리기 어려웠습니다. ‘기도하면 좋다’는 주변의 말에 또 흔들려서 한참을 더 다른 절에 다니며 기도했습니다.
불교대학을 졸업하며 받은 법명이 무착심(無着心), ‘집착하는 마음이 없다’라는 의미의 법명은 욕망과 집착을 내려놓으라는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세상의 이치도 모르면서 욕심은 많았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집착이 강했습니다. 이제는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융통성 없는 거 아세요?’라는 법사님의 한마디에 ‘참으로 융통성 없이 산 나 때문에 주변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건강을 비롯해 이런저런 문제로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정토회에 돌아와 군산 법당에서 ‘불교대학 청강, 경전반 수강, 수행 법회 진행’을 한 번에 했습니다. 그 후 광명 법당으로 옮겨 불교대학 홍보를 열심히 했습니다. 독하게 집착하던 마음이 변해 일상에서 소소하게 돌이킬 수 있게 된 지금, 불교대학 봉사를 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사는 행복을 느낍니다.
7년 전, 주로 듣던 팟캐스트가 있었습니다. 팟캐스트에 올라온 스님 방송을 우연히 접하고 ‘참 재미난 스님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꾸 듣다 보니 즐겨 듣던 방송보다 스님 방송이 더 좋아졌습니다. 그 후 6개월쯤, 아파트 담장에 걸린 정토회 불교대학 홍보를 보고 바로 입학했습니다. 30대 후반의 미혼이라 연애, 술, 축구, 담배 등으로 외로움을 달랬으나 그런 것들은 반복적으로 괴로움만 더 해줄 뿐이었습니다.
제 젊은 시절의 끝없는 고민과 자책은 하루하루를 불행하게 했습니다. 그러다 불교대학에서 모둠 활동을 하며 만난 도반들의 관심과 배려는 참 따뜻했습니다. 또 평소에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아 JTS 거리모금, 통일 운동 등 정토회 활동을 즐겁게 했고, 괴로움의 수렁에서 어느새 벗어나는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지금은 천일결사 모둠장을 맡아 모둠원들과 소통하며 사람 만나는 재미를 느낍니다. 10-1차 모둠장이 된 후, 직장과 정토회 일을 같이하니 바쁩니다. 여름 명상 참가 후 진행된 새물 정진은 수행을 한층 더 깊게 해주었습니다. 지금 저의 소망이 있다면 10차 천일결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모둠장을 잘 끝내는 것, 내년 100일 법문을 집중해서 들어보는 것입니다.
10살 때부터 23살까지 아침부터 밤까지 탁구만 죽어라 쳤습니다. 저는 운동 성과도 좋아 엘리트 운동선수의 길을 밟았습니다. 옳고 그른 것이 분명하고, 나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혼 후 가정 경제를 거의 책임지며 남편에 대한 원망도 컸지만 더 큰 괴로움은 자식 문제였습니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갔던 큰딸이, 어린 나이에 결혼했고, 결국 이혼했습니다. 남편을 닮아 어떤 상황에서도 천하태평인 딸, 두 손주를 도맡아 키우다시피 한 저는 태평양을 혼자 둥둥 떠내려가는 것처럼 외로운 심정이었습니다.
그토록 힘든 순간, 버스 정류장에서 본 법륜스님의 정토 불교대학 전단. 천주교 신자였지만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항상 바빴던 저는 불교대학이 진행되던 월요일 저녁 2시간이 유일한 휴식시간이었습니다. 심신이 지친 저에게 평온하고 한결같은 스님의 법문은 정말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개근할 정도로 성실했지만, 손주 걱정에 깨달음의 장에서조차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경전반을 졸업하고 불교대학 봉사를 한 지가 햇수로 4년째입니다. 불교대학 강의를 반복해서 들으니 처한 상황은 변하지 않았으나 다름을 인정하고, 원망과 미움이 사라졌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저처럼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저 자신의 눈높이에 모든 행동 기준을 두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제 개인에게는 더 바랄 것이 없지만 한가지 원(願)이 있다면 가족들이 정토회를 만나 부처님 법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새물정진을 한, 네 명의 수행자들 이야기를 지면 사정으로 다 싣지는 못했지만, 모두 감동이었습니다. 깊이 있는 수행담을 들으며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었고, '소임이 복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눠준 도반들에게 감사합니다.
글_정진아(광명법당 희망리포터)
편집_권영숙(정토회 홈페이지 운영팀)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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