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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회는 매일 아침 운동을 함께했던 친구를 통해 인연을 맺었습니다. 어렸을 적 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녔던 기억으로 불교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습니다. 아이들도 다 컸고, 마침 불교 경전을 배우고 싶어 구리법당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수업을 듣던 어느 날, 벽에 걸린 명심문 “내 인생의 희망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를 읽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살면서 내 인생, 내 자신, 내 마음을 살핀 적이 없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그동안 가정을 이루고 생계를 꾸리자니 답답한 사람이 우물 판다고 억척을 떨며 살았습니다. 남편은 같이 장사하며 도움을 많이 주었지만 마음은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알게 모르게 쌓여 온 갈등이 기다렸다는 듯 표면으로 떠오른 것도 이즈음이었습니다. 대형차량을 이용해 운송업을 시작한 남편은 보름씩 지방으로 다니다 2~3일 집에서 쉴 때도 나가고 없었습니다. 두 아들도 군 복무로, 직장으로, 다 바빴습니다. 갑작스럽게 텅 빈 둥지에 홀로 버려진 느낌이 저를 더욱 수행으로 이끌었습니다.
빠지지 않고 수업에 참석했고, 후배 도반들을 위한 영상 봉사, 신생법당 100일 정진, 일요일날 새벽 5시에 300배 정진을 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법당 활동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경전반 재학 중에 인도성지순례를 다녀왔지만 출발 전에 1주 빠른 수업을 들어놓고, 귀국 당일에도 수업에 출석해 개근으로 경전반을 졸업했습니다. 그 사이 맡겨진 저녁팀장 소임으로 요일마다 있는 모든 수업이나 법회에 최대한 참여해 여러 도반들과 만났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소통하다보니 눈에 띄게 저녁팀이 활발해졌지만 문제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주말이면 서초법당에서 했던 수련이 제겐 큰 힘이 되었습니다. 다들 나름의 고충이 있었고 나누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느꼈습니다. “도반들과 갈등이 없을 수 없다. 다들 가진 업식이 있고 그 공부를 위해 왔다."는 어느 선배의 말은 봉사 책임으로 인한 압박감이나 마음의 부담을 크게 덜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 이게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고 내 문제였구나’를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소임이 복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이유입니다.
가까운 가족 특히 언니가 저에게 많이 달라졌다고 말합니다. 예전에는 제 의견을 고집했고, 제사 시간도 저한테 맞춰야 했는데 이젠 그러지 않습니다. 남편은 성품이 워낙 조용하기도 했지만, 마음의 문이 닫혀서인지 ‘응. 응. 응.’ 외에 대화라곤 없었습니다. 지금은 같이 드라마라도 보고, 제가 TV를 볼 수 없을 정도로 말을 많이 걸어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헤아려보니 3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그동안 저만 잘난 줄 알았고, 억울한 마음에 남편을 내몰며 살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저와 지금까지 살아준 남편이 고맙습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토회와 인연을 맺어준 친구와, 제게 저녁팀장 소임을 맡겨 준 구리법당의 모든 도반들에게도 감사합니다.
“만약 정토회를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저는 없습니다. 누가 떠밀어도 절대 안 나갑니다. 죽을 때까지 정토회에 꼭 붙어있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안경숙 님. 농사짓고 나누기하는 스님의 하루를 보면서 두북 수련원으로 농사지으러 가면 좋겠다고 합니다.
정토회에 와서 불교 공부를 하고, 경전을 배운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현실은 그대로인데 정토회를 만나 내가 행복해졌다고 합니다. 법륜스님과 정토회에 감사하며 회향하는 마음으로 이웃에게도 행복을 전하겠다는 안경숙 님. 그 행복한 발걸음을 응원합니다!
글_심은서 희망리포터(남양주법당)
편집_권영숙(정토회 홍보국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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