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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성게>는 신라 고승 의상 조사께서 화엄경을 요약해서 쓰신 글로 7자로 된 30구절, 총 210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팔만대장경 중에서도 양이 가장 방대하고 내용이 깊다 하는 <대방광불화엄경>에서 축약해서 그 진수를 뽑은 글입니다. <월간정토>는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스님의 법문으로 <법성게>를 연재합니다.
일체중생이
본래 부처인 것을...




법륜 스님 본지 발행인

궁극에는 실제의 자리에 앉는다

시고행자 환본제(是故行者 還本際) 
이런 까닭으로 수행자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본래의 자리란 때 묻지 않는 본래 마음자리를 말합니다.  
파식망상 필부득(叵息妄想 必不得) 
망상을 쉬지 않고는, 절대로 얻을 수가 없다. 번뇌 망상인 사량분별을 버리지 않고서는 이 업식의 안경을 벗어 던지지 않고서는 법의 성품인 존재의 참모습을 절대로 바로 볼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무연선교 착여의(無緣善巧 捉如意) 
아무런 조건 없는 좋은 방편으로 뜻대로 중생을 이롭게 하지만 
귀가수분 득자량歸家隨分 得資糧) 
중생이 집으로 돌아갈 때는 자기 분수 따라 양식을 얻어간다.

  이게 무슨 뜻인가? 앞에서도 말했지만, 부처님의 자비의 빗물은 온 중생에게 차별 없이 내리지만, 중생은 그 받는 그릇의 모양이나 크기 따라 달리 받아간다는 뜻입니다. 부처님은 어떤 차별이나 어떤 조건을 붙여 중생을 교화하는 게 아니라, 아무 조건 없이 아무런 차별 없이 일체의 중생을 이롭게 하는데 중생은 자기 근기 따라 얻는다는 말이지요.

  이다라니 무진보(以陀羅尼 無盡寶) 
  장엄법계 실보전(莊嚴法界 實寶殿)
  '다라니'라 하면 ‘진실한 말’이란 뜻이지요. 그러니까 이 부처님의 진실한 말씀은 쓰고 또 써도 끝이 없는 무궁무진한 보배로서, 법계를 장엄하니 사실은 보배궁전과 같다. 그래서 궁좌실제 중도상(窮坐實際 中道床). 궁극에는 실제의 자리에 앉으니 곧 중도이다. 구래부동 명위불(舊來不動 名爲佛). 깨닫고 보니 본래부터 오고감이 없으니 그 이름을 부처라 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삼스럽게 깨달아서 새롭게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본래 부처였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법화경」에서는, 부잣집 아들이 어릴 때 길 잃고 집을 나가 거지로 살다가 오랜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으나 자기가 본래 거지 출신인 줄 잘못 알고 살아온 아들은 그 집이 자기 집인 줄 모르고 구걸하는 것을 보고 부자가 거지에게 자기 아들임을 깨우치게 한다는 어느 장자의 이야기를 비유로 들고 있습니다.

자기가 거지인 줄 아는 부잣집 아들처럼...
  어떤 장자가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이 아들이 어릴 때 집을 나가서는 길을 잃어버려 돌아오지를 않아요. 부모가 그 아들을 열심히 찾았지만 결국 찾지를 못합니다. 그렇게 되어 그 아들은 거지로 몇십 년을 살았는데, 살다 보니 자기 고향도 잊어버리고 자기 집과 자기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없어졌어요. 그래서 매일 남의 집에 가서 품을 팔아서 겨우 먹고 살았지요. 이렇게 떠돌다가 어느 날 자기 아버지 집이 있는 그 동네로 가게 됩니다. 대궐 같은 집이었는데, 그 집 대문간에 서서 밥을 얻어먹으려고 들어가려 하니까 그 집 마루에 어떤 노인이 앉아 있어요. 거지도 만만한 집이어야 밥도 얻어먹으러 들어가는데 이렇게 집이 너무 크고 웅장하면 보통 얼어서 못 들어갑니다. 그래서 들어갈까 말까 입구에서 망설이며 서성이고 있는데, 평상에 앉아 대문간을 바라보던 노인이 보니까 아 그 거지가 꿈에도 그리던 자기 아들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너무 반가워서 “내 아들아!” 하고 쫓아나갔더니 이 아들은 자기를 혼내 주러 오는 줄 알고 겁을 먹고는 부리나케 도망을 가요. 

그래서 노인이 하인을 시켜 아들을 붙들어 오도록 합니다. 그랬더니 이 거지가 너무 놀라서 기절해 버렸어요. 그러자 장자가 생각하기를 ‘아, 이래서는 아이를 죽이겠구나.’ 싶어서 그냥 내버려 두고 돌아갑니다. 그랬더니 한참 기절해 있다가 다시 일어난 아들은 자기를 잡으려는 사람이 없어져서 이제 살았다 싶어 얼른 도망갔어요. 그래서 장자는 하인에게 거지 옷으로 갈아입히고는 자기 아들인 그 거지를 찾아가게 하지요. 그리고는 “야, 이 사람아, 저기 가면 좋은 집이 있는데 그 집 가서 나와 같이 일하면 딴 데 가서 일하는 것 보다 두 배의 돈을 주니까 가자”고 일하도록 부추긴 것이지요. 그래서 주로 외양간의 똥 치우는 일을 시켰는데 수고비를 두 배로 주니까 열심히 일했어요.

  하루는 이 아버지도 일부러 거지 옷으로 갈아입고 그 아들이 사는 모습을 봤는데, 아들이 그 거친 일을 아주 열심히 하면서 머슴방에서 재미있게 산단 말입니다. 아들의 입장에서는 옛날에 떠돌이 할 때와 비교하면 참 잘 사는 게 되겠지요. 이걸 본 장자는 가슴이 너무 아팠지만, 그냥 놔뒀어요. 그래 한참 세월이 흘러 집 안 청소하는 일을 시키고, 그다음에는 하인 중에서도 조금 높은 직급의 일을 맡겼어요. 창고를 관리하는 일이었지요. 곳간의 곡식을 밖에 내주고 또 받아오고 돈도 헤아리는 일을 맡긴 겁니다. 이렇게 이 집에서 한 이삼십 년 살아보니까 살림도 맡아 할 줄 알게 된 거지요. 

그러나 이렇게 그 집의 전 재산을 다 운영하고 있으면서도 이것이 자기 재산인 줄을 몰라요. 여전히 그 집의 종으로 사는 겁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장자가 죽게 됩니다. 그제야 장자는 모든 사람을 불러놓고 하는 말이 “이 사람이 바로 어릴 때 잃어버린 내 아들이요. 이 모든 재산이 이 사람 거요.” 이렇게 말하고는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줬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머슴, 이 거지가 바로 우리 중생입니다. 본래가 다 부처이고 부처의 아들딸인데도 우리는 부처 된다는 소리만 들어도 놀라요. 거짓 노릇하면서 얻어먹는 그 몇 줌의 양식, 그 몇 품의 품삯에 팔려서는 그것을 빼길까 봐 겁을 내는 겁니다.

  부처님의 법을 공부하라고 하면 ‘이거, 내 재산 내놓으라는 거 아니냐? 마누라 버리고 스님 되라는 소리 아닌가. 내 자식 뺏어가는 거 아닌가.’ 이런 걱정을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성불의 길로, 자기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는 겁니다. 부처님께 빌어서 그 품삯 몇 푼 받는 데만 관심이 있어요. 전 재산도 가질 수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 공부를 조금 해서 이 전 재산을 관리하는 데까지는 왔지만, 여전히 자기가 주인인 줄은 모릅니다. 그래 부처님이 ‘자 이제부터 네가 부처다. 바로 너희가 나의 진실한 아들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도 일체중생이 다 본래 부처인 것을 알리기 위해 오셨고 우리는 이 업식의 미망에 싸여서 중생인 양 살고 있지만, 이것만 떨쳐 버리면 본래 부처의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죠.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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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댓글 2개
  •  맑은혜안보명 2018/01/09 22:53
    감사합니다^^♡
  •  서정희 2018/01/02 14:04
    스님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본래 부처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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