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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에서 마주앉은

나와 나의 민족

-2017년 동북아 역사기행을 다녀와서

 

  
▲비룡폭포 앞에서 법륜스님과   

박정원(성북법당 청년대학생)

     

  러시아의 부동항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두만강과 압록강을 따라 만주 벌판의 고도인 심양에 이르기까지 910일을 쉼 없이 달려왔다. 열흘 동안 하나하나 모두 별처럼 빛나는 유적지와 마주했고, 소중한 인연을 만나 아름다운 추억을 차곡차곡 쌓았다. 고려인이 서투른 우리말로 직접 소개해준 신한촌과 20만 고려인들이 짐짝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쫓겨났던 라즈돌리노예 역을 볼 때 나라 잃은 민족의 슬픔이 어떤 것인지 절절히 느꼈다. 연해주의 광활한 대지 위에 자신의 흔적을 간신히 남기고 있었던 발해의 솔빈부와 염주성. 그리고 그 오지에서 20년간 발굴에 매진하고 있었던 한국-러시아 발굴팀의 아이처럼 빛나던 그 눈빛은 여전히 내 가슴속에 남아있다.

 


▲천지 

  도반들과 함께 러시아-중국 국경선에서 추었던 거리의 탱고, 북한을 마주한 국경 앞 광장에서 조선족과 신명 나게 놀았던 풍물 한 판은 내 가슴을 뜨겁게 뛰게 했다. 그리고 좀처럼 쉽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은 백두산 천지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대륙의 힘찬 기상이 느껴지는 발해-고구려 유적지들을 두루 둘러보며 책과 사진으로는 느낄 수 없었던 우리 민족의 기상을 한숨 크게 들이마셨다.

     

자기혁명 - 일기를 쓰다

  동북아 역사 대장정의 모든 기억을 내 가슴속에 오롯이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첫날부터 일기를 썼다. 처음에는 단순히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이야기하기 위함이었지만, 의외로 첫째 날  일기장에 쓰인 단어는 시골 의사로 유명한 박경철 작가의 책 제목인 자기혁명이었다. 내가 왜 그때 그런 단어를 뜬금없이 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 단어를 일기장의 맨 마지막 줄에 또박또박 적었고, 둘째 날과 셋째 날 그리고 계속되는 일정 속에서도 내내 그 단어를 가슴 속 한편에 품고 다녔다. 아무래도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여행하다 보니 마음에서 무언가 올라와 그랬던 것이 아닐까 정도로만 생각하고 넘어갔던 것 같다.

 


▲ 발해 흥륭사에서(왼쪽 첫 번째가 글쓴이) 

 

  그렇게 별생각 없이 묻어 두었던 자기혁명이라는 단어가 대장정의 종착지인 이곳 심양, 스님의 마지막 강의 속에서 도대체 왜 내가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인지 마치 어두운 방에 등불을 켜듯 환하게 밝아왔다. 스님께서는 잊힌 우리 민족의 기상과 현재 우리에게 만연해 있는 패배감과 열등감을 극복해야 하는 이유와 그 방법에 대해 강의하셨다. 스님의 강의를 들으며 나는 어느 순간부터 민족의 자리에 나 자신을 투영하고 있었다.

 

  한때는 대륙을 경영하며 만주 벌판을 누볐던 우리 민족의 기상처럼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나는 성공해서 큰 사람이 되어 우리 사회를 위해 일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골 촌구석에서 호기롭게 도전했다. 피나는 노력 끝에 그렇게 원했던 대학생이 되었지만, 바람과는 달리 언젠가부터 대륙의 기상을 잃어버린 우리 민족처럼 열등감과 패배감에 휩싸여갔다.

 


▲ 스님의 마지막 강의 

  나는 좀처럼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성적은 곤두박질쳤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파편처럼 부서졌다.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채 자괴감에 시달렸던 나는 자신을 반지하 자취방에 유배시켰고 바깥세상과 단절시켰다. 햇빛을 보는 것이 부끄러웠고,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 그리고 자꾸만 이런 일을 주변 환경 탓으로 돌렸다.

 

  ‘나는 흙수저야’ ‘저 친구들은 집에 돈이 많기 때문에 당연히 더 잘할 수밖에 없는 거야’ ‘지금 사회가 이 모양이니 나도 별수 없는 거야’ ‘내 잘못이 아니야, 단지 내 상황이 너무 어려울 뿐이야...’ 자책과 증오와 원망과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나의 20대는 그렇게 자꾸만 곪아 갔다. 마치 허리가 잘린 채 힘을 잃고 주변국의 처분만 바라보고 있는 우리 한민족처럼.

 


▲신한촌 고려인을 소개하는 법륜스님 

 

  스님의 마지막 강의를 듣고 지금에서야 알 것 같다. 내가 왜 그렇게 자기혁명이라는 단어를 일기장에 썼었는지...그것은 그저 별생각 없이 끄적거렸던 상념이 아니라 내 인생의 큰 화두였다. 더 이상 패배감과 열등감에 짓눌려 스스로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었다.

     

바로 지금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서 시절이 좋고, 여건이 좋았던 때는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어려운 여건을 탓하며 거기에 굴복하기보다는 미약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주어진 상황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냈다. 그 엄혹했던 일제 치하에서도 민중들은 자신이 죽을 줄 알면서도 수 없이 일어났고, 서슬 퍼런 독재의 총부리가 정면으로 향할 때도 저항하였다. 우리는 주변 환경에,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지 않는 당찬 기백이 있는 민족이었다.

 


▲ 염주성 가는길 

 

  하지만 나는, 아니 우리 청년들은 이를 너무도 쉽게 잊어버리고 있다. 지금 나를 포함한 청년들은 알 수 없는 패배감과 무력감으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에게는 항상 오늘보다 더 어두운 내일이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다. 상황은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곳곳에는 한숨 소리만 가득하다.

 


▲조.중국경에서(두번째줄 오른쪽 두 번째가 글쓴이) 

 

  바로 지금 이 때, 나는 감히 다시 우리의 역사를 떠올려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주어진 상황에 굴복하지 않는 힘을, 정면으로 받아버렸던 우리의 기백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 이 글은 월간정토 2017년 10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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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댓글 1개
  •  보리안 2017/11/30 22:54
    정말 그러네요.
    가슴 울리는 깨달음입니다...
    박정원 법우님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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