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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출가 행자들의 출가 이야기

백일출가 후

다시 만난 나

 


                                                          김지영 백일출가 30

   

회향 후 다시 방문한 두북수련원 그리고 낯설음

내가 사는 부산과 가까운 곳에 있는 두북수련원에 7월 한 달간 행자원 식구들이 머문다는 소식을 들었다. 백일출가 회향을 하고 한 달이 지나서 그런지 수련원과 사람들이 많이 그리운 상태였다. 지금 안 가면 후회할 것 같아서 혼자라도 가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백일출가 회향할 때 재입재 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봉사하러 다시 들어가다니 괜한 짓을 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 겨우 바깥 생활에 적응해서 안정기에 접어들었는데 괜히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은 아닐까. 백일출가 31기는 많이 낯선데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이런저런 걱정을 안고 두북수련원에 도착했다. 이런 걱정들 때문일까. 깨달음의장과 백일출가 때 왔었던 두북수련원인데 낯설기만 했다. 졸업하고 내 공간이 사라진 후배들의 학교에 온 느낌이었다. 마음이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원래는 농사나 일수행을 도울 생각으로 왔었다. 그런데 홍보팀 법우님이 홍보영상을 만드는데 도움이 필요하다며 잘 왔다고 반갑게 맞아주셨다. 마음이 출렁이고 있던 내게 홍보팀이 있어! 걱정마!’ 하며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백일출가 때 가장 힘들었고 또 싫은 마음도 많이 올라왔던 홍보영상 만드는 일을 흔쾌히 하겠다고 해버렸다.

     

이제 홍보일을 돕는 것으로 정해졌으니 홍보팀이라는 소속감을 느끼면서 본격적으로 일에 나섰다. 그런데 마음이 다잡아진 바로 다음 날 홍보팀 법우님이 10일 명상수련이 있어 문경으로 돌아가게 됐다. 다시 낙동강 오리알이 된 느낌이었다. 심지어 내 존재 자체가 민폐인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바쁜 사람들에게 나까지 챙겨야 하는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닐까? 백일출가 때 늘 빠지던 나는 쓸모없어의 늪에 다시 빠져들기 시작했다.

 

  
   

홍보영상은 진척도 없고

사전에 아이디어 회의를 했던 것을 기초로 작업에 나섰지만 시작부터 막막하게 느껴졌다. 막막할 때는 기획안과 비슷한 분위기의 참고영상을 찾아서 실마리를 잡고는 했는데 이번에는 참고영상 조차 찾기가 쉽지 않았다. 작업은 진척이 없지, 수련원 생활은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에 긴장의 연속이지. 점점 마음이 버거워졌다.

     

백일출가 동기들이 돌아가며 찾아와 홍보영상 만드는데 힘내라고 매실차, 비타민, 복숭아 등을 챙겨주고 가는데 마음이 불편했다. 다들 이렇게 내게 잘 해주는데 나는 그에 보답할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10일이 다 지났는데도 영상을 완성하지 못하게 되면 어쩌나 걱정됐다.

 

  
   

그러다 사무실 밖에서 백일출가생들이 마음나누기를 하는 걸 듣고 나도 마음 나누기가 하고 싶어졌다. 내 심정을 내가 말 안 하는데 누가 알아주겠는가. 그때 스텝 중 한 분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 순간 민폐고 뭐고 하는 생각은 다 내려놓고 그 법우님한테 하나둘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영상에 대한 아이디어도 내주시고, 카메라도 빌려주겠다는 등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하셨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러자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힘이 솟아났다. 법우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복잡하던 머릿속도 정리됐다. 일단 하기 어려운 초반 30초 부분은 남겨두고, 하기 쉬운 뒷부분부터 음악에 맞춰 작업을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상을 만들기 시작하니 작업에 속도가 붙어 금방 끝이 났다. 일단 완성을 해놓고 보니 미흡한 부분의 수정 방향이 자연스럽게 보였다. 그렇구나. 처음부터 완벽하게 하려니 안 됐던 거구나. 한 번에 잘 하려고 하기보다 한번 해두고 부족한 부분을 수정해가면서 작업하는 게 훨씬 낫다는 걸 깨닫게 됐다.

 

  
   

일단 영상을 완성해놓고 나니 나는 무엇을 그렇게 혼자서 끙끙 알고 있었는지 허탈해졌다. 수련원 사람들도 나를 민폐로 여기기는커녕 그냥 다들 자기 생활한다고 바빠서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보였다. 홍보영상도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 이야기 나눠가며 내 실력대로 그냥 하면 되는 거였다. 끝나고 돌아보니 참 간단한 이치였다. 나중에 명상수련 끝나고 돌아온 홍보팀 법우님이 수정을 요청해서 거의 영상을 새로 만들다시피 했는데도 한번 자신감이 붙고 나니 작업속도는 더 빨라져 만 하루 만에 수정을 가볍게 끝냈다.

     

결국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전부다.

나는 그냥 내가 일 욕심이 많아서 내 실력이 내 마음에 차지 않아서 괴로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나의 근본적인 괴로움의 뿌리가 아니었다. 근본뿌리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데 있었다. 어떤 일이든 맡으면 척척 해내고, 언제나 밝게 웃고, 행복해 보이는 나만 원했다. 어떻게 일을 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나를 감추고, 일이 힘들어서 끙끙 앓는 마음을 감추고, 불행해 보이고 남들이 싫어할 만한 모습을 감추기 급급했다. 행복해 보이는 것에 집착했다. 처음 해보는 일과 익숙하지 않은 일일수록 이런 부정적인 내 모습을 감추기 힘드니까 더 괴로웠던 것이다.

     

마음나누기를 하며 감추고 있던 내 못난 모습을 도반에게 남김없이 보인 순간 마음이 탁하고 가벼워졌다.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지금 여기에 행복이 있구나. 잘 하고 싶은 마음에 눈이 멀어 어느새 또 높다란 이상을 그려놓고 나를 거기에 끼워 맞추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은 일을 할 때마다 또 나를 미워하며 받아드리지 않으려 하겠지만 그때마다 다시 정신 차리고, 나를 받아들이고 또 인정하며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월간정토 2017년 10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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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행복한 수행자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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