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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강좌 법성게(5)

<법성게>는 신라 고승 의상 조사께서 화엄경을 요약해서 쓰신 글로 7자로 된 30구절, 210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팔만대장경 중에서도 양이 가장 방대하고 내용이 깊다하는 <대방광불화엄경>에서 축약해서 그 진수를 뽑은 글입니다. <월간정토>는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스님의 법문으로 <법성게>를 연재합니다.

   찰나가 곧 

한량없는 긴 시간

  
 

     

법륜스님 본지발행인

   

무량원겁즉일념 일념즉시무량겁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時無量劫)

구세십세호상즉 잉불잡란격별성 

(九世十世互相卽 仍不雜亂隔別成)

     

상대적인 시간

위의 네 문장은 시간이 공()함을 말하는 내용입니다.

무량원겁즉일념, 일념즉시무량겁,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짧은 시간을 무수히 모아놓은 것이 긴 시간이고, 긴 시간을 수없이 나누면 짧은 시간이 됩니다. 그런데 위 문장을 풀이하면 한량없는 긴 세월, 즉 영겁의 긴 시간이 곧 일념이다. 또한 그 일념, 찰나가 곧 한량없는 긴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예전 같으면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 하겠지만, 오늘날 과학의 발달은 이 뜻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옛 속담이 있지요. 나무꾼이 산에 가서 신선들이 바둑 두고 있는 걸 잠시 옆에서 구경하고 있는데, 자기가 가지고 있던 도낏자루가 썩어서 도끼가 툭 떨어진단 말이에요. 그래서 퍼뜩 정신이 듭니다. 그래 집에 돌아갔는데, 자기 집인데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죠. 놀라서 당신이 누군데 내 집에 있냐고 물은 겁니다. 그러니까 오히려 그 사람이 왜 남의 집에 와서 자기 집이라고 우기느냐고 큰소리쳐요. 그래 시비를 가리다 보니 그 살고 있던 사람이 자기 손자였죠. 잠시, 한나절 신선들이 바둑 두는 것을 구경하다가 인간계에서 백 년의 시간이 가 버린 것을 몰랐던 거지요.

     

  오늘의 과학은 공간도 시간도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습니다. 만약 빛보다는 느리다 해도 빛의 속도에 가까운 로켓을 타고 우주를 여행한다면, 로켓 안의 시간은 점점 느려지고, 그 안의 모든 기능 - 시계와 우리의 삶 등 - 전체가 느릴 겁니다. 그래서 로켓 안에서 3년밖에 안 지났다 해도 지구에서는 이미 150년의 시간이 흘렀다는 거지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에 의해 제시된 것이지요. ‘시간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말입니다.

     

지상에서 제일 가까운 천상인 사왕천에 가면 그곳의 하루는 인간계의 50년입니다. 또 더 높은 천상에서는 어떠냐? 인간계의 백 년에 해당되고, 또 그 위의 천상계는 인간계의 3백 년에 해당됩니다. 그거면 거기 하루는 그렇게 길게 느껴지는 것이냐? 아닙니다. 거기 사람들의 하루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이 똑같은 하루에요. 그런데도 이렇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천상에서 우리 인간계를 내려다보면, 우리 인생은 하루살이인 거죠. 우리는 50년을 살았고, 70, 90년을 살았다 하고, 즉 젊어서 죽었다느니 오래 살았느니 하지만 그 세계에서 보면 하루살이와 같겠죠. 하루살이가 오후 5시에 죽느냐 오후 9시에 죽었냐 하는 정도여서 인간 수명의 길고 짧음이 별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원자의 세계

오늘날 우리는 지구에서의 하루나 한 해의 길이가 수성과 금성, 목성, 토성에서의 그것과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위 1, 2, 10, 100년이란 시간은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아주 긴 세월입니다. 그런데 우주에서 생성되고 사라지는 별들의 수명은 100억 년 정도가 되는데, 이런 수명을 가진 별들의 생성 소멸도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밤하늘의 폭죽놀이 같아서, 펑 하고 생겼다가는 사라지고 또 생기고 하는, 그런 짧은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인간은 별이 한번 생겼다 사라지는 그 찰나, 그것도 수억 등분한 그 시간 속에 생존할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시간인 1년이나, 거기에 비해 아주 짧은 순간인 1초는 매우 짧은 시간이냐? 아닙니다. 원자의 세계에서 보면 아주 긴 시간이지요.

  

 

원자를 한번 봅시다. 원자에는 핵이 있어요. 핵 속에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있고, 이 양성자와 중성자 사이를 움직이는 중간자라는 게 있습니다. 핵 속에 양전기를 띤 양성자가 여러 개 있으면, 서로 밀어내는 힘으로 붕괴되어 결합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핵이 꽉 결합하고 있어요. 왜 그럴까? 이 이유를 일본의 유가와 히데끼 교수가 가설을 세워서 설명했어요. ‘중간자라는 것이 있어서, 중성자에서 이것이 튀어나오면 중성자가 양성자가 되고, 이것이 양성자에 가서 붙으면 양성자가 중성자가 되는 겁니다. 미리 양성자 중성자가 결정이 되어 있는 게 아니라, 양성자에서 중성자, 중성자에서 양성자가 되고, 이렇게 계속 바뀌는데 얼마나 짧은 시간 동안에 바뀌느냐? 10-24Sec 랍니다. 1024승분의 1초 동안에 바뀐다고 합니다. 이 시간에 비하면 1초는 거의 영겁에 해당되는 긴긴 세월입니다. 그래서 무량원겁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 변하지 않는다는 절대적인 관념에 사로잡혀 있어요. 깨달음은 시공을 초월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세십세호상즉 잉불잡란격별성, ‘구세와 십세가 서로 의지하고 있으나, 구별되어 복잡하거나 혼란스럽지 않구나.’ 하는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지요.

     

구세와 십세는 서로 의지해 있다

구세(九世)’가 무슨 뜻인가? 이 세계가 한번 이루어져서 머물다가 흩어져 사라지는 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한다하는데 이 세계가 한번 생겨나서 사라질 때까지를 1대겁(大劫)이라 합니다. 그런데 겁에는 이름이 있어요. 우주 공간에는 세계가 수없이 많이 있고, 또 그것이 이루어졌다 사라지기를 수없이 하니까 한 세계를 말할 때 공간적으로는 무슨 세계인지-사바세계인지 극락세계인지 그 공간명을 말해야 됩니다. 또 생겼다 사라졌다 하는데, 그때마다 겁의 이름이 있어요. 지금 머무는 우리의 세계는 사바세계인데 어느 겁에 속하느냐? 현겁(現劫)에 속합니다. 이 사바세계는 한 세계가 있다가 사라지고 다시 생긴 것인데, 현겁인 이 세계가 이루어지기 전 과거의 세계를 장엄겁(莊嚴劫)이라 합니다. 그리고 미래에 오게 될 세계를 성숙겁(星宿劫)이라 해요. 그러니까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해 말할 때 반드시 현겁의 사바 세계에 출현한 부처님이라 하는 겁니다. 시간적으로는 현겁이고 공간적으로는 사바세계인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분이라는 말입니다.

     

  <화엄경>을 읽으면 각 세계마다 부처님 명호가 무엇이며 세계의 이름, 겁의 이름이 뭔가 하는 것이 반드시 나옵니다. 이렇게 과거, 현재, 미래 겁이 있는데 과거 겁을 과거세 현재 겁을 현세, 미래 겁을 미래세, 그리고 합하여 삼세라 말합니다. 그런데 과거 겁에도 현재 겁에도 과거·현재·미래가 있기 때문에 이것을 합해서 9세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구세를 포함하는 1세를 십세라 말합니다. 이 구세와 십세가 호상즉하다. 서로가 의지해 있다는 말이에요. 찰나에 무량겁이 들어 있고 무량겁이 곧 찰나가 돼요.

     

  그러면 시간 개념에 혼돈이 오지 않겠느냐? 그렇지 않다. 잉불잡란격별성(仍不雜亂隔別成)이라. 복잡하고 혼란스럽지 않고 따로따로 떨어져서 이루어져 있다는 말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비유를 들어 말한다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차원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죠? 수학에서 공간 안의 점을 인정하는 데 필요한 독립 좌표의 수가 몇 개인가에 따라 1차원이다. 2차원이다. 3차원이다. 4차원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1차원은 직선이죠. 2차원은 가로 세로가 있는 평면입니다. 3차원은 가로 세로 높이가 있는 공간이고, 4차원은 거기다 시간 축이 있는 시공간을 말해요. X,Y,Z,T축이 있는 것입니다.

 

그럼 2차원하고 3차원을 비교해 봅시다.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법당은 평면입니다. 이 평면에서 목욕탕과 법당과 다방을 같이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삼등분해서 저쪽 편에는 목욕탕을 하고, 가운데는 다방을 하고, 이쪽에는 법당을 할 수가 있겠지요. 그러나 전체를 다 목욕탕으로 하고, 전체를 다 다방으로, 전체를 다 법당을 할 수는 없죠. 그러면 뒤섞여서 법당이 물바다가 되고 다방이 물바다가 되고 목욕탕에 의자들이 놓이고 하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집니다. 그런데 3차원은 평면이 아니고 높이가 있어요. 그러니까 1,2,3층을 지울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1층은 목욕탕을 하고 2층은 다방을 하고, 3층은 법당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위아래가 다 투명한 유리로 된 건물이라 할 때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어떠냐? 전체가 물이 출렁이는 목욕탕인데, 또 전체에 사람들이 차 마시면서 앉아 있고, 또 사람들이 앉아서 스님 법문을 듣고 있어요. 혼란스럽고 복잡하게 뒤섞여 있어 2차원 세계에서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러나 3차원에서 보면 층층이 별개의 세계이죠.

     

그러면 4차원에서는 어떠냐? 우리가 여기 빌딩을 짓고 머무는데, 이 빌딩이 지금처럼 이 장소에 서 있고, 또 같은 장소에 소나무가 서 있고, 또 호수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3차원 세계에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4차원에서는 이런 일이 성립됩니다. 왜냐? 시간 축이 있어서 그 축에 따라 다 따로 있는 것이지만 우리같이 3차원의 눈을 가지고 볼 때 그건 성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처럼 구세와 십세가 서로 연관되면 혼란스럽고 복잡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각각 따로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체 속에 부분이 있고 부분 속에 전체가 있으면 뒤죽박죽이 될 것 같고 찰나 속에 원겁이, 원겁이 찰나 속에 있으면 뒤죽박죽이 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구세와 십세가 서로 관계되면 혼란하고 복잡할 것 같이 생각되는 것은 우리가 우리 관념에 사로잡혀서 사물을 보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더 말씀드리지만, 평면밖에 보지 못하는 2차원의 관념을 가지고 산다면 우리는 층층이 다른 공간들이 공존하는 3차원에서 가능한 이 현상들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공간을 평면적으로 삼등분해서 법당, 목욕탕, 다방이라 한다면 이해가 되지만, 전체가 다방이고 전체가 목욕탕이고 전체가 법당이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리겠죠. 2차원 세계에서는 그건 도저히 이야기될 수 없는 것이지만, 3차원 세계에서는 성립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의 모든 관념을 뛰어넘을 때 즉 백천간두진일보(百千竿頭進一步)’ 할 때 거기에 자유의 세계, 열반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결국, 처음 여섯 구절에서 말한 총체적인 실상을 여기에서 다시 한번 시간과 공간으로 나누어 밝힘으로써 우리가 갖고 있는 관념의 벽을 깨고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도 우리의 관념이 절대화한 것이니, 실상은 공()함을 알라는 것이지요(다음 호에 계속)

 

 

* 이 글은 월간정토 2017년 9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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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댓글 1개
  •  서정희 2017/10/16 14:18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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