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정토맑은마음,좋은벗,깨끗한 땅을 실현하는 정토회


 

특별한 도반을 만나다


 

  박성희  백일출가 29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는 삶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을 찾아서

  현대 산업사회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방법이란 오로지 타인보다 내가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며 사는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거나 나를 돌아보거나 하는 일은 사치라 생각하며 39년을 경쟁하며 살아왔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과 깨달음의장을 통해 지금까지 외로움과 괴로움에 쌓여 살아온 나를 보게 되었다. 뭐라 표현할 순 없지만, 한껏 가벼워진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아주 당당히 백일출가라는 것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오랜만의 면접이라 긴장되는 마음으로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한 사람이 들어와서 말을 건다.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거는 것에 불편함이 확! 올라왔다. 그리고 묻는 말들이 지금도 여전히 기억나진 않지만 쓸데없는 얘기였던 것 같다. 속으로 이 사람과는 같이 하고 싶지 않다. 제발!!’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 사람과 면접을 보는 내내 속으로 이 사람 뭐라는 거야!!’ ‘! 답답하다.’라는 생각으로 면접은 끝이 났다.

 

  

만 배를 해야 하는데, 나는 무릎관절 고질병 환자

  면접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병원을 전전했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관절이 좋지 않았고, 슬개골 연골연하증 진단을 받은 지 오래된 무릎관절 고질병 환자이다. 정형외과와 한의원을 오가며 월급을 탕진하고 있었고, 이 병원 저 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백일출가 원서를 냈고, 면접을 봤으니 이제 만 배를 준비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평소에 108배도 하지 않던 내가 3일 동안 만 배를 해야 한다니, 생각만으로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왕하기로 한 것이니 해본다. 무조건 해본다. 입방 일주일 전 하루 500배로 만 배를 준비하고, 무릎주변 근육재생시술을 받았다.

 


 

  드디어 입방, 그리고 만 배. 여전히 긴장과 초조함을 놓지 못한 채 시작하는 만 배.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래! 병원 다닌 값을 해야지! 하하하며 쉽게 보는 순간 죽을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몇 초전까지만 해도 근육재생시술 잘 받고 왔다고 좋아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그 시술 덕에 허벅지 근육이 터질 듯 빵빵해졌다. ‘! 뭐야! 그 시술 때문이야.’라며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계속 구시렁거리는 나를 발견했다. 갑자기 뭔지 모를 민망한 마음이 올라왔다. 순간 피식하며 웃음이 터져 나왔고, 지금껏 살면서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는 내 모습이 보였다. 난 절을 하려고 왔는데 절이 하기 싫어서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있었다.

 

  그리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그냥 습관대로 휩쓸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것만은 넘겨보겠다고, 이를 악물었고, 또 악물었다. 절을 한배, 한배 하면서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두 가지, 고개를 숙이면 방석 위 기도포에 쓰인 , 하고 합니다.”라는 명심문과 고개를 들면 불단에 앉아계신 부처님의 고행상. 이 두 가지를 번갈아 노려보면서 이번만은 나에게 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렇게 순간순간 변하는 내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런 어이없는 내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도 조금씩 느끼게 되었다.

 

  

일하며 만난 특별한 도반

  무사히 만 배를 마치고 입재를 했다. 그리고 매일의 일상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 수행 시간. 나는 사회에 있을 때부터 쉴 새 없이 일을 해온 터라, 일 수행 시간만은 다른 사람들보다는 쉽게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문경의 날씨가 추워지면서 전 도량에 방풍 작업을 하게 되었다. 일 수행 조장이었던 나는 조원들과 함께 창문과 문에 뽁뽁이를 붙이고 비닐을 붙이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일 나누기 후 각자 3, 4명으로 나누어져 작업을 시작했다. 나는 사회에서 혼자 하는 작업과 주로 매니저 역할을 했었던 터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같은 도반들에게 일을 시키고 있었고, 도반들의 의견은 물어보지 않고, 독단적으로 일을 해나가고 있었다. 그때 한 도반이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그 도반은 백일출가 면접 때 이 사람만은 같이 하고 싶지 않았던, 날 불편하게 만들었던 그 사람이었다. 설상가상 우린 같은 일 수행 조였다.

     

일과 수행의 통일

  나는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완벽하게 해내고 싶어 했고, 그 도반은 같은 시간을 하더라도 쉬엄쉬엄하고 싶어 했다. 나는 그 도반을 몰아붙였다. 그 도반은 항상 나와는 다른 의견을 내면서 나와 부딪쳤다. 그리고 마음 나누기 시간 나는 마음을 나눠야 하는 그 시간에 마음 퍼붓기를 했고, 서로 마음이 상하기도 했고, 때론 이렇게 붉으락 푸르락 하는 나를 그 도반은 아무렇지 않은 듯 대하기도 했다. 그러기를 30일째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팀장님을 찾아가 저는 도무지 그 도반이랑 같이 일 못 하겠어요. 같이 하느니 제가 나가겠습니다.’라고 얘기했다. 팀장님과 면담하면서 내 발로 내가 들어온 곳에서 나가겠다고 포기하겠다고 칭얼거리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여전히 나를 내세우려 기를 쓰고, 뭐든 내 손을 거쳐야 일이 된다고 생각하고, 상대를 이해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그리고 괴롭기를 자청하는 내가 보였다.

 


▷잔디 심기 작업 중(왼쪽이 글쓴이) 

 

  그 후 나는 그 도반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연구라기보다는 이해하고 싶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좋고 싫음이 확실해서 미친 듯이 좋아하고, 미친 듯이 싫어하는 성향이 아주 강했다. 호불호가 강한 업식, 상대를 배척하려는 업식이 있음을 알게 됐다.

 

  백일출가 50일째 난 다시 팀장님을 찾아갔다. ‘이번만은 도무지 안 되겠어요. 진짜 그 도반과 같이 못 하겠습니다.’라고 말했고, 백일출가 80일째 역시 팀장님을 찾아가서 똑같은 말을 했다. 그러면서 속속들이 드러나는 나의 업식들. 꿈에 그리던 29기 백일출가 회향 날 행자들은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고, 나는 수련원에 남기로 해서 며칠후 다시 문경수련원으로 왔다. 그 도반도 왔다. 하지만 우린 지난날처럼 상처 주고 상처받기에 급급했던 100일과는 좀 달라졌다. 상대의 의견을 듣지 않으려고 했던 귀를 열고, 상대의 마음을 보지 않으려고 했던 마음을 보려고 노력했다. 그것만으로도 더 이상의 시비 분별은 사라졌다.

 


▷일체의장- 잔디 심기 작업 중 (맨 뒤 오른쪽 첫번 째가 글쓴이) 

 

  그리고 예비행자대학원 과정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 도반과 다시 부딪쳤다. 여전한 나의 업식에 그 도반은 다시 걸려들었다. 그리고 다시 반장님을 찾아갔다. 나는 여전히 상대를 탓하고 미워하고 있었다. 나와 다른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내 기준으로 분별하고, 나에게 상대를 맞추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100일을 살았지만, 전혀 변한 게 없었다. 세세생생 쌓아온 업식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꾸준히 알아차리고 내려놓을 뿐이다. 내 성질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상대에 대한 이해가 생긴다.

     

지금 이대로 괜찮다

  백일출가를 결심하고 면접, 만 배를 거쳐 일 수행을 통해 명심문 , 하고 합니다.”를 마음에 새기며 100일이 지났고, 예비행자대학원을 통해서는 새로운 소임과 프로젝트를 맡아서 잘 쓰여집니다.”라는 명심문으로 또 50일이 지나갔다.

 

  난 여전하다. 그 업식 어디 가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내가 그런 어리석고, 어리석은 사람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50일 동안 나는 학교나 사회에서는 절대로 배울 수 없는 나를 이해하고 그 마음을 알아가는 법을 배웠다. 이것 하나면 충분하다. 항상 건조하고 메마르게 앞만 보며 살아온 내 39년 동안 이렇게 열정적이고 따뜻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나를 알아가는 시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나는 진정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게시판의 성격에 맞지 않는 글이나, 상업적 홍보글은 통보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CD 댓글등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다음글 [JTS]인생의 황혼기를 민다나오에서 살아보기
이전글 [49일 문경살이] 지금 이 순간 행복하기

정토회
패밀리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