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반, 켜 둔 송수신기에서 아침을 알리는 멘트가 들렸습니다. 이미 4시 반이 되기 전부터 순례단의 방은 불이 켜지고 있었습니다. 각자 방에서 송수신기에 맞춰 아침 예불과 천일결사기도에 정성을 다하였습니다.

특히 오늘은 부처님께서 스스로 깨달은 바를 다섯 비구에게 처음 설하여 법이 전해질 수 있음이 증명되고 이후 야사에게 깨달음의 기회를, 또 야사의 부모님, 구리가 장자 부부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재가 수행자로 탄생한 ‘사르나트(Sarnath)’를 순례하는 날입니다.
특히, 본격적인 순례를 시작하면서 수행자로서의 삶을 다짐하는 수계식이 예정되어 있어서 더욱 기대가 되었습니다.

순례 버스를 타려고 나와 보니 짙은 안개에 버스 앞도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전날 오전에 인도인, 한국인 스텝들과 함께 사전답사를 해 두었는데 막상 오늘 아침 일어나 보니 안개가 짙어 아무래도 너무 일찍 나서서는 감기에 걸리기 딱 좋은 날씨인 것 같았습니다. 우선 출발시간을 10분 늦추고 짙은 안개속에 사람들이 긴 시간 서 있으면 추위에 떨게 되어 최대한 밖에서 대기시간을 줄이고 차에서 있다가 내릴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스님과 염불하시는 무변심 법사님을 선두로 400명의 순례단은 짙은 안개 속에서 조용히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탑돌이를 하였습니다. 다르마라지크 탑터를 돌고 다메크 탑을 세 번 돌아 다메크 탑을 바라보고 오른쪽 한 쪽에 자리 잡았습니다. 안개로 으슬으슬 추위는 있었지만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명상으로 들숨날숨에 집중하니 그대로 평온해졌습니다.


점점 안개가 짙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다메크 스투파가 안개 속에 사라졌다 드러났다를 반복했습니다. 경전 독송까지 마친 뒤, 숙소에서 지은 밥과 가져온 반찬으로 도시락을 먹으니 꿀맛이었습니다. 공양을 하고 나니 그때서야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습니다.

공양 이후에는 수계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수행자로서 계를 지키며 살아가겠다는 서원을 세우는 수계식‘을 전법이 시작된 이곳 ‘사르나트’ 다메크 스투파 앞에서 거행한다는 것이 감격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연비의식을 거치고 오계수계를 약속한 다음, 가사까지 받는 것으로 수계식을 잘 마쳤습니다. 이제 스님은 가사를 여법하게 수한 426명의 수행자들과 다시 다메크 스투파를 세 바퀴 돌았습니다. 다메크 스투파를 돌고 있는 가사를 입은 수행자들의 행렬이 사뭇 여법하고 경건하게 보였습니다.

스님은 다메크 스투파를 돈 뒤, 기러기 행렬이 움직이듯이 차례로 행렬을 이끌었습니다. 그 행렬대로 바라보는 방향만 바꾸어 다메크 스투파를 배경으로 426명이 함께 사진촬영을 하였습니다. 진행 측에서 400여명의 단체사진을 어떻게 원활하게 찍을지를 고민을 많이 했는데 자연스럽고 여법하게 자리할 수 있어 놀라웠습니다.

순례객은 전체 차량 촬영과 차량 별 촬영, 조별 촬영이 끝내고 차량별로 법사님들과 함께 사르나트 곳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아쇼카 석주, 물간다꾸띠터를 차례로 돌아보고 사르나트 박물관에서 아쇼카 석주 위의 4사자 상과 초전법륜상을 찾아본 뒤, 신물간다꾸티를 방문하고 각 차량 별로 영불탑에 참배를 하고 강가강으로 갔습니다.

산스크리트 대학 앞에서 순례객들은 삼삼오오 어울려서 릭샤를 타고 다사수와메드 가트까지 오라는 과제(?)를 받았습니다. 릭샤를 타고 클락션 소리, 많은 사람들, 소, 염소, 자전거가 한데 어울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곳을 뚫고 지나갔습니다.

강가강에서 배를 타고 강변을 바라보니 한 쪽에서는 화장터가, 그 바로 아래에는 사람들이 목욕을 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인도라는 곳, 그 속에 문화를 느낄 수 있는 현장이었습니다.

복잡하고 꽉 막힌 거리를 겨우 빠져나와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오늘 정리 법문에서 스님은 이렇게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오늘 저희는 두 가지 순례를 했습니다. 첫 번째는 부처님이 처음 설법하신 사르나트 지역을 순례했고요, 두 번째는 불교와 직접적 관계는 없지만 인도의 종교인 힌두교의 최대 성지인 바라나시 강가강, 즉 갠지스강을 우리가 한번 둘러봤습니다. 강가강을 둘러보는 것은 인도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왜 부처님이, 새로운 가르침을 펴냈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즉, 이런 인도의 바탕 위에서 새로운 가르침이 나왔기 때문에 부처님이 그냥 ‘이것이 진리다’라고 법을 설하신 게 아니라 온갖 모순이 있는 데서 그 모순을 극복하는 바른 길을 제시했다는 걸 이해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 ‘바른 길’은 모순을 느끼던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의 빛이 됐고, 모순을 느끼지 못하던 사람들에게는 ‘헛소리’라고 치부되어 오히려 붓다를 비난하고 모함하는 빌미가 됐습니다. 지금도 인도인들은 강가강에서 목욕하면 성스러워진다는 신앙을 갖고 있는데, 하물며 2600년 전에는 어떠했을까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인도는 이렇게 믿음이 아주 깊고 견고한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불교 같은 종교, 즉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가르침이 생겨나 대중을 깨우고 한 때 지지를 받았다는 것은 굉장히 특이한 일입니다.

불교는 어떻게 보면 가장 비인도적인, 인도적 성향이 적은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어서 주요한 법문이 마무리 되고 즉문즉설 시간이 되었습니다. 세 명의 순례객이 질문을 하였는데 그중에 한 분의 내용을 싣습니다.

“오늘 스님 법문 중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루려는 것 때문에 수행이 어렵다. 그 뿌리는 육근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부처님이 제3의 길인 중도라는 길을 안내해 주셨다’고 하셨는데, 저도 제 자신을 굉장히 바꾸고 싶어서 정토회의 여러 프로그램에 나름대로 열심히 참여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 바람만큼 잘 바뀌지가 않아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좀 힘들더라고요.

제가 궁금한 건, 저는 한 달에 한 번 문경에서 3000배 수련을 하는 소임을 맡고 있는데, 가끔 제가 수행을 하는 건지, 극기훈련을 하는 건지 헷갈린다는 겁니다. 저는 별로 바라는 게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안 해 보는 게 수행이고, 또 하기 싫어도 한 번 해 보는 게 수행이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 마음으로 하고는 있는데, 가끔 ‘몸을 혹사시키는 것과 수행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게 궁금하더라고요. 거기에도 중도의 길이 있는 건가요? 그리고 또, 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어보면 자신을 바꾸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니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행복해지는 길과 자신한테 손해가 너무 크면 한 번 변해 보려고 노력하는 길, 그 두 가지 길이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던데, 제 나이가 이제 서른여덟이거든요. 저는 아직까지는 저 자신을 바꾸고 싶은데, 이대로 그냥 사는 게 더 좋은 건지, 아니면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바꾸는 게 더 현명한 건지, 스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얘기를 들어봐서는 바꾸기가 어렵겠네요.(모두 웃음) 바뀔 가능성이 별로 없어요. 왜? ‘바꾸는 게 좋을까? 안 바꾸는 게 좋을까?’ 이래서는 바뀔까요, 안 바뀔까요?”

“(청중들) 안 바뀌어요.”(모두 웃음)

“저한테 ‘바꾸는 게 좋아요? 안 바꾸는 게 좋아요?’라고 묻는 수준에서는 바뀔까요? 안 바뀔까요?”

“(청중들) 안 바뀌어요.”(모두 웃음)

“예, 안 바뀌어요. 저한테 물을 게 아니라 제가 말려도 ‘저는 바꾸고 말겠습니다’, 제가 말려도 ‘저는 죽었으면 죽었지, 바꾸고 죽는 게 차라리 낫습니다.’ 이렇게 해도 잘 안 바뀌는데,(모두 웃음) 저한테 바뀌는 게 좋겠냐고 묻는 수준이라면 바뀔 수가 없는 거예요.

그리고 ‘3000배를 해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이 말은 하기 싫다는 얘기 아니에요?(모두 웃음) 하기 싫으니까 안 하면 되지요. ‘내가 3000배를 해 보겠다’면 그게 극기훈련이 됐든 뭐가 됐든 그냥 3000배를 하는 거지요. 3000배가 수행인지, 극기훈련인지 모르겠다고요? 당연히 극기훈련이지, 그게 무슨 수행이에요?(모두 웃음) 그런데 극기훈련도 수행의 한 부분이 될 수는 있어요. 극기훈련을 하면서 자기가 그만두려고 할 때 그것을 알아차리고 뛰어넘는, 이런 훈련의 관점을 가져야지요. 여러분들은 조금 힘들면 ‘이거 고행주의 아닌가?’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분들은 다 부처님의 고행상을 보셨지요?”

“예.”

“그 정도가 아니면 고행주의인지 의심할 필요가? 없어요.(모두 웃음) 여러분들은 지금 쾌락주의가 문제이지, 고행주의는 문제가 안돼요,(모두 웃음) 전혀!(모두 웃음) 하기 싫으니까 부처님의 중도를 핑계 삼아 쾌락을 쫓으려고 중도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가만히 보면 대부분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먹고 싶어도 안 먹는다, 아무리 피고 싶어도 안 피운다, 아무리 졸려도 안 잔다는 건 정해졌는데, 수행을 하려면 참고, 이를 악다물고 안 자는게 아니라 안 참고 편안하게 안 자야 ‘중도’가 되는 거예요. 자는 건 수행에 전혀 해당이 안 됩니다.(모두 웃음) 자는 거하고 안 자는 거하고, 먹는 거하고 안 먹는 거하고, 담배 피우는 것과 안 피우는 것 사이를 적당히 오가는 게 중도라고 생각하면 전혀 안 맞습니다. 제 말 이해하시겠어요?”

“(청중들) 예.”

“다리가 아픈데 펴면 이건 무조건 쾌락주의예요. 참고 안 펴면 고행주의이고, 알아차리고 안 펴면 뭐라고요?”

“(청중들) 중도.”

“예, 중도를 지금 연습하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도 모르게 자꾸 참아지지요? 그러니까 ‘참았어’ 이러면 고행주의이지만 중도로 가려는데 자꾸 안 되가지고 펴버리면 이건 괘락주의이고, 자기도 모르게 참아지는 건 연습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거란 얘기예요. 그럼 펴도 돼요. 그럴 때 ‘아, 내가 싫은 건 못 견디는 습관이 있구나.’ 이렇게 자기를 아는 거예요. 그런 내가 ‘나쁘다’거나 그런 내가 ‘참았으니 장하다’고 보지 말고, 그런 게 ‘현재의 나’라는 걸 알아가는 거예요. 그리고 계속 연습을 더 해야지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대부분 수행을 욕심으로 하거든요. 그래서 그 습관이 드는 데에 10년이 걸렸으면 그 습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데에도 10년 걸릴 예상을 하고 연습을 해야 되는데, 10년간 습관을 들여놓고 1년만에 자유로워지려고 하니까 순전히 수행도 욕심으로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이 ‘꾸준히 해라’고 하신 거예요. 여러분들은 욕심으로 하기 때문에 바짝 애썼다가, 안 되면 ‘에잇, 모르겠다’고 포기했다가, 이걸 반복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단박에 되는 게 아니니까 애쓰지도 말고, 포기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안 되는 것도 아니니까 꾸준히 해 나가셔야 돼요. 이런 관점을 가져야 됩니다.

그런데 제가 처음에 얘기했잖아요. 여러분들은 지금 뭐든지 다 욕심으로 하는 거예요. 돈을 버는 것도 욕심으로 하고, 공부도 욕심으로 하고, 수행도 욕심으로 하는 거예요. 백리 길을 가려면 한 발, 한 발 걸어서 가야 되는데, 한 열 발쯤 가놓고 ‘아직도 못 왔나? 에잇, 이래 갈 바에야 안 가는 게 낫겠다.’ 자꾸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공부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인도 현지까지 온 거예요, 연습하려고. ‘부처님께서 더위도 피하지 않고 추위도 피하지 않고’ 이런 말이 경전에 많이 나오는데, 그 추위가 어떤 추위인지 오늘 보셨죠?”

“(청중들) 예.”

“또 여름에 와서도 그 더위가 어떤 건지를 봐야 부처님이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그런 추위와 더위에 부처님이 어떤 자세를 가졌기에 부처님은 추위도 피하지 않고, 더위도 피하지 않으셨을지 이해가 조금이라도 되지요. 우리는 실제로는 그렇게 잘 안 되잖아요. 잘 안 되니까 우리가 문제라는 게 아니라 우리는 안 되기 때문에 이 정도로 사는 건데, 그것을 넘으려면 연습을 해서 넘어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는 야구선수 보면 야구하고 싶고, 농구선수 보면 농구하고 싶고, 이런 식으로 사는데, 한 선수가 그러한 역량을 발휘하려면 무릎이 까지고, 발등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자꾸 공짜로 먹으려고 해요.

그러니까 여러분, 너무 욕심을 내지 마세요. 지금 상태도 괜찮아요. 그 정도도 다 괜찮아요. 그러나 조금 더 개선하고 싶다면, 꾸준히 그런 쪽으로 나아가세요. 그런 만큼 변하니까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욕심으로 하니까 기대만큼 변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포기하죠. 왜? 여러분들은 원인을 짓는 것과 결과가 ‘언발란스’예요. 노력은 10쯤 해 놓고 결과는 100을 바라기 때문에 그래요. 여러분들도 다 지금 잘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의 기대가 너무 큰 거예요. 여러분들이 한국에 살다가 이 인도로 와서 공항에서 자고, 오늘 같이 추운데 가서 줄 서고, 여기가 무슨 군대도 아닌데 나이가 육십이 되어서 줄 서서 다니고, 쫓아가고, 기다리고, 이러는 것도 여러분들한테는 굉장한 일이에요.(모두 웃음) 제가 봤을 때 잘하지는 못 하더라만.(모두 웃음) 그래도 여러분들이 그런 일을 하는 그 자체가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습관에 따른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볼 땐 여러분들이 잘은 못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 보려고 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기특한 거예요. 제가 원하는 만큼은 안 돼도요.(모두 웃음)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기특해요. 요즘 한국인들이 이런 데 와서 이런 식으로 다니겠어요? 아무도 안 그래요. 그런데 지금 여러분들은 ‘수행’이라는 이름으로 하고 있잖아요. 제가 하도 ‘너희들은 수행자다’고 세뇌를 시켜서(모두 웃음) 지금 여러분들이 이렇게라도 연습을 해 보는 거지, 안 그러면 벌써 불만을 터뜨리는 등 난리가 났을 거예요.(모두 웃음) 그러니까 이렇게 한 번 연습을 해 보는 거예요. 이렇게 한 열흘 지나고 보면, 지금은 이게 굉장히 힘들지만, 지나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니에요. 폭신한 데 자나, 의자 깔아놓고 자나, 처마 밑에서 자나, 잘 때, 그때의 문제지, 자고 나면 똑같아요.알았어요?”

“(청중들) 예.”

“음식 먹을 때 그때 입맛이 문제지, 먹고 나면 옥수수 먹으나 빵 먹으나, 먹고 나면 배부르고, 다음 날 되면 다시 배고파지는 건 다 똑같아요. 인생이라는 게 그래요. 호텔에서 보름 자나, 순례자 숙소에서 보름 자나, 한국으로 돌아갈 때 안 죽고 살아만 있으면 다 똑같아요.(모두 웃음) 그러니까 이런 걸 보면서 여러분들이 교훈을 얻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어떻게 하라’고 말하지 않는 거예요. 왜? 첫째, 지금 힘들지만 지나고 보면 지금 힘든 게 반드시 나중에 나쁜 게 아니거든요. 이렇게라도 안 하면 여러분들이 이걸 극복해 보려고 하겠어요? 안 하지요. 저랑 같이 와서 이렇게 하니까 극복을 하지, 자기네끼리 와서 하라 그러면 이렇게 할까요? (모두 웃음) 안 하지요. 그 다음에, 지금 좋다고 나중까지 좋은 게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편한대로 호텔에서 묵으며 돌아다니면 갈 때 아무 것도 자각한 게 없을 거예요. 왜? 여기서도 한국에서 살 듯이 살다 가면 무슨 자각이 되겠어요? 다른 걸 보고, 다른 환경에 부딪쳐 봐야 자각이 되지요. 여러분들은 자기 남편이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여기 사는 남자들 꼬라지를 보니 ‘아이고, 우리 남자가 저들보다는 낫다’든지,(모두 웃음) 하다못해 이런 자각이라도 생기는 거예요.

여기서 좋으면 좋은 대로 모범이 되고, 나쁘면 나쁜 대로 반성이 되기 때문에 관점만 잘 잡고 있으면 환경이 좋으면 좋은 대로 경험이 되고, 나쁘면 나쁜 대로 경험이 되는 겁니다. 이렇게 어떤 상황에 처하든 그것을 자기 것으로 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온갖 사고가 나도 저한테는 그게 다 경험이에요. ‘아, 이건 내가 고려를 못 했구나’, ‘아, 이럴 수도 있구나’, ‘다음에는 이 체크해야지’, ‘이런 건 먼저 체크해야지’ 이런 걸 알게 되니까요. 잘 되면 잘 되어서 좋고, 잘못 되면 우리의 역량이 늘어나게 됩니다. 잘못된 걸 체크해서 시정하면 역량이 늘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상황이든 상황에 처하는 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갔더니 그런 상황이 벌어진 거고, 그걸 통해서 내가 상처를 입을 거냐, 거기서 경험적 교훈을 얻을 거냐 하는 건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예요. 날씨가 춥거나 덥거나 안개가 끼는 걸 내가 선택할 수는 없잖아요. 날씨가 추울 걸 대비하거나 안개가 끼니까 내가 어떤 대비를 할 거냐, 하는 건 내가 선택할 수 있지요. 보름동안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환경은 여러분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계속 살아야 돼요. 그런데 그 환경 속에서 행복할 건지, 불평만 할 건지는 여러분들 각자가 선택할 수 있는 요인이라는 거예요. 호텔 등 숙소는 지금 여러분들이 선택할 수가 없잖아요. 이 여행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이상. 내일 수자타아카데미를 가게 될 텐데, 숙소가 교실로 배정되면 배정되는 대로, 1명 숙소에 배정되면 배정되는 대로, 10명 숙소에 배정되면 배정되는 대로 지내야지, 이건 여러분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 그 조건 속에서 나를 위해 어떤 교훈을 얻을 거냐는 건 여러분들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는 거예요. 그렇게 주어진 상황에서 자기 선택의 영역을 넓혀나가는 사람이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길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 걸 지금 이렇게 다니면서 연습하는 거예요. 부다가야를 가느니, 룸비니를 간다는 핑계를 대고 우리는 지금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그런 핑계라도 없으면 연습이 되겠어요? ‘내일 당장 한국으로 가자’고 할 텐데.

여기까지 왔는데, 성지는 다 돌아봐야 될 거 아니에요. 돌면서, 여러분들은 그 속에서 괴로움도 맛보고, 기쁨도 맛보고, 성질도 내는 등 이런 저런 걸 다 경험하면서 자기를 알아가는 거예요. 이렇게 며칠 살다보면 남은 나를 금방 알아요. ‘아이고, 저 사람성질 더럽네’, ‘저 사람 성질 급하네’, ‘저 사람 봐라. 밥 먹을 때는 딱 숟가락만 들고 나타나네.’(모두 웃음) 그런데 자기가 자기를 아는 건 조금 더 어려워요. 자기는 늘 자기와 함께 있기 때문에 잘 알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항상 우리는 자기에게 속고 살거든요. 그래서 타인의 눈에서 내가 나를 보게 됩니다. 이렇게 한 열흘 같이 다니면 내가 저 사람에게 투영이 되고, 저 사람으로부터 반사되어서 나에게 돌아옵니다. 저 사람은 나를 알잖아요, 그렇지요? 그러면 나에게 틱틱 댑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기분 나쁜데, 시간이 지나다 보면 상대를 통해서 내가 조금씩, 내가 나한테 속은 부분을 알게 됩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부분을 얘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몰랐던 부분도 알게 된다는 거예요. 내가 몰랐던 부분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 처음에는 좀 억울하지요. 기분도 나쁘고. 그런데 결국 시간이 흐르면 나를 조금씩 더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저녁에 나누기도 하고 그러면서 지내야 돼요.

성지를 다니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그런 거야 다른 여행사를 통해서 와도 돼요. 그러면 이보다 훨씬 더 편하게, 더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이 다닐 수 있어요. 그러나 여기서는 짜인 프로그램에 따라 다니면서 끊임없이 자기를 보는 연습을 해서 자기가 자기를 더 많이 알아야 됩니다. 자각해야 됩니다. 누가 ‘네가 어떻다’거나 ‘너는 성질이 더럽다’라고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자기가 자기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모두 박수).”

함께 만든 사람들
문수팀, 정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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