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반, 천일결사 기도로 스님은 오늘 하루를 시작하였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 아직 바깥이 어둑하여 방에서 문서 검토할 것들을 한 스님은 주변이 밝아지자 운력복을 갈아입고 주변 정리를 하였습니다.

날씨가 추워졌으니 비닐 하우스 내부를 정리하여 밖에 내놓았던 화분들을 안으로 넣고 말아 올려 주었던 비닐을 다시 내려 온도가 유지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궁이 칸에 잔뜩 쌓아 놓은 큰 장작들을 다시 꺼내 땔감으로 쓰기 적당한 크기로 잘라 쌓아두었습니다.

문수팀 행자님들이 감을 따야 한다고 긴 장대에 주머니가 달린 ‘감 따기용 장비’를 챙겨 들고 감을 따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긴 대나무를 창고에서 찾아내어 감나무 가지를 사이에 끼울 수 있을 정도로 대나무를 가른 뒤, 고무줄로 묶어 기성품 감따기 장비가 아닌 대나무 감따기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대나무를 감나무 가지에 끼워 탁 비틀면 가지가 꺾이면서 감이 달린 가지채로 대나무에 끼워 감을 내리는 방식입니다.

내리면서 홍시가 땅에 떨어져 터지기도 하고 아슬아슬하게 하나씩 따 내리기도 하면서 감 따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딴 감은 잘 씻어 신문지를 깐 상자에 차곡차곡 잘 담아두었습니다.

감 따기까지 마친 후, 스님은 어르신들을 맞을 준비를 하였습니다.

오늘은 두북 정토수련원에서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노인잔치’를 여는 날입니다. 두북 정토수련원은 폐교를 이용하여 한국JTS에서 노인 복지 활동과 국제 구호 물품을 보관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지역인 울산, 부산, 경주, 대구, 마산에 있는 정토회 회원들이 주말마다 찾아와 봉사활동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두북 정토수련원에서는 주변 마을에 있는 독거노인이나 연세가 많아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의 집에 가정 방문을 해서 청소 봉사도 하고, 미용 봉사도 하고, 반찬 봉사도 하고 있습니다. 벌써 봉사를 이어온 지도 14년이 넘어서 이제 어르신들과도 아주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매년 한국JTS에서는 이 지역 어르신들을 모시고 봄, 가을 어르신 잔치를 하고 있습니다. 봄에는 봄소풍처럼 사찰 순례와 온천 목욕을 시켜드리고, 가을에는 가을걷이를 마칠 즈음에 오늘처럼 두북 정토수련원에 어르신들을 모시고 잔치를 엽니다.

한 편, 오늘 행사 진행을 위해 어스름 새벽 찬공기를 맞으며 하나, 둘 봉사자들이 도착했습니다. 행사가 진행 될 두북 수련원 마당도 낙엽들이 소복이 깔려 가을빛깔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봉사자들이 준비한 음식들로 공양간은 어느새 가득차고 차량봉사자들은 두북 주변 지역별로 어르신들을 모시러 나갔습니다. 식당에선 봉사자들이 담당별로 나눠 앉아 자신이 담당한 음식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떡, 전, 튀김, 나물, 국, 과일…. 강당에서는 마이크와 노래방기기를 체크하고 간단한 리허설을 시작했습니다.

어르신들은 차량봉사자들이 모셔 오기도 하고 작은 유모차를 끌거나 자전거, 작은 전동차를 타고 혼자 오시기도 하였습니다. 봉사자들은 어르신들을 정성스레 맞이했습니다. 기다리실 동안 심심하실까봐 사탕도 손에 쥐어드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셔 신발을 잃어버리실까 옷과 신발에 번호를 붙여 드리고 자리로 안내했습니다. 160명이 넘은 어르신들로 강당은 가득 찬 가운데, 흥겨운 장구소리로 잔치를 시작했습니다.

신명나는 장구소리가 끝나자 스님은 어르신들 농사는 잘 끝났는지, 어느 마을에서 오셨는지, 연세는 어떻게 되시는지 대화를 나누시고는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올해 농사는 잘 마치셨어요? 고추는요?(모두 웃음) 가을걷이 다 하셨어요?”

“네.”  

“이렇게 70, 80살이 되도록 인생을 살아보면 어떠세요? 젊어서 농사지을 때는 봄에 비 안 온다고 가슴 졸이고, 가을걷이 때 비 온다고 가슴 졸이고, 어떤 해는 가뭄이 들어서 가슴 졸이고, 또 어떤 때는 구름이 너무 끼어서 농사 망친 적도 있잖아요. 이렇게 가슴 졸이며 한 해 한 해 살아왔는데 한 80살이 넘어 돌아보면 이래도 한 해 지나가고 저래도 한 해 지나가지 않아요?

인생을 짧게 보면 세상 일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지만 인생을 길게 보면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처녀, 총각 때는 어떤 남자를 만나고 어떤 여자를 만나는지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지만 지금 나이 들어 돌아보니 뭐 이 남자면 어떻고 저 남자면 어떠냐 싶지 않으세요? (모두 웃음)

이렇게 우리가 오래 살아보면 인생을 보는 시각이 조금 달라져요. ‘올해는 봄이 너무 일찍 온다’, ‘봄이 늦게 온다’ 이러지만 한 70~80년을 지내보면 어떤 해는 조금 일찍 올 때도 있고, 어떤 해는 조금 늦게 올 때도 있고, 어떤 해는 꽃이 좀 일찍 필 때도 있고, 어떤 해는 좀 늦게 필 때도 있고, 어떤 때는 6월에 추울 때도 있고, 어떤 때는 12월에 따뜻해서 꽃이 필 때도 있는 거지요. 그래도 크게 보면 때 되면 겨울 오고, 때 되면 봄 오고, 때 되면 여름 오고, 때 되면 가을이 옵니다. 계절을 빠뜨리거나 뒤바뀐 적은 한 번도 없었지요.

중국 고사 얘기 하나 해드릴게요. 중국의 어떤 시골 동네에 한 노인이 살았는데 어느 날 그 집 아들이 들에 나갔다가 야생마를 한 마리 잡아왔어요. 말 한 마리면 논 몇 마지기 값일 때니까 횡재한 거예요. 그래서 온 동네 사람들이 ‘아이고, 저 집은 아들 때문에 부자 됐다’라고 하면서 좋아했어요. 그런데 그 집 아들의 아버지 되는 늙은 영감만 ‘에이, 그건 두고 봐야지’ 하고 별로 즐거워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아이고, 저 영감은 아들이 말을 한 마리 잡아왔는데도 좋아할 줄도 모른다’라며 손가락질을 했지요.

그런데 야생마를 잡아오면 길을 들여야 해요. 그래서 말 훈련을 시키다가 아들이 말에서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져 버렸어요. 그러니까 이번에는 또 온 동네 사람들이 ‘아이고, 그 집 아들이 다리가 부러져서 어떡하냐’ 하고 걱정을 하는데 오히려 이 영감만 ‘아이고, 좋은지 나쁜지는 지나 봐야지’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또 사람들이 ‘저 영감은 자기 아들 다리가 부러졌는데도 애 닳아 할 줄도 모른다’라고 욕을 했어요.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전쟁이 났어요. 그래서 많은 젊은 사람들이 군대에 잡혀가서 다 죽었어요. 그런데 이 집 아들은 다리가 부러졌으니 군대를 안 간 거예요.(모두 웃음) 그래서 이 동네 젊은 사람 중에서 이 집 아들 하나만 살아남게 됐어요. 그러니까 또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아이고, 그 집 아들은 군대를 안 가서 대를 잇게 됐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좋은 게 꼭 좋다고 할 수도 없고 나쁜 게 꼭 나쁘다고 할 수도 없어요. 인생은 길게 살아봐야 좋은지 나쁜지 알 수가 있습니다. 옛날에 그런 말을 머슴들이 노름할 때 ‘초장 끗발 개끗발’이라고 하잖아요.(모두 웃음) 집에 돌아갈 때 봐야 누가 따고 누가 잃었는지 알지, 중간에 ‘누가 땄다, 잃었다’ 하는 게 별 의미가 없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건 좋다고 하고 어떤 건 나쁘다고 얘기하는데 ‘좋다’라고 하는 그게 정말 좋은지 확실히 모르고 ‘나쁘다’ 할 때도 그게 정말 나쁜지 확실히 모른다, 지나가봐야 안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인생을 쭉 지나 놓고 보면 ‘별 거 아니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별 거 아니다’ 이걸 터득하셨어요? (모두 웃음)

인생을 오래 살아보면 산에 다람쥐 한 마리가 팔딱팔딱 뛰어노는 것이나 사람이 태어나서 죽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어요. 그냥 풀 한 포기 나서 죽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어요. 이걸 알면 인생을 좀 느긋하게 살 수 있는데, 이걸 모르면 그냥 매일매일 매사에 가슴 졸이고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인생을 터득을 했으면 이제 사는 게 좀 편안해져야 하는데 아직도 편안하지 못하죠? 아직도 아들 걱정, 손자 걱정에 바쁘잖아요. 그러면 죽어서 좋은 데도 못 가요.(모두 웃음) 이 생도 저 생도 걱정만 짊어지고 살아야 합니다. 주위에 보시면 어때요? 아들이 공부를 잘 해가지고 도시에 나갔거나, 취직을 하거나 사업을 한다고 해서 ‘누구 집 아들 부자 됐다’ 하다가 조상 묘답까지 다 팔아먹은 집 많죠? 동네에 그런 사람 많잖아요. 그런데 가난해서 중학교도 못 가고 동네에서 그냥 일했는데 요새 동네 땅은 다 사들인 사람도 있죠?”

(어르신들) “있어요.”

“그래요. 촌에서 그냥 농사지었는데 온 동네 땅은 다 사는 집도 있고, 반면에 공부 잘 해서 대학 가고 사업해서 부자라고 소문나더니 부도 나가지고 조상 묘답까지 다 팔아먹는 집도 있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우리가 꼭 그 당시만 보고 ‘좋다, 나쁘다’ 할 수가 없습니다. 늙으면 시골에 와서 사는 게 낫잖아요. 그런데 정작 고향에 돌아갈 데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아무리 중한 일이 있더라도 고향 집하고 고향 집 앞에 있는 논 두어 마지기하고 밭 한 마지기쯤은 절대로 팔면 안 돼요.(모두 웃음)

그리고 앞으로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노인 혜택은 갈수록 늘어날 거예요. 여러분들은 이런 걸 공짜로 받는 게 좀 미안하죠? 그런데 이건 공짜가 아니에요. 제가 올해 65살인데 제가 대여섯 살 때인 60년 전의 우리나라 경제 수준보다 지금이 물질적으로만 따지면 300배 나아졌습니다. 이런 경제적 성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 혼자 만든 게 아니에요. 박정희란 사람이 대통령을 한 시대에 우리가 만든 거예요. 여러분들이 울산 공장에 가서 일하고 시골에서 농사짓고 해외 가서 일해서 이걸 만들어낸 거예요. 그때는 우리가 가난한 가운데 열심히 일만 했지 혜택은 제대로 못 받았지만, 이제 잘 살게 됐기 때문에 혜택을 받는 거예요.

그러니까 굳이 개인이 재산을 따로 모아서 노후 보장을 도모하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면 다 최소한도는 살 수 있도록 돼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그러나 고향집과 밭뙈기는 꼭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얘기 하려는 거예요. 자식들이 사업이 부도났다는 둥 하며 숨넘어가는 소리를 해도 집하고 집 앞에 있는 밭은 절대로 팔면 안 돼요.(모두 웃음)

내가 태어난 동네, 내가 자란 동네에 산다는 것은 복이라는 걸 아셔야 합니다. 젊어서 공부 많이 했고, 도시에 나가 살고, 차 몰고 다니면서 좀 부자로 사는 걸 부러워하시면 안 돼요. 지금 이렇게 사는 게 복이에요. 눈 감을 때까지 여기서 사는 게 복이에요. 또 나뿐 아니라 내 자손을 위해서도 이걸 팔아서 도시에 아파트 사주는 게 자식을 위하는 게 아니에요. 자식이 제 힘으로 살 수 있으면 살고 못 살면 고향에 돌아올 집이라도 하나 있도록 내가 딱 잡아 놓는 게 자식한테 진짜 잘 하는 거에요.

그리고 건강이 제일 중요합니다. 안 아파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늙으면 아픈 게 자연스러운 거예요. 이만큼 오래 써먹었으면 고장이 나야 정상이지, 이렇게 써먹고도 또 고장이 안 나도록 바라면 그건 욕심이에요.(모두 웃음) 눈이 침침해서 안 보일 수도 있고, 귀가 안 들릴 수도 있고, 무릎도 아프고 허리도 아플 수 있죠. 이건 자연스러움이에요.

아픈 건 자연스러움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몸을 너무 무리해서 나쁘게 만들어서는 안 돼요. 농사일을 하더라도 그저 내 먹을 거 마련한다는 기분으로 해야지, 돈 벌려고 하지 마세요. 그렇게 악착같이 하다가 탈 납니다. 젊을 때는 피곤할 정도로 일했더라도 자고 일어나면 괜찮았는데 늙으면 그게 마음대로 안 돼요. 한 번 기울어지면 회복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제 남은 인생이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과로하지 않도록 하시면서 편안하게 사세요. 그 동안 너무 집착하고 안절부절하며 못하고 살았잖아요. 앞으로 5년을 살지, 10년을 살지, 20년을 살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좀 느긋하고 편안하게 사시면 좋겠습니다. 그게 인생의 복이에요.

여기서 편안해야 죽어서도 편안한 곳에 갈 수 있지, 여기서 괴롭게 살면 죽어서도 편안한 데 갈 수가 없습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는 말 들어 봤죠? (모두 웃음) 뭐든지 그걸 하는 자기 업대로 가는 거예요. 여기서 편안하게 산 사람은 극락에 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막 괴롭게 살면 지옥으로 가요.(모두 웃음) 여기서 괴롭게 사니까 거기 가도 괴롭게 사는 거예요. 지금 괴롭게 살더라도 돈 벌어서 절에 시주 많이 하면 극락 간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그런 말 듣지 마세요. 여기서부터 편안해야 죽어서도 편안한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나부터 편안해야 해요. 이제 이 정도면 내 할 일 다 했잖아요. 자식 낳아서 키워줬으면 됐지, 손자까지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요.

물론 여러분은 제가 아무리 이렇게 말씀드려도 자식, 손자 걱정할 거예요.(모두 웃음) 하지만 그렇게 하면 인생이 끝이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걱정하다가 눈 감게 돼요. 이렇게 걱정은 끝이 없는 거예요.

이제 내 할 일 다 하셨어요. 나라를 위해서도 할 일을 충분히 했고 가족을 위해서도 충분히 했으니까 이제는 나를 사랑해야 합니다.

남 사랑은 그 동안 충분히 했으니까 이제는 나를 사랑해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라는 건 나를 어떻게 하라는 게 아니라 이제 좀 편안하게 지내고 뭐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겁니다. 너무 근심 걱정 하지 않고 이렇게 편안하게 사는 게 나를 사랑하는 겁니다.

오늘 하루 마음껏 즐겁게 놀아 봅시다. 이제 추수도 다 해놓으셨잖아요.(모두 박수) 여러분들 이제 편안하고 행복하게 사시라고 축원을 좀 해드리겠습니다.”

스님은 한 분, 한 분 이름을 부르며 축원을 하시자 어르신들은 정성스레 절을 하시기도 하고, 염불을 하셨습니다. 법문과 축원이 끝난 후에는 맛있는 점심 식사와 잔치가 이어졌습니다.

강당과 교실마다 깔끔하게 차려진 음식과 술, 음료수가 준비되었고, 점심식사 내내 방마다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스님은 오랜만에 뵌 어르신들과 인사를 나누고, “맛있게 많이 잡수시라” 며 인사를 드렸습니다. 어르신들은 “작년에도 왔다”면서 다정하게 봉사자들의 손을 잡아 주었고, “수고한다” 고 환하게 웃으시는 어르신들의 모습 속에서 부모님의 모습이 느껴져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즐거운 식사시간이 끝나고 노래가 흘러나오자 다시 강당으로 어르신들이 모였습니다. 재능 봉사해주신 거사님의 장구소리에 어르신들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습니다. 노래 부르는 시간에는 어르신들이 애창곡을 부르시고 앞으로 나오셔서 신나게 춤을 추시기도 했습니다. 여흥을 돋우기 위해 봉사자들이 반짝이 조끼를 입고 일일이 어르신의 손을 잡아 함께 했습니다.

흥겨움은 사물놀이패의 한바탕 놀이에 한껏 물이 올랐습니다. 연이어 어르신들이 즐겨불렀던 곡이 색스폰으로 연주되자 다 함께 노래도 불렀습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르신의 아름다운 모습과 ‘다리 아프다’ 하시면서도 기꺼이 앞으로 나와 춤추시는 어르신, 휠체어를 타고 오신 어르신, 머쓱한 듯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들까지 어울려 한바탕 신나는 놀이마당이 펼쳐졌습니다. 스님도 어르신들 속에서 연신 웃으며 박수를 쳤습니다.

흥겨운 잔치가 열리는 한 편에서는 봉사자들 모두 그 많은 음식상들을 혼란 없이 정리하고 설거지를 끝내고 쓰레기 분리수거까지 마무리했습니다.

그렇게 잔치는 마무리되고 어르신들 가는 길에 미리 준비해 둔 선물을 드렸습니다. 봉사자들의 손을 꼭 잡고 행복해 하시는 어르신들의 얼굴은 맑고 청아한 가을 하늘을 닮아 있었습니다.어르신들을 오실 때처럼 차로 집으로 모셔다드렸습니다.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고, 봉사자들은 스님과 둘러앉았습니다.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수고했다 격려하시며, 일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이나,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습니다.

이번 행사의 총괄을 맡았던 동래정토회 총무 이혜옥님은 하루 종일 뛰어다니며 고단할 만도 한데 늘 밝은 얼굴이었습니다. 소감을 물어보니 이렇게 고마움을 표현하였습니다.

“모든 봉사자들이 자신의 일처럼 즐겁게 동참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했고, 타법당에서도 음식준비와 차량지원봉사, 안내까지 맡아주시니 이것이 진정한 모자이크 붓다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리고 재능기부하신 경주법당 박현덕 거사님과 대구 풍물패팀, 사회를 맡아주신 해운대법당 강수진 보살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숨은 곳에서 자신의 소임을 기꺼이 해주신 모든 도반님들께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두북 어르신 잔치를 모두 마치고, 스님은 문수팀 행자님들과 함께 오랜만에 가뫼들 산책에 나섰습니다. 조용하고 인적이 드문 산책길을 따라 걷는 스님과 문수팀 행자님들의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가을 하늘은 높고 푸르렀고 한창 단풍이 짙어지고 있는 풍경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빨간 열매가 눈에 띄었는데, 스님은 “저걸 까치밥이라고 한다.” 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산열매들, 나무 잎들이 스님의 어릴 때 이야기와 어울려 재미나게 시작되었습니다. 붉은 색깔이 아주 예쁜 나뭇잎도 발견했는데 스님은 ‘붉나무’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옻나무과의 붉나무라 어린 시절, 옻나무 잎과 구별하기도 어려웠다 하였습니다.

또 한 가지, 스님은 산초 잎과 제피 잎을 구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제피의 북방한계선이 문경수련원 즈음까지라 서울 경기권 사람들은 제피를 잘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잎 모양이 서로 비슷해 헷갈리기도 하는데 스님은 산초 잎과 제피 잎을 직접 따서 모양을 비교해주면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행자님들은 열심히 설명 듣고, 잎을 보고, 냄새를 맡으며 신기해하였습니다.

왼쪽이 산초 잎, 오른쪽이 제피 잎▲ 왼쪽이 산초 잎, 오른쪽이 제피 잎

스님은 가볍게 산책을 마치고 내려와 조금 이른 저녁 공양을 하면서 오늘 어르신 잔치 준비를 하느라 애쓰신 화광법사님께 감사의 박수를 전해드렸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최인정, 손명희, 김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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