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트기 전에는 코끝이 시릴 정도로 싸늘한 기온이었는데 동이 트니 주변이 밝고 따뜻해졌습니다. 어제 밤, 원주에서 강연을 마치고 새벽 1시가 넘어서 두북에 도착한 스님은 천일결사 기도 후 잠시 휴식을 한 후, 아침 공양을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운력으로 두북에 온 문수팀 행자님들이 스님께 삼배로 인사드렸습니다.

스님은 그 동안 일정이 여의치 않아 두북에 들르지 못했는데 오늘 저녁에는 진주 강연, 내일은 두북 어르신 잔치여서 오랜만에 두북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웃밭에 심어두었던 배추와 무의 상태도 보고 텃밭의 상태도 둘러 본 후, 해야 할 일들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먼저 김장용 고춧가루로 빻아야 할 말린 고추 닦기가 급했습니다. 이미 김장 준비를 하고 계신 최보살님의 특별한 부탁에 문수팀 행자님들이 맡기로 하였습니다.


문수팀 행자님들은 직접 농사지은 고추를 수확하고 말려서 고춧가루가 되기까지 전 과정을 직접 해보는 경험을 갖는 중입니다
▲ 문수팀 행자님들은 직접 농사지은 고추를 수확하고 말려서 고춧가루가 되기까지 전 과정을 직접 해보는 경험을 갖는 중입니다

스님은 산뜻한 노란색으로 주변까지 화사하게 물들이는 국화꽃 대부터 바로 세워주는 것으로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국화들은 작년 겨울, 스님이 줄기를 쳐내고 뿌리부분을 땅 속에 심어주었던 것이었는데 추운 겨울을 땅 속에서 잘 견뎌 이렇게 야무지게 꽃을 피워 올렸습니다.


노란 국화꽃이 건강하고 활기차 보입니다.▲ 노란 국화꽃이 건강하고 활기차 보입니다.

다음으로 여기저기에 있는 고소를 갈무리해서 자르고, 시나나빠도 솎아주었습니다. 벽채를 타고 올라가는 더덕 줄기도 찾아내서 파 보았더니 제법 더덕 특유의 맵싸한 향기가 나는 더덕 뿌리들도 캘 수 있었습니다.


봄부터 지금까지 정원 곳곳에서 자라는 고수. 한 끼 먹을 양이 됩니다. 독특한 더덕 향기가 났습니다.▲ 봄부터 지금까지 정원 곳곳에서 자라는 고수. 한 끼 먹을 양이 됩니다. 독특한 더덕 향기가 났습니다.

이번에는 비닐하우스와 뒷 툇마루에 널어둔 들깨를 털었습니다. 갑바 채로 가지고 나와서 마른 들깨 대를 가지런히 놓은 후, 대나무로 탁탁 두드렸습니다. ‘토도독’ 떨어지는 들깨 소리가 많아질수록 깨 터는 정원이 ‘들깨 향기’로 가득해졌습니다.

“한 알의 들깨 씨를 심었는데 이렇게 많은 들깨가 열렸네. 들깨 하나에서 대략 몇 개의 들깨가 나올까? 내년엔 참깨, 들깨를 더 많이 심어볼까?”

‘깨 터는 스님’이 ‘깨 떨어지는 소리’에 즐거워 이야기하였습니다. 먼저 대나무로 들깨 대를 탈탈 턴 다음, 갈쿠리로 굵은 푸성귀들을 걸러내었습니다. 걸러내고 남은 것을 얼개미로 서너 번 반복해서 다시 걸러내고, 선풍기 바람을 쏘이며 쭉정이와 다른 먼지들을 날려 보냈습니다. 스님은 선풍기 바람에 날아간 것도 다시 긁어모아 과정을 반복해서 들깨 한 알 한 알을 대야에 모았습니다. 보드랍게 들깨가 모였습니다.


깨 터는 과정. 굵은 채로 치고 가는 채로 쳐서 선풍기 바람까지. 한 알의 깨가 우리 입에 들어오기까지 수많은 과정을 거칩니다.▲ 깨 터는 과정. 굵은 채로 치고 가는 채로 쳐서 선풍기 바람까지. 한 알의 깨가 우리 입에 들어오기까지 수많은 과정을 거칩니다.

이번엔 참깨를 털었습니다. 지난번에 문수팀 행자님들이 와서 털다가 마무리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선풍기 바람 맞기 과정을 몇 번씩 반복하니 하얀 참깨가 소복하게 남았습니다. 들깨보다는 작은 양이었습니다.

문수팀 행자님들이 신기하게 들깨와 참깨를 만져보고 맛보고 살펴보았습니다. 들깨는 좀 진한 색에 동글동글, 참깨는 하얀색에 가까운데다 갸름한 모양입니다. 모르는 사실이 아니지만 직접 심고 거두어 먼지를 떨어내는 과정까지 거친 들깨와 참깨는 처음이라 신기한 모양입니다.

깨를 다 털고 난 다음, 스님은 자리가 마련된 김에 “코스모스 씨앗도 털자”하였습니다.
지난 번 꽃이 다 진 코스모스들을 끊어다 묶어서 뒷 툇마루에 말려놓았는데 잊지 않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깨 터는 과정처럼 반복하니 길쭉한 코스모스 씨앗이 한 봉지 가득 나왔습니다. 남은 검불들을 텃밭에 뿌리며 스님은 “아마 여기서도 코스모스씨가 꽤 싹을 틔울 거야.”하였습니다.
털고 난 마른 들깨 대와 코스모스 대는 불 땔 수 있도록 아궁이 칸에 옮겨 놓았습니다. 무엇하나 그냥 버릴 게 없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서둘러 웃밭으로 갔습니다. 지난 6월 쯤 심은 ‘가을 감자’를 캤습니다. 세 고랑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양이 나왔습니다.

“여기 이 땅은 질고 딱딱해서 감자심기에 적절하지 않는데 그런 데에 비하면 많이 나온 셈이야. 땅이 딱딱해서 감자들이 깊이 못 들어가 햇빛에 노출되는 상태가 되어서인지 시퍼런 감자들이 많네. 씨감자들이 많아서 내년엔 감자 농사를 만 평은 지어야겠다.”

실험삼아 지어 본 가을 감자를 수확하면서 스님은 내년엔 만평짜리 감자 농사를 지어야겠다며 웃었습니다.

이번엔 무입니다. 아직 무가 더 자랄 수 있으니 잎을 솎아서 무뿌리를 굵게 만들자 하였습니다. 솎아낸 잎은 말려서 시래기로 해 두면 두고두고 먹을 수 있습니다. 시래기로 말리는 시기도 따로 있는데 요즘처럼 상강(霜降)이 지나 날씨가 추워졌을 때야 무 줄기가 썩지 않고 제대로 마른다고 합니다. 스님은 행자님들에게 ‘너무 많이 따 주지 말고 처진 것만 줄기를 솎아라.’고 하였습니다. 줄기 솎는 법이 명심문처럼 다가옵니다.



‘다른 무에게로 넘어간 잎만’ 야무지게 솎아내었는데도 수레 한 가득과 큰 바구니로 두 바구니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바로 삶을 수만 있으면 삶아서 활동가들 나눠줘도 좋겠는데.’ 하고 혼잣말처럼 하였습니다. 스님 농사는 아무래도 ‘나눠주는 농사, 시골친정집 농사’인 것 같습니다.

행자님들이 “스님, 시래기 말릴 수 있게 묶는 법 좀 알려주세요. 저희가 매어 놓을게요.” 하였습니다.

스님은 끈 세 개를 같은 길이로 잘라 무청 묶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짚으로 하는 것이 더 좋지만 짚은 계속 이어 길이를 만들어야 해서 초심자에게는 어려울 것이라며 끈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알려주었습니다.

스님이 가르쳐 준 방법대로 무청을 묶는 문수팀 행자님. 처음 해 보는 농사일. 식생활로 이어지기까지의 많은 과정을 직접 해보는 것은 학습뿐만 아니라 꼭 알아야 할 생활임이 다가옵니다.▲ 스님이 가르쳐 준 방법대로 무청을 묶는 문수팀 행자님. 처음 해 보는 농사일. 식생활로 이어지기까지의 많은 과정을 직접 해보는 것은 학습뿐만 아니라 꼭 알아야 할 생활임이 다가옵니다.

어느새 진주 강연장으로 출발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틈 없이 밭에서 밭으로 이어진 스님의 발걸음이 다시 강연장으로 이어집니다.

11월 7일에 방문한 안산처럼 진주 역시 통일의병 주최 강연으로는 2년 만에 다시 찾은 도시입니다. 가을 햇볕은 따뜻하고 나무는 한껏 고운 색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하며 강연이 열리는 경남과학기술대학교 100주년기념관을 찾아갔습니다.

오늘 강연은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 부산·울산·경남본부 주관으로 특히 진주지역 의병들이 힘을 합쳐 준비했습니다. 주중에는 진주 의병들이, 주말에는 본부에서 지원 나와 함께 홍보를 해왔습니다. 이번 지역 총괄을 맡은 분은 중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입니다. 매일 저녁 길에서 시민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면서 강연 홍보를 해왔는데 한 제자가 ‘선생님은 매일 스님 사진 들고 강연에 오라고 강요하는 불법 공무원’이라고 문제 제기를 했다고 합니다. 처음 들을 땐 길에서 무단으로 전단을 나눠줘서 불법(不法)이라고 생각했나 싶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불법(佛法)을 의미한 게 아닌가 하여 웃음이 나기도 했습니다.

통일 강연으로써는 강연장 규모가 큰 편이어서 혹시 자리가 많이 비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어둑어둑해지면서 강연 시간이 다가오자 여기저기에서 삼삼오오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강연이 시작될 무렵엔 거의 좌석을 채워서 강연을 준비해온 의병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스님은 두북에서 출발하여 조금 일찍 강연장에 도착했는데 온종일 농사일을 해서 피곤한 모습이었습니다. 다행히 여유가 있어 약간 휴식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강연장에서는 부산·울산·경남본부장인 이승렬 의병이 씩씩한 목소리로 통일의병을 소개했습니다. 다음으로 전면의 대형 화면에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애쓰시는 스님의 활동을 소개하는 영상을 상영했습니다. 스님이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가자, 청중들은 큰 박수와 환호로 스님을 환영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통일의병 주최이고 통일을 주제로 하니 될 수 있으면 이에 맞게 문답을 해보자고 하시면서 개인 질문에도 즉문즉설을 해줄 테니 중간에 가지 말라고 하여 청중들과 함께 웃었습니다.

오늘 질문지 함에는 많은 질문지가 들어 있었지만, 총 6분의 질문자만 추첨이 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신, 영혼, 절대자가 있는지가 궁금한 중년 남성, 갑질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헤쳐 나가야 할지가 고민인 젊은 청년, 효자인 남편과 살면서 고민이 많은 아내, 34살 아들이 착실하게 공부해서 공무원이 됐지만 이젠 결혼이 걱정인 엄마, 통일이 되면 지금 중2인 아들이 어떤 직업을 가지면 좋을지 궁금한 엄마,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관련하여 평화 통일의 가능성에 대해 진지한 표정의 여성이 질문했습니다.

오늘은 통일 질문인 듯하면서도 결국은 아들의 진로 문제를 절묘하게 합하여 스님을 감탄케 한 중2 아들을 둔 엄마의 질문을 소개하겠습니다.
??

“통일 후에 북한에서 할 수 있는 일, 유망해질 직종이나 직업에는 어떤 게 있을지 궁금합니다. 아들이 중학교 2학년인데 커서 뭐가 되고 싶다거나 하고 싶다는 게 없어요. 친한 친구들은 진로를 다 결정해서 ‘나는 뭐 할 거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더 불안한가 봐요. 저도 아는 것이 없고 아이가 학생이어서 지금 할 수 있는 건 공부밖에 없으니까 ‘공부만 열심히 해놓으면 다음에 진짜 하고 싶은 게 생기거나 해야 할 게 있으면 그때 뭐가 되어도 되지 않겠느냐’라고 얘기해주고 있는데요. 통일 후에 좋은 직업이나 직장을 가질 수 있으려면 지금 학생의 입장에서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지 스님의 고견을 듣고 아이한테 얘기해줘서 좀 편안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굉장히 머리가 좋으신 분입니다. 통일 문제 같은데 들어보니 전혀 통일 문제가 아니고 아들 걱정이며 진로 상담이에요.(모두 박장대소) 엄마가 머리가 좋아서 아들도 괜찮을 것 같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질문자의 얘기 속에서 우선 두 가지가 나왔습니다. 첫째, ‘아들이 공부만 열심히 하면 앞으로 잘 될 거다’라는 게 있었고, 두 번째, ‘다른 아이들은 다 자기가 크면 뭐를 하겠다고 하는데 우리 아들은 그게 없어서 고민이다’라고 했어요. 그 두 가지에 대해서 우선 얘기해 보겠습니다.

‘내가 꼭 뭐가 되고 싶다’ 할 때는 그걸 할 수 있으면 좋지만 못 하면 괴로워요. 그런데 ‘나는 뭐가 되고 싶다’ 하는 게 없으면 괴로울 일이 없어요. 그러니까 특별히 뭘 하고 싶은 게 없다는 건 좋은 거예요.(모두 웃음) 그래서 살면서 이것저것 하다 보면 ‘아, 나는 이게 적성에 맞네’ 할 때 선택하면 돼요. 그러니까 그건 문제 삼아서도 안 되고, 아이가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두 번째, 그저 공부만 잘 하면 될까요? 그 말이 옛날에는 맞았어요. 그러나 미래 세대는 아니에요. 우리가 말하는 ‘공부를 잘 한다’라는 건 지식을 쌓거나 기술을 습득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지식과 기술은 앞으로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다 하게 돼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공부를 잘 한다고 평가할 때 ‘잘 하는’ 것은 미래 사회에 유용한 것과는 굉장히 거리가 멀어요. 지금은 온갖 것을 아는 게 굉장히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검색만 할 줄 알면 돼요. 그러니 공부를 못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러면 공부를 잘 하면 문제냐? 공부를 잘 하면 안 되느냐?’ 그렇다고 또 이렇게 잘못 들으면 안 돼요. 공부를 잘 하느냐 못 하느냐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그럼 미래 사회에서는 뭐가 중요할까요? 창의력이 중요합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풀지?’ 하고 해결하는 능력이 중요해요. 해결을 하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은 검색해서 찾아 쓰면 돼요.
이 창의력은 탐구할 때 생깁니다. ‘이건 뭐지?’ 하고 탐구할 때 생기는 거예요. 사람은 어떨 때 탐구를 하게 될까요? 자기가 좋아해야 탐구가 돼요. 좋아하면 집중력이 생깁니다. 그러니까 ‘왜’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옛날에는 ‘어떻게’가 중요했지만 지금은 ‘왜’가 굉장히 중요해요.

그런데 여러분은 저한테 ‘스님, 기도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이렇게 물어요. 옛날의 종교는 ‘기도를 어떻게 하느냐? 108배를 해야 하느냐, 참선을 해야 하느냐? 하느님을 믿어야 하느냐, 부처님을 믿어야 하느냐?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렇게 묻잖아요.

그런데 저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묻죠.
‘왜 기도 하려고 해요?’
‘하면 좋잖아요.’
‘왜 좋은데요?’
‘좋으니까 다 하잖아요.’
‘그건 너무 막연하잖아요. 왜 하려고 해요?’
‘부부 사이가 안 좋아서요.’
‘왜 안 좋은데요?’
‘남편이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와요.’
‘자기가 먹고 자기가 늦게 들어오는데 당신이 왜 문제예요?’

이렇게 탐구해 들어가면 그 원인을 밝히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만 물어요. ‘108배 해야 해요? 참선해야 돼요?’ 이렇게요. 이건 시대가 지난 거예요.

그러니까 항상 아이가 ‘왜?’라고 묻는 걸 엄마가 ‘쓸데없는 소리 한다’ 이러면 안 되고, ‘어,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라고 받아줘서 어릴 때부터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도록 보장해줘야 해요. 미래의 학습은 답이 없는 학습을 해야 해요. 답이 있는 학습은 기계가 다 합니다. 답이 없어야 해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신경 끄세요. (모두 웃음) 밥이나 좀 해주고, 옷이나 좀 주고, 공부하는 거 보고 이렇게 조언 조금 해주면 돼요. 사실 조언할 수는 없어요. 저도 젊은이들에게 조언은 잘 안 합니다. 그러나 스님은 질문자보다 나이는 많지만 늘 세상의 100년 앞을 보고 세상의 변화를 보기 때문에 거기에 관해서는 조금 조언을 하는 편이죠. 그래도 잘 안 하려고 해요.”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스님, 통일되면 북한에 어떤 일들이 필요할까요? 진짜로 궁금합니다.”(모두 웃음)

“통일 이후의 변화는 비교적 알 수 있는 일이에요. 북한은 저개발 국가예요. 지금은 개발이 안 된 상태예요.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우리가 지난 40~50년 동안 경험했던 과정을 겪어야 해요. 한국 사회는 20년 후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북한 사회는 한 20년 동안은 우리가 지난 40~50년 동안 겪은 변화를 아마 지나게 될 거예요. 일부는 건너뛰는 것도 있겠지만요.

그러니까 북한에 필요해질 일도 그렇게 예측해보면 되겠죠. 농사를 예로 들어볼게요. 사과 농사를 예로 든다면 사과는 북한에서도 재배할 수 있어요. 황주 사과 유명하잖아요. 그러면 북한이 인건비도 싸니까 통일 후 사과 농사는 북한한테 밀리겠죠. 그런데 감은 북한에서 재배할 수 없으니까 오히려 소비 시장이 50퍼센트 정도 늘어나겠죠. 이렇게 농사도 달라지는 거예요. 제주도 감귤이라면 50퍼센트 정도 수요가 늘겠다고 볼 수가 있겠죠. 북한에는 쌀이 부족하니까 벼농사 수요는 늘어나겠지만 옥수수 농사는 북한이 더 잘 되니까 이쪽이 불리해지겠죠. 예를 든다면 그런 거예요. 일단 남북만 보면 그렇습니다.

또 중국과 상대해서 농사를 짓는다면 농사 방식이 좀 달라져야 해요.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이제는 건강을 생각하잖아요. 지금까지는 양을 생각했지만 앞으로는 질을 생각하게 될 거예요. 중국 사람들은 좀 더 안전한 식품을 원해요. 그런데 중국 내에서는 농사짓는 사람들이 아직 그런 인식이 없고 거기에 대비가 안 되어 있어요. 중국 인구가 14억이나 됩니다. 중국에서 고소득층 10퍼센트만 해도 그 수가 1억 4천만이나 되는데, 이 사람들 사이에서는 안전한 식품에 대한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나겠죠. 그러면 우리가 그런 식품을 공급해주는 거예요. 한국 소비 시장만 갖고는 안 되지만 중국 소비 시장을 생각하면 전라도 같은 쪽이 훨씬 유리해지죠. 지금까지는 핸드폰 같은 전자제품이며 공산품이 잘 팔렸는데 중국이 빠른 속도로 기술을 따라잡으니까 이제는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중국의 저가 핸드폰을 쓰고, 저가 자전거를 타고, 저가 냉장고며 저가 선풍기를 구하겠죠. 그러면 공산품은 오히려 무역 역조가 생깁니다. 지금은 우리가 흑자지만 이건 10년 안에 곧 적자로 바뀔 겁니다. 그러나 농업 같은 분야는 지금은 엄청난 적자지만 어쩌면 앞으로는 흑자로 바뀔 수도 있는 거예요.

한미 관계에서는 농업이 흑자로 전환하기 어렵습니다. 농사짓는 방식이 미국은 우리하고 다르기 때문이에요. 거기는 대량으로 짓는 시스템이잖아요. 그런데 중국은 그런 시스템이 아니라 우리와 동일한 시스템이에요. 지금은 인건비가 싸다는 한 가지 이유로 중국이 유리할 뿐입니다. 그러니까 ‘한중 FTA에서 농민이 불리하다’라고 하지만 이게 반드시 불리한 것만은 아니에요. 10년 지나면 불리한 게 유리해지고 유리한 게 불리해질 가능성도 있어요. 미국과는 10년이 지나도 농업 분야는 계속 불리할 거예요.

이런 사회 변화가 있을 거예요. 북한에는 철도를 놓아야 하겠죠. 도로를 닦아야 하겠죠. 제방도 쌓아야 하고 나무도 심어야 하겠죠. 북한에 나무 심는 것도 엄청난 일이에요. 우리는 지난 30년 간 식목을 해왔지만 북한은 전부 민둥산이니까요. 지금 우리나라 안에서는 식목이나 산림 전문가가 별로 필요 없어요. 그런데 통일되면 이런 수요가 늘어나겠죠.
토목도 다시 늘어나겠죠. 지금 한국 내에서는 토목건축에 한계가 있지만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토목 기업이 다시 살아날 수 있어요.
또 북한 노동자들은 임금이 비싸지 않으니까 중소기업도 살아날 수가 있죠. 생필품 생산이 다시 북한에서는 살아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잘 하면 북한이 세계의 공장이 될 수도 있어요. 중국은 이미 인건비가 비싸져서 중국에 들어갔던 우리 기업이 다 베트남이며 방글라데시까지 나가야 하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통일이 되면 북한이 새로운 생산기지 역할을 할 수도 있죠.

일단은 통일이 안 되더라도 남북 간의 경제 협력이 강화되고 경제적 통합만 이루어진다면 젊은이들에게 일자리가 많이 생깁니다. 임금이 저렴한 하층 노동은 북한 노동자가 하고 그 기술 지도는 남한의 젊은이들이 가서 해야 하잖아요. 철도를 놓으면 거기 필요한 막일은 북한 노동자가 해야 하지만 측량 같은 중요한 작업은 남한 기술자가 가서 해야 하겠죠.
대기업은 앞으로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자동화 쪽으로 가기 때문에 노동 수요는 자꾸 줄어듭니다. 그런데 북한 개발은 대기업이 필요 없어요. 중소기업 갖고도 얼마든지 돼요. 그러니까 국가 정책도 북한 개발할 때는 중소기업을 밀어줘야 해요. 대기업을 투여하면 대기업은 거기서 공짜 이익이 많이 생기니까 기술 개발을 안 해요. 그러다 보면 앞으로 세계 경쟁에서 뒤처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국가 정책도 이런 걸 잘 생각해서 바뀌어야 해요. 북한에는 중소기업을 투입해서 중소기업의 활로를 열어주고 대기업은 앞으로 도래할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세계적 경쟁력을 준비해야죠.

이런 사회의 변화를 우리가 봐야 합니다. 시간 관계상 직업 문제는 여기서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다 얘기할 수 없지만, 이렇게 대충 보면 잡을 수 있는 거예요. 우리는 이렇게 늘 세상의 변화를 보고 거기에 맞춰 살아야 합니다. 섣불리 단정하면 안 돼요. 세상이라는 건 어떤 사람도 어떤 역할도 할 수 있게 열려 있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아들한테 편안하게 공부하라고 얘기하겠습니다.” (모두 박수)

그동안 대부분 통일을 막연한 일로 여기면서 질문을 해왔다면 오늘 질문은 통일이 될 것을 전제로 한 질문이라서 더 좋았습니다.
국내 정세와 통일 질문으로 강연이 무겁게 진행될까 싶었는데 시종일관 밝고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통일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졌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객석의 청중들과 함께 ‘우리의 소원’을 부르는 것은 통일의병 강연만의 특색이기도 합니다. 2시간 이상 스님과 함께 통일 이야기를 하고 나면 통일이 어느덧 가슴에서 느껴지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고 노래 또한 더욱 간절하게 부르게 됩니다.

이어서 로비에서 스님의 책 사인회가 있었습니다. 스님 사인을 받으면서 그 앞에서라도 스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진풍경이 벌어집니다. 어린아이들도 스님에게 와서 엄마 대신 사인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강연을 준비하고 진행하느라 수고한 봉사자들과 단체 촬영을 하고 특히 후속 통일시민학교를 통해 조직을 강화할 진주 지역 의병들과는 따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위기에 놓인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지난 11월 5일 평화시민행동 집회를 주관했던 통일의병은 이번 주 토요일부터 전국 6개(서울, 대전, 대구, 광주, 부산, 울산) 도시에서 6회에 걸쳐 주말 촛불 집회를 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전국 33군데에서 ‘전쟁반대 평화협상’을 내건 1인 피켓 시위도 진행하면서 활발하게 국민의 목소리를 모아내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스님은 강연장 정리에 여념이 없는 봉사자들을 격려하시고는 내일 어르신 잔치가 열리는 두북을 향해 출발하셨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임혜진, 이원경 (글) 손명희 (녹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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