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20분 쿠야마밸리 정토수련원에 도착하자마자 스님은 급한 원고를 먼저 교정하였습니다. 이동 중에 차안에서 주무셨기 때문에 아무래도 스님은 원고를 보며 밤을 새우신 것 같습니다. 5시 45분, 스님은 기도를 위해 법당으로 왔습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스님께서 직접 도량석을 하였습니다.

6시에 스님의 집전으로 다 함께 아침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하였습니다. 스님의 간절한 발원이 오늘도 이어졌습니다. 쿠야마밸리 정토수련원에서 정토행자들이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으로 수행정진하여 자유롭고 행복하여지고, 이 법이 북미지역과 서양사람들에게 전법되기를 발원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이 인도에서, 중국에서 꽃피운 것처럼, 미국과 서양 땅에서 꽃피울 수 있기를 발원하였습니다. 정토행자들이 부지런히 수행정진할 뿐만 아니라 보시하고 봉사해서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이웃에게 전파하는 정토행자가 되기를 발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되기를 발원하며 특히 북미간의 긴장 상태로 인해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에 놓여있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발원하였습니다. 스님의 간절한 발원기도가 마음에 더 많이 남습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의 기운이 걷히고 평화와 통일이 되기를 저희도 간절히 바래보았습니다.

기도 후에 수련원에 상주하고 계시는 김홍식님의 후배분들이 찾아와서 스님께 인사드렸습니다. 스님은 아침 식사 후에 수행팀과 쿠야마밸리 정토수련원 주변을 산책하였습니다. 2004년 가을에 첫 방문을 했으니 13년이 지난 오늘 맞이하는 가을이 더 새롭게 느껴집니다.

2002년 개원 후 심은 쿠야마밸리 정토수련원의 대추나무에 대추가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대추가 정말 큽니다. 도토리나무, 사과나무, 은행나무, 버드나무 등 나무가 정말 많이 자랐습니다. 대추열매는 아주 달고 맛있는데 LA정토수련원의 특산물입니다. 부처님께서 전정각산에서 매일 대추열매 한 알씩만 먹고 정진했다는 얘기가 생각났습니다. 쿠야마밸리 수련원의 대추열매를 보면 ‘아 실제로 대추열매로 연명하며 정진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산책을 마치고 김홍식님과 부처님전에서 기념사진촬영을 하였습니다. 스님은 건강하게 잘 지내시라고 격려해주시고 수련원을 내려왔습니다.

수련원을 내려오는 길에 10년전에 캘리포니아에 대형 산불이 나서 대부분의 나무가 불에 탔던 산들이 보입니다. 그 동안 나무들이 꽤 많이 자라있습니다. 길가에는 노란꽃들이 예쁘게 피어있었습니다.

수련원을 내려와서 LA정토회 창립멤버이며 초창기 총무를 역임했던 박명귀님을 고 이강준 법사님 유골이 모셔진 장례식장에서 만나기 위해 LA 시내로 들어왔습니다. 고 이강준 법사님은 LA정토회 창립멤버로서 부인인 박명귀님과 LA지역에 부처님의 바른 법이 전파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인 정토행자입니다. 최근에 위독하시다 올 여름에 갑자기 돌아가셔서 스님은 이강준 영가를 위하여 천도기도를 올리고 박명귀님을 위로하였습니다.

숙소인 김명례 전지구장님 댁에 도착하여 배염님과 김명례님이 준비한 음식으로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스님은 업무를 보시고 휴식하였습니다.

오늘 강연은 숙소에서 20분거리에 있는 오렌지 카운티의 Bueno Park시에서 7시 30분에 시작하였습니다. 강연장으로 가는 길에 보름달이 아주 크고 환하게 떠올라 있었습니다.

강연장에 들어서니 전직 대표였던 고본화, 이승훈님부부, 전직총무였던 이종경님, 그리고 장철호님등 기존 멤버들이 스님께 인사하였습니다. 자원봉사자들도 1년만에 오렌지카운티를 찾은 스님께 반갑게 인사하였습니다.

스님은 잠시 대기하는 시간에 급한 원고교정 업무를 보기도 했습니다.

드디어 스님소개 영상이 끝나고 큰 박수와 함께 스님이 연단에 등장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추석 잘 지내셨어요? 외국에 산다고 추석 안쉬세요? 한국은 추석이 열흘 연휴라서 난리법석이었어요. 여기는 조용하네요. 추석을 안 한 분들이 대부분인데 저도 계속 강의하느라 못했어요. 강연장에 오는 길에 정말 한아름 되는 달이 떠오르고 있었어요. 정월대보름과 8월대보름이 달이 제일 크다고 하는데 정말 유난히 커보였어요. 이런 좋은 날 만나서 다시 한번 반갑습니다.

우리는 4일 전에 라스베가스에서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축제현장에서 어떤 분이 총을 난사해서 많은 분들이 희생되었습니다. 가족분들의 슬픔과 아픔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 분들에게 위로를 보내면서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잠시 묵념하겠습니다. 묵념.

인생을 살다보면 이렇게 예기치 않은 일이 닥칠때가 있습니다. 이번에 휴스턴은 천년에 한 번 일어날 만한 홍수가 허리케인 하비로 인해 일어났습니다. 도시가 생기고 나서 이런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휴스턴은 텍사스에서도 먼저 개발된 도시라서 난개발지역이라고 합니다. 법규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상태라 침수피해, 홍수피해에 대해서 대부분 보험을 안들었다고 합니다. 피해는 큰 데 보상받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지금 한반도는 휴스턴 자연재해나 라스베가스 인재 이런 사건과는 비교가 안될만 한 전쟁의 기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만약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참극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전쟁이 안 일어날 가능성보다 훨씬 낮습니다. 그러나 지난 1953년 휴전협정이후 전쟁의 위험성은 가장 높아졌습니다. 양국 지도자인 트럼프, 김정은 두 사람의 성격상 우발적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는 50년동안 엄청난 노력으로 경제부국을 이루어냈지만, 이것이 한순간에 날아갈 수 있습니다. 서울 경기 인천등 수도권에 2천5백만명이 살고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저놈들 확쓸어버리면 좋겠다' 하는 것은 이해는 되지만 그렇게 되면 엄청난 피해가 옵니다. 우리는 핵발전소가 많기 때문에 확전으로 가면 엄청난 희생을 치를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기도도 많이 하시고 대통령, 상원의원, 하원의원들에게 전쟁은 안된다는 편지를 써서 반전 활동을 해야 합니다.

이처럼 인생을 살다보면 설마설마 한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인생을 한탄하고 세상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예기치 않는 문제가 생기다보니, 하나는 과연 인생이 뭔지 궁금한 생각이 들고, 다른 하나는 고뇌가 깊어지고 괴로움이 커집니다. 오늘 이시간은 인생에 대한 의문과 고뇌, 괴로움에 대해서 대화를 해보자 합니다. 대화를 하다보면 괴로움이 없어지거나 줄어든다고 해서 말씀이라고 합니다. 괴로움은 마음작용이기 때문입니다. 지식은 이성적 작용이기 때문에 아무리 지식을 많이 쌓아도 괴로움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마음작용에 대해서 대화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서두를 열었습니다.

오늘은 총 8명이 스님께 질문하였습니다.

은퇴후 친구 3명과 땅과 집을 사서 이사했는데 친구와의 성격차이로 인해 미움이 싹틀 정도가 되어 고민이라는 분, 불안증이 큰 편인데 불안증을 극복하고 싶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묻는 분, 3-4년 다닌 직장이 있는데 안일한 생각이 들어 발전과 도전을 위해 직장을 옮겨야 하는지 묻는 분, 둘째 아들이 사기를 당해 돈을 잃고 사기죄로 범죄자가 되어있는데 아들을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은지 묻는 분, 일이 전공과 맞고 재미있고 좋지만 스트레스가 많아 몸이 상할까 걱정되는데 해결책이 무엇인지 묻는 분, 질문자들과의 대화를 듣고 있다보니 문제가 해결되어 질문할 것이 없어졌다는 분,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은 어떤 리더쉽을 가져야 하는지 어떤 사업을 해야할 지 묻는 분, 엄마라면 3년간 육아를 해야한다고 스님말씀으로부터 배웠는데 3년 내내 완전히 아이에게 매달려야 하는지 스님께 조언을 구하는 분등 총 8명이 스님과 대화를 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다음의 질문과 스님과의 대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는 지금 친구 때문에 고민이 많고 좀 힘듭니다. 제가 2년 전에 은퇴를 한 후에 대학교 동창 3명과 함께 시골에서 조용하게 살려고 이곳으로부터 한 200마일 떨어진 곳에 땅과 집을 사서 이사를 갔어요. 그런데 3명의 친구들 중 1명이 저와 너무나 성격 차이가 심하고, 그 친구 때문에 많이 어려워요.

예를 들어 친구들이 각자 음식을 해 와서 다 같이 모여 밥을 먹을 때에 그 친구는 사람들 앞에서 ‘와, 이거 굉장히 맛있다. 누가 했어? 어떻게 했어?’라고 말하면서 사람들을 기쁘게 합니다. 그런데 다 먹고 난 다음에는 뒤에 가서 ‘아, 그거 맛대가리가 하나도 없더라’ 라고 뒷말을 해요. 저는 몰랐어요. 그래서 그 친구를 대할 때 제가 참 힘들고, 고민이 되고, 이제는 그 친구가 싫어지고 미워졌어요. 거기에는 한인들이 없어서 제가 만나는 친구는 그 친구밖에 없어서 그 친구를 안 볼 수가 없어요. 게다가 그 친구는 저랑 고등학교 동창, 대학교 동창이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막상 그 친구를 보면 미워하게 되어서 힘들어요. 그렇다고 제가 집을 팔고 나올 수도 없고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고 많이 힘들어요. 스님은 제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모두 웃음)

“그분과 한 집에 살아요?”

“아니요, 2마일 정도 집이 떨어져 있어요.”

“2마일 간격이나 떨어져 있는데 무슨 문제가 돼요?”

“그 친구가 없으면 사실 제가 만날 사람도 없거든요.”

“만나도 괜찮아요. 왜냐하면 질문자의 경우보다 더 성격 차이가 많이 나는 남편과 한 침대에 사는 사람도 수두룩하거든요.” (모두 웃음)

“그런데 저는 그 친구가 자꾸 미워져요.”

“그보다 더 미운 사람하고도 한 침대에 사는 사람이 여기 지금 수두룩하다니까요. 손 한번 들어보세요.(모두 박장대소)

그런데 질문자는 그분과 한 침대에 자는 것도 아니고, 한 집에 사는 것도 아니고, 2마일이나 떨어져 산다면서 그게 무슨 큰 문제라고 그래요? 문제 자체가 안 돼요, 진짜 온갖 걸 다 문제 삼네요.” (모두 웃음)

“편하게 살려고 왔는데 친구가 자꾸 미워지니까 지금 힘들거든요.”

“붙어서 한 침대에서 자는 것도 아니고, 매일매일 만나 하루 종일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일주일에 2, 3번은 만나요.”

“일주일에 2, 3번 2, 3시간씩 만나는데 그게 뭐 어렵다고 그래요? (모두 박장대소) 다 박수치잖아요. 고민 삼을 게 없으니까 온갖 걸 다 고민이라고 하시네요. 그 문제가 해결되면 다 끝날 것 같지요? 또 다른 고민이 또 생겨요. 지금은 그 고민이 있으니까 다른 건 넘어가는 것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첫째, 그건 고민거리가 안 됩니다. 그 분이 질문자의 친구가 맞기는 맞아요.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인 그분은 질문자를 친구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질문자는 그 분을 친구로 대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지금 질문자가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면 그래요.”

“솔직히 저는 그 친구가 싫어지고 있거든요.”

“지금 질문자는 상대의 성격이 내 마음에 좀 안 든다고 싫어하는 건데, 그런 질문자를 어떻게 친구라고 할 수 있겠어요? 돈이 있거나 없어도, 성격이 같거나 달라도, 종교가 다르거나 정치적 견해가 달라도 어릴 때 친구는 친구이고, 고등학교 친구는 친구이고 그런 것이지, 성격이 좀 다르다고 친구 안 하겠다는 건...”

“저한테 문제가 있는 건가요?”

“예. 그걸 이제 알았어요?” (모두 박장대소)

“알겠습니다. 다시 생각해 볼게요.(모두 박수)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거기서 이사를 나오고 싶거든요. 그 친구랑 만나기 싫어서요.”

“이사는 나올 필요 없어요. 질문자가 이사를 나와서 이문제를 해결할려면 대기 번호가 천만 번째쯤 될 거예요. 성격 차이로 고민이 많지만 한 침대에 사는 사람들부터 먼저 해결을 해야 되니까요.(모두 웃음) 우선 각방 쓰고, 각방 써도 안 되면 다른 집 쓰고, 이렇게 분리부터 하고 난 다음에야 질문자 차례가 돌아올 거예요. 그러니 질문자는 해당 사항이 별로 없어요. 오늘 여기 다른 질문자들이 풀어놓는 고민들을 차차 들어보세요. 질문자보다 더 원수 같은 사람과 한 침대에서 사는 사람들이 지금 수두룩하다니까요. (모두 웃음)

그런데 그 분이 왜 질문자를 친구로 생각하는지 아세요? 질문자는 지금 그 분이 질문자와 성격이 좀 다르다고 친구로 생각도 안 하고 미워하는데, 그 분은 질문자를 친구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 분이 만일 질문자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뒷담화를 안 하고 앞담화를 했을 것이니까요. 음식을 앞에 놓고 ‘얘, 이 음식이 무슨 맛이 있니?’ 이렇게 했을 거예요.” (모두 웃음)

“그게 더 솔직한 거 아니에요?”

“솔직하다고는 할 수 있는데, 사람이 어떻게 다 솔직하게 살아요? 예의가 있어야지요. 그래도 앞에서는 인사를 하고 뒤에 가서 궁시렁 대야지요.” (모두 웃음)

“그 친구에게는 사실과 진실이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제 법문을 듣는 여기 연세 드신 남자 분들이 제가 북한 얘기할 때 손을 번쩍 들고 ‘법륜스님! 너 종북주의 아니냐?’고 해야 질문자 속이 시원하겠어요? 그렇게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게 좋아요? 그래도 법륜 스님을 생각해서 북한 얘기가 좀 마음에 안 들더라도 참았다가 강연 끝나고 귀갓길에 부인한테 ‘거 법륜 스님이 아까 얘기하는 거 영 내 마음에 안 들더라. 스님 종북주의 아니야?’ 라고 하면 좀 낫지 않을까요? 그래도 법륜스님을 존경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그렇게 뒷담화를 하는 거지, 그렇지 않다면 이 자리에서 저한테 삿대질하면서 욕할 거란 말이에요. 자신과 다른 법륜 스님의 견해에 대해서 이 자리에서 삿대질 안 하시는 이유는 그 부분을 뺀 나머지 다른 부분은 스님에 대해 좋게 생각하시기 때문에 그 정도 예의를 지켜주시는 겁니다. 꼭 이 자리에서 손들고 항의해서 논쟁을 하고 그래야 좋겠어요? 질문자는 그게 좋다고 생각해요? 솔직한 게 다 좋아요?”

“저는 솔직하고 진실한 걸 좋아해요.”

“그럼 질문자는 트럼프 대통령을 굉장히 좋아하겠네요? (모두 웃음) 트럼프 대통령이 얼마나 솔직합니까? 장관들 시켜서 외교적으로 안 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트위터에 글을 써버리잖아요. ‘유색 인종들 보기 싫다, 여자 문제야, 멕시칸 돌아가라’ 라고 그 자리에서 바로 말해버리잖아요.”

“저는 그렇게 하는 게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친구관계는 사실에 근거한 진실한 관계여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친구일수록 예의가 있어야지요. 맛이 없더라도 먹고 난 뒤에는 ‘잘 먹었다’ 말하고, 돌아서서 ‘아까 그 음식은 맛이 참 별로더라.’ 이렇게 해야지요.(모두 웃음)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예의 때문에 보는 앞에서는 말을 안 하고, 뒤에 가서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이런 뒷담화는 인류문명이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이어온 역사가 있습니다. ‘없는 데서는 임금 욕도 한다’는 얘기 못 들어봤어요? 옛날에 임금에 대한 욕은 금기였습니다. 친구가 없는 데서 음식 불평 좀 한 걸 가지고 친구관계를 끊겠다는 건 질문자가 좀 문제라고 볼 수 있어요.” (모두 웃음)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그러니 이렇게 마음을 가져보세요. ‘그래도 내 앞에서 말 안 해 줘서 고마워.’ 그러면 미워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깨끗이 없어져요. 이런 마음이 되면 뒷담화 좀 들어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법륜 스님이 이렇게 법문한 것을 유튜브, 카카오톡, 페이스북에 무료로 얼마나 많이 올려줬는데도 거기에 달리는 댓글 한번 보세요. 온갖 욕설과 비난이 다 있습니다. 저도 그런 댓글은 싫어요. 그런 댓글을 보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그러나 방법이 없어요. 그래도 저는 그 분들이 이 강연장까지 따라와 제 앞에서 손가락질하며 욕하지 않고, 그냥 집에서 댓글만 쓰는 걸 고맙게 생각합니다.(모두 웃음) 또 그런 댓글이 싫으면 안 보면 돼요. 그래도 싫으면 삭제해 버리면 되고요. 더 문제가 되면 신고하면 되고요. 그런데 음식 맛없다는 뒷담화 좀 했다고 신고한들 그분이 무슨 처벌을 받겠어요?” (모두 웃음)

“그게 아니고, 그 친구 성격이 마음에 안 들어서요.”

“그런 성격은 누구에게나 다 있어요. 질문자가 지금 질문한 내용을 가지고 우리가 차타고 집에 가면서 ‘그 질문자는 참 할 일도 없나봐.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로 힘든 사람도 많은데 그런 걸 질문이라고 하냐?’ 라고 한다면 그게 다 뒷담화잖아요.(모두 박장대소) 그런데 그걸 여기서 앞담화 한다면 질문자는 좋겠어요?” (모두 박장대소)

“잘 알겠습니다.”

“그만한 일로 이사를 간다고요? 그냥 사세요.(모두 웃음)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라면 그런 정도는 봐줘야지요. 그보다 더한 인간도 친구가 될 수 있는데요. 성격 차이, 뒷담화, 이런 정도는 ‘저 친구는 저런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야지요.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까지 어떻게 그분과 친구관계를 유지한 거예요? 질문자가 은퇴를 했다고 하셨으니까 연세를 짐작할 수 있는데, 그럼 그 친구 분과 벌써 몇 십 년 친구 사이일 텐데, 이제야 그 분이 뒷담화 하는 걸 안 거예요? 뭣 때문에 3명이 친척도 아닌데 한 골짜기에 들어갔어요? 들어갈 때부터 잘못된 것이지요.(모두 웃음)

이런 케이스가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옛날에 한국이 어려울 때 미국으로 이민 와서 40~50년 살다가 이제 은퇴하고 보니까 50년을 여기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미국 사람이 된 것 같지도 않고, 늘 타향살이 하는 것 같아서 ‘죽기 전에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 형제들도 보고 싶으니까.’ 이렇게 해서 한국에 돌아가면 잘 살 수 있을까요? 딱 질문자와 같은 일이 생깁니다. 형제들이 모두 질문자가 간직하고 있던 옛날 그 형제의 모습이 아니에요. 특히 독일에 이민 갔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분들이 제일 힘듭니다. 그분들은 1960년대 20살, 21살 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간호학교를 나와서 독일까지 돈을 벌러 갔단 말이에요. 그것도 자기 쓸려고 번 게 아니라 다 가족들을 위해서 벌었어요. 그렇게 고생해서 돈을 벌어도 본인을 위해서는 요만큼도 안 쓰고 아껴서 전부 고향에 보내서 동생들 대학 뒷바라지를 했었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다들 60세가 넘으니까 은퇴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정착을 했는데, 그분들이 돌아와서 보니 어릴 때 같이 지냈던 그 형제들이겠습니까, 아니겠습니까?”

“아니에요.”

“예, 형제만 공부를 시킨 게 아니라 조카들까지 다 공부를 시켰는데도 다 남보다 못 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들 ‘내가 왜 그렇게 헛 살았을까?’하며 후회를 많이 하시는데, 그 형제들이 잘못된 게 아니라 그분들이 꿈속에서 살았던 거예요. 한 아버지, 어머니 밑에서 형제로 자랄 때는 모두 다 한 가족의 구성원이잖습니까? 그럴 때는 갈등하고 싸워도 하나의 공동체란 말이에요. 그런데 형제가 각자 결혼을 해서 각각의 가정을 이루고 본인들이 어머니, 아버지가 되면 독립된 공동체가 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그 관계는 경쟁관계가 되는 거예요.

우리가 어릴 때를 생각하면 부모님의 유산을 두고 형제들끼리 싸운다는 건 꿈도 못 꿀 일 아닙니까? 그런데 어느 집 할 것 없이 다 부모님 돌아가신 후에 그런 일로 갈등이 있어요. 형제간에 우애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그게 자연스러운 거예요. 돈이 있으니까 경쟁을 하는 거예요. 맏이는 자기가 맏이라고 더 먹으려고 하고, 동생들은 똑같이 먹자고 하고, 남자들은 옛날식으로 남자들만 먹으려고 하고, 여자들은 법에 정해졌으니까 똑같이 나누자고 하면서 싸우는 거예요.

형제들이 안 싸우게 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유산을 안 남기는 거예요. 그러면 형제 간에 우애가 생깁니다. 그래서 저도 그런 분들을 도와주려고 방법을 제시합니다. 형제 갈등의 원인이 되는 그 돈을 저에게 주시면 갈등이 없어집니다.(모두 웃음) 그럼 제가 그 돈으로 굶주리는 사람도 돕고, 학교 못 다니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도 지어주고, 그러면 얼마나 좋아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 아니에요? 안 그래요?”

“예.”

“그런데 왜 그걸 움켜쥐어서는 남도 안 돕고, 형제끼리 재판까지 하느냐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경우에 더 심하게 싸우는 케이스가 바로 재벌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돈이 제일 많다는 대기업의 회장이 다른 것도 아니고 돈을 가지고, 남도 아니고 형제 간에 재판까지 했는데, 한 기자가 물으니까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었잖아요. ‘한 푼도 못 준다!’ (모두 웃음)

자기 형님한테 한 푼도 못 준다고 했었어요. 저도 인도에 가면 길거리에 모르는 아이한테도 한 푼을 주는데, 한 푼도 못 준다니요.(모두 웃음) 신문에 난 기사를 보니까 ‘대법원이 아니라 헌법재판소까지 가겠다’ 라고 했더라고요. 그런 문제는 헌법재판소에 갈 사안도 아닌데 말이죠.(모두 웃음) 형제 간에 원망이 얼마나 크면 공개적으로 그렇게까지 말하겠어요? 그런데도 질문자는 그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다는 거예요? 기자가 물으면 ‘형제 간에 잘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얘기해 놓고, 속으로는 ‘한 푼도 못 준다!’ 라고 하는 게 낫지요.”

“예, 잘 알았습니다.” (모두 박수)

오늘 오렌지 카운티 강연은 한국의 한 강연장처럼 질문자와 스님의 대화도 아주 재미있었고, 청중들의 반응도 적극적이었습니다. 이렇게 심각한 문제들이 아주 유쾌한 소재가 됩니다. 이것이 스님 즉문즉설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8명과 대화를 하다보니 2시간 40분이 넘어 이미 10시가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첫 질문부터 웃음이 넘쳐납니다. 두 번째 질문자는 불안증을 극복하고 싶다고 해서 스님께서 청중들을 향해 뒤돌아서서 노래 한 곡 불러보라 해서 애국가도 불렀습니다. 정말 심각한 문제도 별 게 아닌 순간이 되었습니다.

오늘 오렌지 카운티 강연에서는 자원봉사자 40명을 포함하여 총 470명이 참가하였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책사인회를 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길게 줄을 서서 스님께 사인을 받고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줄을 서 있는동안 질문하신 분께 물어보니 너무 좋았고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하며 오늘 경험한 것을 계기로 앞으로도 계속 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또 한 분은 객관적으로 보니 내 고민이 심각한 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어 좋았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평소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조금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질문하게 되었는데 확실하게 알게 되어 좋았다고 했습니다. 또한 뉴멕시코에서 오셨다는 분은 스님 말씀이 너무 좋아 함께 하는 동안 내내 행복하고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강연장에 갈 때마다 이렇게 평소 유튜브나 팟캐스트 등을 통해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실제 자기의 삶에 적용해보는 분들이 많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책사인회가 끝난 후에 스님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촬영을 하였습니다.

이어 오렌지카운티 법당 부총무 정양희님과 실무총괄을 한 전임 부총무 전은영님께 수고했다는 인사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은 정토회 회원들이 흔들림없이 수행정진하여 행복한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이 좋은 법을 이웃에 널리 전하길 당부하였습니다.

“정토회는 불교를 종교로 접근하지 않고 수행을 중심으로 하는 단체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수행을 하게 되면 환경이 이리저리 바뀌더라도 환경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고 자기가 중심을 잡고 주인되어 살 수 있습니다. 남편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니라 그런 남편하고 살아도 나는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혼자 살아도 행복하고 둘이 살아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혼자 있을 때 불행하다면 결혼해서 둘이 살아도 갈등하고 살게 됩니다.

현대사회는 빠르게 변화합니다. 중심을 잡지 않으면 방황하게 됩니다. 자기 가치관을 고집하면 갈등하게 되고, 놓아버리면 방황하게 됩니다. 무유정법이란 정해진 바가 없고 인연따라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도리입니다. 이런 관점을 가질 때 누구를 만나도 혼란스럽지 않고 어떤 환경에서도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더 빨리 변화하는 미래세대는 더 혼란스럽지만 수행을 하게 되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불교의 바른 깨달음을 공부해야 흔들림이 없이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사는 이유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전하러 왔다고 생각하면 자신감이 생깁니다. 자기 수행을 해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동시에 전법해야 합니다. 전법하기 위해서는 보시하고 봉사도 해야 합니다. 부지런히 수행정진해서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사람 행복한 사람이 되어 행복을 이웃에 전하시길 바랍니다.”

묘덕법사님과 나누기를 하라고 하며, 스님은 강연장을 나와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숙소에 와서 전직대표님과 수행팀은 잠깐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LA정토회 산하 오렌지카운티 일정도 마무리 됩니다. 이제 엘에이 일정과 샌디에고 일정만 남았습니다. 내일은 엘에이 강연뿐만 아니라 오전에는 엘에이정토법당에서 북미서부지구 불교대학 졸업식 및 수계식이 있습니다. 내일은 엘에이 소식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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