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30분, 어김없이 알람시계는 울리고 하루가 열립니다. 3시부터 각자의 자리에서 아침예불과 천일결사기도를 합니다. 오늘은 취리히에서 독일 린다우까지 가서 기차타고 뮌헨으로 이동하는 일정입니다. 린다우로 가는 길에 리히텐슈타인 공국을 둘러보고 가기로 했습니다.

오전 5시 한국식으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오늘 아침도 회원들이 한 가지씩 스님께 공양 올릴 것들을 차려냈다고 합니다.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통해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삶이 행복해지고 자유로워진 분들이 스님께 올리고 싶은 공양 한 가지씩을 준비하여 숙소에 미리 배달해 놓은 것입니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리히텐슈타인 공국을 들리려면 약 1시간정도 둘러가기 때문에 예정된 일정보다 조금 일찍 오전 6시 출발하기로 하였습니다. 출발하기 전 오늘 숙소를 제공한 김말순님과 남편분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깜깜한 가운데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1시간을 채 못달려 취리히호수를 지나 발렌호(Walensee)에 도착했습니다. 비가 오는 가운데 스님은 차에서 내려 발렌호에 손을 담가 보기도 하였습니다. 호수의 물빛이 미국 키웨스트의 대서양 바다 물빛처럼 쪽빛이었습니다. 스위스는 자연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베른 알프스 산맥의 설산인 융프라우도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곳입니다.

다시 길을 달려 중앙유럽에 있는 내륙국으로 세계에서 6번째로 작은 나라인 리히텐슈타인에 들렀습니다. 리히텐슈타인은 유럽에서 4번째 작은 나라로 면적은 120km2, 인구는 약 3만 명 정도라고 합니다. 1990년에 유엔에 정식으로 가입한 나라로 부유하며 국방은 스위스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위스대사가 리히텐슈타인을 대표하여 외교행위를 합니다. 서쪽은 스위스, 동쪽은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고, 국토의 대부분이 산으로 알프스의 연장선상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출처: 위키백과)

언덕 위에 위치한 고성을 한번 둘러보러 갔는데 성에는 공작이 살고 있어 출입을 금한다고 합니다. 비오는 언덕길을 걸어보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리히텐슈타인을 느껴보았습니다. 도시는 스위스나 유럽의 여느 도시처럼 깔끔하고 현대적이며,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그런 느낌입니다.

성으로 올라가는 길에 만난 빵집에서 산 빵을 들고 현대적인 커피점에 들어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몸을 녹였습니다.

차창 옆으로 스치는 비오는 스위스의 풍경이 아주 아름답습니다. 리히텐슈타인을 잠깐 느껴보고 오스트리아를 거쳐 독일로 들어왔습니다. 1시간 사이에 4개국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오스트리아, 독일)을 둘러보고 왔다고 하며 다들 즐거워하였습니다.

이제 발길을 린다우로 돌립니다. 보덴호에 있는 린다우섬 린다우역에서 11시 12분행 기차를 타고 뮌헨 중앙역까지 가는 일정입니다.

보덴호(독일어: Bodensee)는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세 나라에 걸쳐 있는 호수로 면적은 536km²정도입니다. 빙하기에 형성되었으며 라인 강 상류의 중요한 발원지 중 한 곳입니다. (출처: 위키백과) 보덴호의 동남쪽의 독일쪽 코너에 있는 작은 섬이 린다우 섬입니다. 섬에는 연세든 관광객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성수기에는 사람이 많아 방문하기도 힘들다고 합니다. 호수가 아름답고 요트와 등대가 놓여있는 모습이 작은 시골 항구모습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점심도시락을 준비했지만 출발할 때 깜빡 잊고 놓고 오는 바람에 오는 길에 산 빵으로 요기를 대신하였습니다.

스님과 일행이 타야할 기차가 들어오는 플랫폼에서 모두들 기다리고 있다가 열차가 정차해 있는 동안 서둘러 짐을 실었습니다. 인도성지순례할 때 꼴까타에서 가야로 가는 기차에 부랴부랴 짐을 실었던 모습이 연상되어 모두들 한바탕 즐거워하였습니다.

오늘 배웅나온 김옥선 부총무님, 김말순님, 김순조님 이종은님 네 분은 모두 이틀 뒤 뒤셀도르프에서 열릴 유럽지구 불교대학 졸업식에 참가한다고 합니다. 아쉽지만 이틀 뒤 다시 볼 것을 기약하며 2시간 30분거리인 린다우까지 배웅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기차는 통일호 열차 수준으로 달려 바깥풍경을 찬찬히 음미하며 갈 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타는 일반 열차가 정겹게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조금 연착되어 기차는 2시 45분에 뮌헨 중앙역에 도착했습니다.

뮌헨법회의 임혜지님과 전직총무였던 송혜련님이 마중나와 스님께 반갑게 인사하였습니다. 송혜련님은 모든 짐을 차에 싣고 강연장으로 바로 떠나고 스님과 일행은 시내에 있는 임혜지님 댁으로 가 강연 전까지 잠시 쉬기로 했습니다.

뮌헨 중앙역은 살아움직이는 역같이 활력이 넘치고 역동적이라 기분이 좋습니다. 여행객들이 아주 많아 보이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전철을 타고 시내에 있는 임혜지님 댁에 도착하였습니다.

서울로 말하면 광화문통에 집이 있는 격이라고 합니다. 건축학을 공부하신 분답게 실내 인테리어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아담한 공간에 오밀조밀 아름다운 장식물로 집을 꾸몄습니다. 스님을 맞이하는 환영과 따뜻함이 집안 곳곳 작은 소품 하나하나에도 배어 있습니다.

스님은 잠시 원고교정도 하고 업무도 보고 나서 강연장에 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5시 30분에 전철을 타고 강연장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전철 일일이용권을 끊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철티켓을 넣고 빼는 곳이 없습니다. 독일에는 전철카드를 읽는 곳이 없지만 가끔씩 직원이 체크를 하는데 승차권이 없으면 벌금이 60유로라고 합니다. 그리고 두 번 적발되면 범죄자로 잡힌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다 함께 전철을 타고 가는 일정은 재밌고 좋았습니다. 외국인들을 볼 수 있어 지금 내가 독일에 있다는 것이 실감났습니다.

전철역에서 내리자 강연장으로 가는 한국인 한 분이 어린 여자아이와 함께 스님께 다가와 인사하기도 했습니다.

전철역에서 내려 걸어가니 저 멀리 강연장이 보입니다. 강연은 Grafefing Burgerhus 라는 곳에서 열렸는데 Community Center로 일종의 구민회관 같은 곳입니다. 시설이 깨끗하고 깔끔해 보였습니다.

강연장에 도착하니 봉사자들이 스님께 반갑게 인사하였습니다. 작년에 뮌헨이 강연일정에서 빠져서 이번에 특별히 열심히 준비했다고 합니다.

스님은 소개 영상과 함께 큰 박수로 연단에 올라갔습니다. 스님은 관중들과의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고 하면서 무대 밑으로 내려와서 서두를 열었습니다.

“그 동안 잘 지내셨어요? 작년에 못왔더니 올해 장소가 좋은데로 바뀌었네요. 반갑습니다. 어제 취리히에서 강연하고 아침에 린다우까지 차로 왔어요. 차로 온 이유는 리히텐쉬타인을 한번 볼려고 그랬어요. 오늘 스위스, 리히텐쉬타인, 오스트리아, 독일 이렇게 4개국을 거쳐 왔습니다. 독일 린다우섬에 있는 린다우역에서 기차를 타고 뮌헨으로 왔습니다. 비가 와서 제대로 못봤지만 그래도 산수가 아주 좋은 경치를 보면서 왔습니다. 여러분께서 잘 아시다시피 즉문즉설은 강사가 직접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강연이 아닙니다. 강사가 청중과 함께 대화하면서 고민을 풀어나가는 그런 시간입니다. 혼자서는 나만이 가지는 무거운 짐같지만 보통의 인간, 사람이 다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얘기에 불과합니다. 무거운 것은 드러내어 함께 나누면 가벼워지고, 좋은 것은 드러내어 나누면 더욱더 커집니다. 여러분과 가볍게 얘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통일기도 등 기도를 하긴 하는데 지금처럼 하면 안되는 것 같고 주제를 잡아서 기도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은지 묻는 분, 부모님이 이혼준비중인데 엄마가 힘들어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하는지 묻는 분, 북핵문제등 국제정세를 고려할 때 통일이 가능한지 문의하는 분, 달라이 라마의 종교가 밀교라고 하던데 밀교가 무엇인지 묻는 분, 무슬림 특히 IS문제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묻는 분, 한국문제에 관심이 많은데 한국인으로서 해외거주자로서 가져야 할 입장이 무엇인지 묻는 분, 독일 직장생활속에는 인정을 못받고 사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는 분 등 총 7명이 스님께 질문하고 대화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다음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저는 부모님이 현재 이혼을 준비 중이세요. 엄마는 원하시지 않지만 아빠가 소송을 감행하셔서 어쩔 수 없이 동의를 하신 상태입니다. 그 과정에서 엄마가 많이 힘들어 하시고, 자식들이 방패막이가 되어주지 않았다고 원망을 많이 하십니다. 엄마 스스로 피해자라고 생각하면서 많이 억울해하시고 ‘여태까지 괜히 살았다’ 라는 말씀도 많이 하시는데 그 중 저한테 가장 많이 의지를 하세요. 다른 가족들은 저한테 ‘엄마는 피해자가 아니고, 엄마도 잘못한 게 있고, 아빠 입장에서도 서운하신 게 있다’는 이야기를 해드려야 엄마도 알아차린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저는 엄마가 더 상처를 받으시고 우울증에 빠지실까봐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궁금합니다.”

“아빠는 왜 이혼을 하시겠대요?”

“제가 기억하는 한 두 분은 한 번도 사이가 좋으신 적이 없었어요. 사이가 좋았다가 안 좋았다가 하는 게 아니라, 사이가 안 좋았다가 더 안 좋았다가를 반복하신 것 같아요. 그러다가 얼마 전에 크게 싸우셨는데 그때 아빠가 ‘이제 아이들도 다 컸고 더 이상은 같이 못 살겠다’고 하시며 지금은 집을 나가서 지내고 계세요.”

“성격의 차이를 넘어서서 엄마가 이혼을 할 만한 특별한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니라면 아빠가 이혼을 하자고 해도 엄마가 이혼을 원하지 않으면 안할 수 있어요.”

“그런데 아빠가 벌써 소송을 걸어두신 상황이에요.”

“소송을 걸어도 엄마가 법원에 가서 ‘저는 가정을 지키겠습니다’라고 말하면 돼요.”

“그런데 저희도 이혼을 반대하지 않으니까 엄마는 저희랑 아빠가 같은 편에 서서 이혼을 시킨다고 생각하세요.”

“엄마 입장에서는 남편이 이혼하자고 하니까 ‘그래, 이혼하는 게 좋겠다’ 고 받아들여도 되고, 이혼을 원하지 않으면 남편이 원해도 법원에 가서 ‘저희가 성격 차이로 갈등이 있긴 하지만 저는 이혼을 원하지 않습니다. 어느 가정이든 성격 차이가 조금씩은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저희들도 가끔 다투긴 하지만, 지금까지 아이들도 우리가 협력해서 키웠고 지금까지 같이 살아왔기 때문에 저는 이혼을 원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면 돼요. 엄마가 특별히 재산에 커다란 손실을 끼쳤다거나, 아빠를 때렸다거나, 다른 남자를 만나는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으면 한 쪽이 이혼을 원한다고 해도 재판에서는 이혼이 성립되지 않아요. 그러니 엄마가 이혼을 원하지 않으시면 재판장에서 자신의 의사를 밝히면 됩니다. 이건 상대방이 하자고 한다고 다 그렇게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에요.”

“엄마는 ‘아빠도 집을 나갔고 너희들도 나를 배신했으니 이혼해주겠다’ 라는 말씀을 하세요.”

“그러면 이혼해도 돼요. 엄마 입장에서는 나에게 결격 사유가 있든 없든 상대방이 나와 같이 살고 싶지 않다고 하니까 굳이 같이 살 이유를 못 느끼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러니 아빠의 이혼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도 엄마가 택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이에요.

반면 엄마가 이혼을 원하지 않는데도 아빠가 어떻게든 이혼을 하려고 하면 엄마한테 재산을 더 분할해 줄테니 이혼을 해달라고 하든지, 변호사를 통해 재판장에서 왜 이혼을 꼭 해야 하는지 구구절절 설명을 하든지 이런 과정을 겪어야 해요. 이럴 때는 이혼하자는 사람이 을(乙)이기 때문에 왜 이혼을 꼭 해야 하는지 증명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 엄마가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면 판사 앞에서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평소에 남편을 잘 다독였어야 하는데 제가 이런 일을 재판장까지 끌고 와서 죄송합니다. 요즘 우리 남편이 정신적으로 힘이 드는지 흥분을 많이 하는데, 제가 집에 가서 잘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대체로 괜찮으신데 오늘 유독 저러시네요. 저는 특별히 이혼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남편이 자꾸 주장을 해서 오늘 어쩔 수 없이 재판장까지는 나왔습니다. 그러나 판사님, 저희 가정을 지켜주십시오.’

이 경우에는 아빠가 아무리 소송을 했다고 해도 판사가 이혼하라고 판결내리기가 어려워요. 그러니 판사가 보지 않을 때는 남편을 구박하더라도 판사가 볼 때는 ‘저는 가정을 지키겠습니다’ 하면 돼요. (청중 웃음)

질문자가 엄마 걱정을 하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엄마 입장에서도 본인이 이혼을 원하지 않으면 아무리 남편이 이혼을 하자고 해도 피해자가 되지 않습니다. 엄마에게 선택권이 있는 거예요. 아빠가 이혼을 하자고 하니까 ‘그래, 이혼하자’ 라고 결정을 내려도 되고, ‘내가 왜 당신 좋으라고 이혼을 해 줘? 나는 싫어’ 라는 생각이 들면 이혼에 동의하지 않고 버티면 돼요. 상대방이 이혼을 원하지만 나는 버틸 때는 변호사를 살 필요도 없고, 욕하면서 버틸 필요도 없어요. 그저 판사 앞에서 ‘판사님, 저는 가정을 지키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라고만 말하면 판사도 ‘이건 남자가 문제다’ 라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청중 웃음)

그럴 때 남편이 와서 재산을 더 주겠다고 하든지 어떻게든 설득하려고 할 때 괜찮다 싶으면 엄마가 ‘그래, 이혼 해줄게’ 라고 동의를 해도 되고, 그래도 마음에 안 들면 계속 가정을 지키겠다고 버티면 돼요. 그러니 결코 엄마가 피해자가 아닙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엄마한테 드리기 어려워하는 이유는 그렇게 말을 하면 아빠한테 반대를 하는 것 같아서요…”

“이건 아빠한테 반대를 하는 게 아니에요. 아빠가 나쁘다고 말하면 아빠한테 반대하는 것이지만, 엄마가 원하면 이혼할 수도 있고, 원하지 않으면 가정을 지킬 수도 있다고 알려주는 건 아빠를 나무라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저는 괜히 제가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하기가…”

“질문자가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할 필요가 없죠. 엄마나 아빠가 질문자의 의견을 묻지 않으면 굳이 관여할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엄마가 계속 저한테 물어보세요.”

“그럴 때 저렇게 대답해 주면 된다는 거예요. 의견을 물으면‘엄마가 하고 싶으면 할 수도 있고,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할 수도 있어’ 라고 말해주는 거예요. 이건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저한테는 계속 이혼을 결심하셨다고 말씀하세요.”

“그러면 엄마의 뜻대로 하시라고 하면 돼죠.” (청중 웃음)

“그런데 그런 말씀을 하시면서 저희를 미워하고 스스로도 괴로워하세요.”

“그런데 그렇게 결심하고 괴로워하는 건 엄마 사정이지 질문자가 관여할 일은 아니잖아요?”

“그래도 엄마니까요. 엄마가 마음 아파하시는데 제가 ‘엄마는 마음이 아프든 말든’ 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엄마를 마음 아프게 하라는 게 아니라, 엄마가 스스로 그런 결정을 내린 다음 그 결정으로 혼자 괴로워하는 데 대해서는 질문자가 아무런 역할을 할 수가 없다는 말이에요. 엄마가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시면 싸워도 엄마 아빠 둘이서 싸우는 것이고, 헤어져도 두 사람이 헤어지는 것이니까 질문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이에요.

이 부분을 분명히 해야 해요. 이것은 엄마 아빠의 일이지 내 문제가 전혀 아니에요. 질문자가스무살이 넘었기 때문에 두 부부 사이의 일은 그저 두 사람 사이의 일일 뿐이지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문제예요.

엄마 아빠의 일은 질문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에 뭐라고 하든 나는 아무 신경을 쓰지 않는 방법도 있고, 그래도 엄마가 딸한테 전화를 해서 물어보면 엄마가 원하면 이혼을 할 수도 있고 원하지 않으면 안 할 수도 있다고 말해주면 됩니다. 이혼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하면 잘 하셨다고 하면 되고, 이혼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고 하면 ‘엄마, 재판장에 가서도 이혼하지 않고 가정을 지키겠다고만 말하면 돼. 큰 문제 없어’ 라고 말해주면 돼요. 물어보면 딸로서 이렇게 대답해줄 수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질문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문제예요.”

“엄마가 저희를 비난하시는데…”

“엄마는 이혼을 해야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이니까 누구에게라도 욕을 좀 하고 싶은 거예요. 질문자가 자식 된 도리로 그 정도 욕은 먹어줘도 되잖아요. 그거 다 그냥 하는 하소연이에요.” (청중웃음)

“저도 하소연 듣는 건 어렵지 않은데, 엄마가 괴로워하시니까…”

“엄마가 괴로워하시는 건 엄마의 문제예요. 엄마 스스로 괴로워하는 것에 대해서 질문자가 무언가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러면 저희 가족이 저한테 조언하듯이 ‘엄마는 피해자가 아니야’ 라는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나요?”

“피해자가 아니라는 이야기는 굳이 할 이유가 없죠. 엄마가 질문자에게 도움을 청하면 청하는 부분에 있어서만 이야기를 해주면 돼요. 엄마가 피해자니 피해자가 아니니 하고 말하는 건 질문자가 간섭하는 거예요. 그런데 두 사람이 결혼하고 이혼하는 문제인데, 왜 질문자가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엄마가 자식들을 미워하시니까 자식 된 입장에서…”

“엄마가 미워하고 미워하지 않고는 엄마 사정이잖아요.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면 그건 내 사정이지 상대방이 그것에 대해 뭘 어떡하겠어요?”

“엄마가 괜찮아지시면 저도 좀 괜찮을 텐데”

“엄마는 안 괜찮아지셔도 나는 괜찮아야 해요.”

“네, 감사합니다.”

“별로 감사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청중 웃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으면 더 물어봐야죠. 제 이야기는 질문자가 하는 말들이 모두 엄마의 인생 문제이지 질문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예를 들어, 스님이 출가할 때 어머니가 반대하셨겠죠. 그것으로 어머니가 괴로워하신다고 해도 그건 엄마의 인생이지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제가 그런 말씀을 드렸더니 어머니가 저한테 정말 이기적이라고 하셨어요.”

"그러면 ‘그래. 이기적이다’ 라고 인정하면 돼죠. 힘들어하셔도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엄마가 이혼 문제를 두고 괴로워하는 건 엄마 한 사람을 두고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그렇다고 질문자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어요.

그저 엄마가 요청을 하는 부분이 있으면 해주고, 질문자의 의견을 물으면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다시 물어보고 이혼하기 싫다고 하시면 ‘엄마, 걱정할 거 없어요. 재판장에 가서도 가정을 지키겠다고만 이야기하면 됩니다’라고 말하고, 이혼하기로 결심했다고 하시면 ‘그럼 어머니 결정대로 하십시오’ 라고만 말하면 돼요.

어머니의 괴로움이 질문자의 괴로움으로 전염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엄마의 괴로움은 정신 질환에 속하는데, 지금 질문자는 그것에 전염이 되어서 질문자 스스로도 괴로워하고 있어요. 어머니가 괴로워한다고 해서 나까지 전염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전염된다고 해서 어머니의 병이 낫는 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만약 내가 그 병을 가지고 와서 어머니의 병이 나으면 그건 효자라고 할 수 있지만, 병을 옮겨오면 둘 다 병들고 맙니다.

만약 엄마가 콜레라에 걸렸다면 엄마 혼자 아프고 나는 멀쩡해서 필요할 때 간호라도 하는 게 낫지, 엄마가 걸렸으니 나도 같이 걸리는 게 나은가요? 그럴 때 같이 병에 걸려주는 게 효자인가요?

같이 병에 걸리는 건 엄마한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엄마가 이혼 문제로 고민을 하고 괴로워해도 엄마의 문제로 남겨두는 게 낫지, 그 문제로 질문자가 괴로워한다고 해결되는 건 없어요. 그건 그분의 문제예요.

어떤 게 내 문제이고 어떤 게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닌지 명확히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머니가 ‘너 절에서 나오지 않으면 약을 먹고 죽겠다’고 해도 그건 어머니의 인생이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 말에 스님 생활을 그만두면 그건 어머니한테 말려드는 거예요. 내가 어머니를 해친 것도 아니고, 재산 손실을 끼친 것도 아니고, 어머니를 괴롭힌 것도 아니잖아요. 내가 가는 길을 두고 어머니가 시비하는 것은 어머니의 인생이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마찬가지로 질문자가 잘못해서 부모님을 이혼시키는 경우가 아니라면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마치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질문자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껏해야 같이 괴로워하는 것밖에 없잖아요? 같이 괴로워하는 건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건 어리석은 거예요.

세상 사람들 기준으로는 착하다는 이야기를 들을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바보 같은 짓이에요. 마치 남북한에 긴장이 고조된다고 해서 유럽에 사는 여러분이 밤새 걱정하면서 우는 것과 같아요. 울어도 눈물만 나고 이불만 젖지 실제로 긴장을 완화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잖아요? 그건 혼자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것이지 애국 행위도 아니에요. 오히려 애국 행위를 하려면 거리에 나가서 피켓이라도 하나 들거나, 성명서를 내거나, 영향력 있는 사람에게 이메일이라도 써서 실질적으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해야지 혼자서 슬퍼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처럼 같이 괴로워하거나 뭔가 해줄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건 엄밀히 말하면 정신질환에 속합니다. 선(善)한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이건 어리석은 행동이에요.”

“네, 감사합니다.”

스님이 7명과 대화를 하다보니 시간은 어느덧 2시간 30분을 넘겨 9시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어린 나이에 해외에 나와서 어려운 길을 걸어 여기까지 개척해 온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정말 훌륭한 일을 해낸 것이라 봅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똑같은 일이지만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저만 해도 ‘매일 하루에 한 군데 다니고 무슨 일정을 저렇게 빡빡하게 했나? 힘들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하루만에 4개국을 섭렵하고 해주는 밥 맛있게 먹었다’ 이렇게 하는게 좋아요. 긍정적으로 봐야 합니다. 부정적으로 보면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고, 긍정적으로 보면 ‘이 세상에서 나만한 사람없다’ 이렇게 자신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스님은 뮌헨 강연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오늘 강연에는 약 70여명이 참가하였고, 자원봉사자는 13명 정도 되었습니다. 새로운 장소에서 다들 정성껏 준비하여 이전 뮌헨 강연보다 조금 더 집중되고 아늑한 분위기와 공간에서 강연을 한 것 같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바로 밖으로 나와 책사인회를 하였습니다. 오늘 소개된 질문자에게 스님과의 대화가 어땠는지 문의해보았습니다.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확답을 얻었고 머리가 깨끗해지고 맑아졌다고 스님께 감사드린다고 했습니다. 유학생이라고 하는데 어느새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참 맑고 고와보였습니다. 자원봉사를 한 분의 독일인 남편은 한국말을 조금 알아듣는다고 하면서 끝까지 자리를 지켰는데 부부가 스님께 와 인사드리고 책사인도 받고 함께 사진도 찍었습니다.

스님이 오실 때마다 강연에 온다는 분은 늘 스님의 말씀은 유쾌하고 재밌다고 하였습니다. 뮌헨에서 65km 떨어진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여러 친구들과 함께 왔다는 부부는 정말 좋았다고 하면서 아우크스부르크는 구자철 축구선수가 현재 소속되어 있는 도시라고 얘기해주었습니다.

한바탕 스님과 사진찍고 서로 얘기하는 즐거운 시간을 가진 뒤 스님은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뮌헨법회의 부총무를 하면서 오늘 강연의 실무총괄을 한 신봉철님께도 스님은 감사의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직총무였던 송혜련님, 현직부총무인 신봉철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어 스님은 숙소로 먼저 돌아가겠다고 수고했다고 봉사자들에게 인사한 뒤 숙소인 김현정님 댁으로 오니 10시가 넘었습니다. 묘덕법사님과 김선희 지구장은 봉사자들과 나누기 시간을 가진 뒤 송혜련님과 함께 숙소로 귀가하였습니다. 내일은 오전 9시 55분에 뮌헨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하는 일정이라 아침이 조금 여유롭습니다. 그래서 다들 밀린 빨래를 하기로 했습니다. 유럽에서의 3일째 뮌헨의 밤이 깊어갑니다. 내일은 프랑크푸르트에서 뵙겠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김순영 이준길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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