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기온이 생각보다 쌀쌀합니다. 스님은 예불과 기도를 마친 후 밭으로 갔습니다. 오늘도 아침 공양보다 먼저 아침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온실 속 상추들은 상태가 좋지 않네. 곧 뽑아서 먹고 밭 정비를 해야겠다.”

스님은 온실 속 상추는 너무 더워 줄기 아랫부분이 거의 녹아내리다시피 하는 것을 보고 다음에 정리하기로 하고 바깥 밭의 상추와 고소는 충분히 딴 후, 잘 씻어 서울로 보냈습니다.

아침 공양 후에는 떨어져 나간 온실 문을 정비하였습니다. 나무문을 주워 와서 온실 문으로 달아뒀는데 나무틀이 부실해서인지 돌풍에 견디지 못하고 빠져버린 것입니다. 이번에는 각목을 덧대어서 나무틀이 안정적으로 되도록 수리하였습니다.

또, 자갈을 주워 와서 수돗가에 깔고 불편하지 않도록 자갈 자리를 편평하게 다졌습니다. 늘 물이 고이는 곳이라 신발이 젖곤 했기 때문입니다.

주변 정비를 하고 나니 점심 공양 시간이 되었습니다. 점심 공양 후에는 통일씨감자 밭으로 가서 비어있는 두둑에 고구마와 야콘을 심었습니다. 먼저 흙에 물을 준 다음, 고구마 순을 흙 깊이 찔러 넣었습니다. 벌써 잎이 너울너울 큰 야콘도 잘 심은 후 물을 흠뻑 주었습니다. 햇빛이 강렬하지 않고 약간 수분을 머금은 공기여서 고구마와 야콘 심기에 딱 좋은 날씨였습니다.

천천히 다른 고랑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지난번에 심었던 옥수수 씨앗에서는 흙을 밀치고 떡잎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단호박은 꽃을 피워 곧 호박을 매달 기세였습니다. 고추에는 꽃이 떨어지고 작은 고추가 매달리고 있었습니다. 토마토는 푸른 토마토 알갱이를 줄기에 주렁주렁 달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통일씨감자는 푸른 잎을 키워가며 튼튼하게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가물었던 와중에도 잘 참아 엊그제 온 비를 먹고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빈 밭을 갈아엎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보니 초록빛이 무성한 생명의 밭이 되어 있었습니다. 사람의 손길이 고맙고, 씨앗의 생명력이 신기합니다.

5월 16일의 밭▲ 5월 16일의 밭

3월 24일의 밭▲ 3월 24일의 밭

밭에서 내려와 서둘러 씻고 창원 ‘늘푸른전당’ 강연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강연장 로비에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하며 손님을 맞는 행복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의 인사소리로 왁자지껄하였습니다.


저녁 7시, 1층과 2층에 마련된 객석이 가득 차고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여덟 분의 질문자와 대화를 하였습니다. 그 중 아들 문제로 대신 찾아온 어머니와 스님의 대화를 싣습니다.

“저는 제 문제가 아니라 아들 문제로 질문 드리려고 오늘 부산에서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누구 대신 하는 질문은 안 받아요. 즉문즉설이니까 본인과 직접 대화를 해야지 누굴 대신 할 순 없거든요.”

“저도 고민이 하나 있어요, 스님.”

“좋아요. 그럼 본인 문제를 질문해 보세요.”

“예. 우리 아들이 42살, 용띠로써 아직까지 장가도 못 갔습니다. 체격은 마른 편이고요, 음식도 편식을 많이 하고요. 여태까지 같이 살다가 작년에 자기 혼자 나가서 살아보겠다고 하더라고요. 경제력도 없으면서 그렇게 고집을 피우기에 작년에 내보내긴 했는데, 혼자 있으니까 더 챙겨 먹질 않아서 그런지 건강이 더 나빠졌어요. 아들은 지금 한방 정신과, 양방 정신과뿐만 아니라 이 병원, 저 병원에서 다 진료를 받고 있는 중이에요.”

“병원에서는 뭐라 그래요?”

“양방 정신과에 가니까 아들에게 신경쇠약, 불안장애, 공황장애, 강박증이 있다면서 약을 일주일에 한 번씩 먹으라, 입원을 시키라는 말을 많이 하더라고요.”

“병에 대해서는 법륜스님이 많이 알까요, 의사 선생님이 많이 알까요?”(모두 웃음)

“병은 의사가 많이 알겠지만 지혜는 의사보다 법륜스님이 훨씬 뛰어나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병은 의사선생님이 더 잘 아시지요. 제가 질문자의 얘기를 들어보니, 아들의 증상과 의사선생님의 진단을 들어볼 때 의사선생님의 진단에 일리가 있다 싶어요.
병원에서 치유하지 못하는 게 많다 보니까 아직도 정신질환에 대해서는 절에 다니는 사람은 천도제 지내고, 교회 다니는 사람은 안수기도 받고, 무속신앙 믿는 사람은 굿하는 건데, 제가 볼 때는 정신과 치료가 그런 종교적 행위보다 더 나아요. 그러니 정신과의 처방에 잘 따르세요. 치료약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닙니다. 아들의 신경이 잘 흥분되고, 예민하기 때문에 안정제를 주로 처방해 줄 텐데, 아들이 안정제를 먹으면 신경이 조금 무뎌지는 대신에 맥이 없어지고, 멍해질 겁니다.”

“예, 맞습니다.”

“그래도 안 먹는 것보다는 먹는 게 나아요. 단, 우리가 치료를 받으면, 무슨 약을 먹으면 ‘나아야 된다’고 생각하기가 쉽잖아요. 그렇지요?”

“예.”

“우리나라에서는 정신질환의 조기발견과 조기치료가 잘 안 이루어집니다. 왜냐하면,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 때문에 정신과에 가는 걸 꺼려해서 그래요.
또 아이가 자꾸 방에만 있으려고 하고 밖에 안 나오려고 하면 ‘병이다’ 해서 치료를 해야 되는데, ‘얘가 왜 저러냐? 너만 정신 차리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조기발견과 치료가 어렵지요. 치료의 기회를 놓치다 보니까 지금 질문자의 아들처럼 만성화가 되는 겁니다. 그렇게 만성화가 되면 완치는 거의 어렵습니다.”

“예에...”

“질문자가 ‘우리 아들은 완치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면 질문자도 너무 힘들고, 아들도 너무 힘들게 되고, 의사도 못 믿게 되고, 돈만 들게 될 거예요. 그러면 어떤 문제가 생기느냐 하면, 아들을 완치시키려는 욕심 때문에 누가 ‘굿하면 된다’거나 ‘천도제 지내면 된다’거나 ‘안수기도 받으면 된다’거나 하면 혹해서 돈을 천만 원씩 내고 굿이나 천도제나 안수기도를 받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정신질환이 생기면 자살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아시겠어요?”

“예.”

“그러면 병을 낫게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자살을 막는 게 우선 더 중요하잖아요, 그렇지요?”

“예, 맞습니다.”

“그러니까 아들의 신경이 흥분되지 않도록, 약을 꾸준히 먹으면 약간 멍청해질지언정 사고는 안 생길 거예요. 거기서 더 악화되면 남을 해칠 수도 있어요. TV 뉴스에 나오는 ‘묻지마 살인 사건’, 들어보셨지요?”

“예.”

“그런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특정인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나만 죽는 게 억울하다’면서 그냥 차를 아무렇게나 운전해서 사람을 받아버린다든지 하는 거거든요. 미국에서는 그냥 차타고 가면서 길거리에 대고 총을 마구잡이로 쏴버리거나 학교에 난입해서 난사하는 사건이 종종 일어나잖아요. 테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은 나라의 독립이나 독재체제에 저항하기 위해서 테러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고립된 생활을 하는 소위 ‘외로운 늑대’들이 테러를 일으키거든요. ‘외로운 늑대’란 사회적인 용어로써, 범죄기록도 없고, 이념적이지도 않은데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고 혼자 대형사건을 일으키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에요. 이런 것도 정신질환에 속합니다.

질문자가 아들을 완치시키려고 한다면 질문자가 너무 힘들어질 거예요. 보통의 아들이라면 나이 마흔이 넘었으니 결혼을 하든 독립을 해야 되잖아요. 그렇죠?”

“예.”

“그러나 질문자는 ‘우리 아들은 환자’라는 걸 명심하셔야 돼요. 그래서 아들의 결혼은 아들의 정신건강이 안정될 때까지 연기해야 됩니다.”

“예.”

“그런데 부모의 욕심이라는 게, 아들이 그럴 경우 국내에서 결혼을 시키기가 어려우니까 베트남이나 조선족 여자를 구해서 국제결혼을 시킵니다. 그런데 결국 그런 결혼은 가정폭력으로 인해서 깨진다든지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니까 질문자는 ‘내 자식만 소중한 게 아니라 남의 자식도 소중하다’는 걸 이해하셔서 그런 자식사랑은 제대로 된 사랑이 아니라는 걸 아셔야 해요. 아들의 정신질환이 발병한지 이미 오래 됐잖아요?”

“예, 좀 됐어요.”

“예, 아들의 병은 이미 만성화 되었으니까 완치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아들의 병이 더 이상 악화되지는 않게 돕겠다’는 마음을 내세요. 그래서 양방 병원에 가서 처방받은 약을 꼬박꼬박 먹게 하고, 아들이 ‘따로 살겠다’ 그러면 따로 살게 해 주고, ‘집에 들어와서 살겠다’ 그러면 그렇게 해 주세요. 아들이 건강하다면 절대로 같이 살면 안 되는데, 질문자의 아들은 환자이니까 보살필 필요가 있잖아요. 그런데 시간이 더 흘러서 ‘아들이 발작을 하니 내가 혼자 감당할 수가 없다’ 싶으면 ‘내 자식’이라는 생각을 하지 마시고, ‘환자’는 전문가가 보살펴야 되니까 병원에 입원을 시켜서 의사가 보살피도록 해야 합니다.

질문자가 이런 관점을 딱 가져야 아들도 더 큰 사고를 안 저지르게 됩니다. 아들이 만약 병원에 입원하거나 하면 자살할 확률은 줄어들 겁니다. 그러니까 우선 질문자의 아들이니까 좀 보살피되, ‘내 힘으로는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다’ 싶으면 너무 죄의식을 갖지 마시고 병원에 입원시켜서 전문가가 돌보도록 하는 게 좋습니다.”

“예. 제가 한 말씀 더 드리자면, 아들이 혼자 나가서는 거의 챙겨먹지도 않아서 양쪽 눈이 푸욱 들어가면서 쌍꺼풀이 생겼어요.(모두 웃음) 그런데 아들이 ‘내 눈에 쌍꺼풀이 진 게 큰 병이다. 그러니까 빨리 이 쌍꺼풀을 지워달라’는 거예요. 그러더니 아들이 한방 병원에 가서는 ‘내 눈에 쌍꺼풀이 졌으니까 이걸 없애달라’고 하니까 의사가 ‘한방 정신과에 가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아들이 한방 정신과에 가서 약을 한 재 지어 와서 이틀을 먹더니 쌍꺼풀이 안 없어진다면서 그 약은 자기랑 맞지 않다고 안 먹는 거예요. 그런데 어제 또 다른 병원에 가서 약을 지었다는 거예요. 그러니 딸이 오빠 약값을 감당 못 하겠으니까 대출을 받아서 오빠 약값을 보내줬다며 저한테 문자를 보냈더라고요.”

“그러는 게 병이거든요. 그러니까 질문자도 아들이 아무리 약을 지어달라고 해도 안 해 주든지, 아니면 그렇게 들어가는 돈을 그냥 아들의 입원비라고 생각하고 주든지 하세요. 처음부터 아들은 환자이기 때문에 약 지어와 봐야 또 안 먹고 버릴 거란 걸 각오해야 합니다. ‘그렇게 안 먹을 거면 아예 약을 짓지 말라’거나 ‘돈 들여서 약을 지어왔으면 잘 먹어라’고 얘기할 필요도 없어요.”

“예, 저도 그렇게는 안 합니다.”

“그러니까 돈이 있으면 지어주고, 돈이 없으면 못 지어주는 거라고 생각하시고요, 또 혹시 가능하면 한의원에 갔을 때 이렇게 얘기해 보세요. ‘한 만 원만 받고 맹물로 약을 지어주세요. 어차피 약을 지어봐야 아들은 이틀 치만 먹고 안 먹을 거거든요.’ 라고 한번 이야기해 보세요.”(모두 박장대소)

“아~”

“의사랑 잘 알면 그렇게 대응을 할 수도 있지요. 쌍꺼풀이 뭐, 약 먹는다고 없어질 리는 없으니까요.”(모두 웃음)

“저도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닌데요...”

“제가 다시 말씀드릴게요. 제가 지금 이렇게 길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아들의 치료가 쉽다는 거겠어요, 쉽지 않다는 거겠어요?”

“쉽지 않다는 말씀이시죠.”

“예. 그런데 치료가 쉽지 않은 아들을 둔 어머니라도 행복해야 돼요? 그런 아들 때문에 어머니는 행복하면 안 돼요?”

“행복해져야 되는데, 그게 잘 안 됩니다.”

“그러니까 질문자에게 그런 아들이 있더라도 질문자는 살아있는 한 행복해야 돼요? 아니면 그런 환경에서 괴롭게 살아야 돼요?”

“행복해야 됩니다.”

“질문자가 행복하게 살려면 ‘아들의 병은 완치가 쉽지 않다. 아들은 병적으로 저런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다’라는 걸 아셔야 돼요. 아들의 말과 행동에 질문자가 간섭하는 건 아들을 정상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 그냥 형식적으로 물어보세요. 너무 안 물어주면 아들이 섭섭해 하니까 형식적으로 ‘병원은 어디로 다니니?’ 하고 물어는 보되 실제 관심은 없어야 하고, ‘약은 잘 먹니?’ 하고 물어는 보되 실제 약을 잘 먹는지, 안 먹는지에 대해서는 신경을 끄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노골적으로 ‘약을 지어와 봐야 안 먹을 게 뻔하다’고 얘기하면 아들 기분만 나빠지고, 엄마가 자기한테 관심이 없다며 서운해 할 거란 말이에요. 너무 관심을 가지면 간섭한다고 난리고, 조금만 관심을 덜 가지면 무시한다고 난리일 겁니다. 아들은 질환을 앓고 있으니까요.”

“예, 맞습니다.”

“아들이 그러는 것에 일일이 대응을 하지 마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아들을 그냥 편안하게 대하면 그런 아들을 두고도 질문자가 행복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제가 아들의 질문에는 답할 수가 없고 질문자의 질문에는 답할 수가 있으니까 말씀을 드리자면, 아들은 완치되기가 어려우니 악화가 되지 않도록 병원에서 주는 약을 먹도록 하고, 아들이 환자 상태이니 좀 악화되면 입원을 시키시라는 겁니다. 좀 나아지면 집에 데려오고, 다시 악화되면 또 병원에 입원시키되 ‘또 입원시켜야 된다’고 생각하면 질문자만 괴로워지니까, 그걸 세끼 밥 먹듯이 편안하게 받아들이세요. 그런 아들을 두고도 질문자는 행복해야 하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사셔야 돼요?”

“예.”

“관점을 이렇게 가지면 질문자는 행복할 수가 있어요.”

“예, 고맙습니다.”(모두 박수)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게 이루어지길 모두 바라지요. 질문자도 아들이 치료가 되면 좋겠지요. 그런데 우리가 행복하게 살려면, 남편이 술을 마시거나 바람을 피우거나 죽어도, 아들이 몸이 아파도, 혼자 살아도, 본인이 암에 걸려도, 즉 어떤 일이 있어도 행복해야 한다는 관점을 갖는 겁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죽은 뒤에 어디를 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의 목표는 복 받고 극락 가는 게 아니라 해탈과 열반을 증득하는 거예요. 열반이라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괴롭지 않은 상태, 해탈이라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속박 받지 않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이걸 쉬운 말로 하면 ‘어떤 상태라도 행복해야 한다’는 겁니다.
조금 전에 질문하신 어머니께서도 아들이 완치되기를 원한다면 계속 거기에 매여서 사셔야 돼요. 그런데 ‘아들의 문제는 정신질환에 속하고, 이미 만성화가 되어서 완치가 쉽지 않으니 이제 내가 할 일은 아들의 병이 더 악화되지는 않도록 의사의 도움을 받아서 치료를 하는 것이다. 설령 악화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현대의학으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는 관점을 딱 가지시면, 그런 아들을 가진 어머니라도 행복할 수가 있는 겁니다. 어머니가 행복한 것이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어머니가 지레 아들한테 지쳐버리면 나중엔 ‘너야 죽든지 살든지 나도 모르겠다’ 하면서 아들을 외면하게 됩니다. 그러면 안 되지요. 그러니까 그런 상황에서도 내가 나를 지켜내는 것, 그게 수행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유독 오늘은 우을증이나 정신적 질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스님은 병원에서의 치료를 우선으로 해야 하며, 신경이 안정되었을 때 차차 마음공부의 길로 들어서야 함을 이야기하였습니다.

2시간의 강연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대화 시간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로비에서 책 사인회를 가진 뒤, 서둘러 차에 올랐습니다.
오늘은 내일 아침 일정으로 서울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임혜진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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